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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론과 마르크스주의] ()

Ⅰ. 군사문제라는 말 속에는 이중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첫째, 마르크스주의가 지향하려는 프롤레타리아혁명과 민족해방을 위해 고려되어야 할 대상으로서의 군사문제가 포함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군사론의 연구 영역은 군국주의, 팽창주의, 정규군 등에 관한 성격규명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두 번째로 유물변증법의 세계관에 기초한 변혁이론의 구성요소이자 혁명적 투쟁의 이론지침으로서 혁명적 군사론이 포괄되고 있다. 분명하게도 혁명이 때로 적대적 계급간의 내전의 형식을 띠는 한 그리고 그것이 전쟁인 한, 고유의 자기 전개법칙과 논리 그리고 기술을 갖고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군사문제는 혁명의 한 부분이며, 혁명은 확장된 군사문제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발전과정은 현실적으로 내전의 형식인 계급투쟁과 국제전의 형식인 민족해방투쟁의 전개과정이었으며 동시에 그것을 반영한 군사 사상의 발전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된 연구 분야로 설정된 예는 흔치 않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다양한 사회주의혁명의 전개는 곧 다양한 군사 사상의 발전이었다.
Ⅱ. 엥겔스의 군사론.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엥겔스의 기여 가운데 가장 독특한 부분이 바로 군사이론 분야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지적인 역할분담 가운데에서도 군사부분에 대한 엥겔스의 우위는 마르크스도 승인한 바 있다. 엥겔스는 별명이 ‘장군’이었을 만큼 1848년 혁명 이후 숨을 거둘 때까지 군사문제에 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는 체계적인 군사이론서를 남기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에 관련되어 남긴 문헌의 양적 측면에서도 또한 그가 당대의 군사평론가였다는 점에서도 마르크스주의 군사론의 창시자로 평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엥겔스의 군사론은 클라우제비츠Clausewitz, Karl von(1780~1831)의 전쟁철학에 입론의 근거를 두고 있다. 즉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 및 군사 문제에 대한 관점은 엥겔스의 유물변증법적인 재해석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군사 론의 기초가 되고 있다. 정치의 계급적 성격 규명에 기초하여 전쟁의 진정한 본질을 무력수단에 의한 계급정치의 수단으로 엥겔스는 이해했던 것이다. 엥겔스는 자본주의사회가 등장한 이래 19세기의 모든 전쟁을, 대내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위한 유리한 국면을 창출하는 것으로 파악했고 대외적으로는 사회 혁명과 국제 노동운동을 가로막고 있는 반혁명세력—반혁명적 보나파르티즘과 반동적 차리즘—을 타도하기 위하여 어떻게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 역랑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조망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19세기의 전쟁을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으로 구분하고 전자에 해당하는 ‘노동과 자본 간의 전쟁’을 계급투쟁의 최고 형태가 되는 내전으로 파악하였다. 엥겔스는 그와 같은 ‘정의의 전쟁’의 수행과정에서 제기되는 수단문제를 고찰하면서 대중봉기, 혁명전쟁, 게릴라 전쟁에 주목하고 있다. “자신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하는 인민은 통상적 전쟁 수단에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대중봉기, 혁명전쟁, 게릴라 전쟁 등은 약한 인민이 강력한 인민으로 구성된 군대에, 열악한 군대가 보다 강력하고 잘 조직된 군대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1848년, 1849년의 혁명경험을 총괄하면서 ‘무장봉기론’을 제시하였다. 즉 “봉기는 전쟁 및 그 밖의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술art로서 일정한 형식에 종속되는 것이며, 이 규칙을 무시할 경우 파멸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첫째로, ……그 모든 결과를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봉기를 결코 장난삼아 해서는 안 된다. ……둘째, 일단 봉기가 시작되면 최대의 결단력을 가지고 행동하며 공세를 취하라. 수세는 무장봉기의 죽음이다. 적의 병력이 분산되어 있는 동안에 적을 기습하라. 비록 그 성과가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날이 새로운 승리를 준비할 것이며 봉기의 최초 승리로서 전취한 사기의 우위를 점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엥겔스는 자연 발생적 무장봉기와 소수 음모가에 의한 폭동주의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했다. 또 혁명의 전 과정에 걸쳐 확고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영도원칙이 견지되어야 할 것 그리고 그것은 물리력에 의해 담보되고 방어되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하고 있다. 엥겔스는 1860년대 프러시아 군대의 재편을 둘러싸고 군부와 자유부르주아지 간에 전개된 헌법 논쟁에서 보통선거권의 군사적 보완물로서 완전한 의미의 ‘국민개병제’를 주장하고, 자유부르주아지들의 ‘민병제’를 반박한다. 이는 곧 국민개병제를 통한 노동계급의 군사기술 습득의 확대를 요구하는 현실적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1890~1895년에 그가 제시한 반전사상, ‘인민의 총무장에 기초한 민병제’는 반군국주의 투쟁과 세계전쟁의 위협으로부터의 혁명진영의 보호를 뜻하는 것이다. 결국 엥겔스의 군사론의 바탕은 ‘혁명적 현실주의’였다. 그리고 군사문제가 노동자 계급투쟁과 혁명정당의 필연적이며 중요한 구성요소라는 점을 과학적으로 논증함으로써 이후 마르크스주의 군사 사상가들의 이론적 지침을 제공하였다.
Ⅲ. 레닌의 군사론. 엥겔스의 혁명적 군사론의 기본 관점을 계승, 발전시켜 체계화한 인물은 레닌이다. 레닌은 1915년 여름 <클라우제비츠 전쟁론—노트>를 집필했는데 그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제2차 인터내셔널의 ‘조국 방위전쟁’ 등 혁명진영의 분열에 직면하여 제1차 세계대전의 성격을 규명하고 이 전쟁을 혁명과정의 일부로 이해하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레닌은 “전쟁은, 첫째 거의 ‘맹목적인 자연적 본능’이라 할 수 있는 적개심, 둘째 ‘자유로운 정신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개연성이나 우연성과 같은 도박의 요소, 셋째 순수한 오성의 산물에 속할 수 있게 하는 정치적 도구라는 종속성 등으로 구성된 삼위일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아가 전쟁을 정치의 연속이자 수단에 불과하다는 테제를 마르크스주의 사적 유물론에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전쟁과 정치를 경제적 토대와의 상관성 속에서 해명하고 전쟁을 혁명 투쟁의 수단으로 위치지었다. 이렇게 하여 사회주의 군사론의 기초를 마련한 레닌은 “첫째, 사회주의자는 스스로 사회주의자임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모든 전쟁(계급투쟁)에 반대할 수 없다. ……둘째, 내전도 전쟁이다. 계급투쟁을 승인하는 자는 역시 내전도 승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 일국에서 승리한 사회주의가 일시에 전쟁 일반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전쟁을 전제한다. ……그것은 사회주의를 위한, 부르주아지로부터 민족들을 해방하기 위한 전쟁이다. 넷째, 전쟁은 일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고 완전히 격멸하며 수탈한 뒤에야 비로소 사라질 것이다. 다섯째, 모든 전쟁이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일 뿐임을 망각하는 것은 이론적 오류다.”라고 지적하였다. 나아가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제국주의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그것의 직접적 대립물이 ‘민족 억압에 저항하는 투쟁과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임을 지적하였다. 한편 레닌은 엥겔스가 말년에 “바리케이드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러므로 새로운 혁명전술을 창안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제기했던 문제를 빨치산 전술로 정식화한다. 즉 포병에 대항하여 대오를 지어 행진하고, 권총을 갖고 바리케이드를 방어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인 상황에서 제시된 새로운 투쟁형태가 빨치산 전술이었다. 레닌에 따르면 빨치산 전투는 대중운동이 실천적으로 봉기에 도달해 있고 내전이 대회전 사이의 대휴지기에 있을 때 출현하는 불가피한 투쟁형태다. 그러나 빨치산 전술이 유일한 투쟁의 형태가 아닌 이상, 그것이 사용되고 허용될 수 있는 사상적, 조직적 조건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레닌의 지적이다. 다음으로 사회주의 군사론의 형성에서 중요한 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군, 즉 적군의 창설이다. 레닌은 1905년 <혁명군과 혁명정부>라는 글에서 “폭동—시위—시가전—혁명군의 부대들”을 인민봉기의 발전단계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 혁명군은 전제정부의 잔존 군사력에 대항하는 인민대중의 군사적 투쟁과 그들에 대한 군사적 지도를 위해 필요하다. 혁명군이 필요한 이유는 오직 폭력으로만 위대한 역사적 과제가 해결될 수 있고 현대의 투쟁에서 폭력의 조직이란 군사조직이기 때문이다. 이에 기초하여 레닌은 적군 창설을 통해 사회주의혁명을 성공시켰다. 레닌의 군사 사상은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을 관철시킨 것, 즉 오직 역사적으로 오직 다른 것과의 관련 속에서 오직 구체적 역사경험과의 관련 속에서 군사문제를 사고했던 결과였다.
Ⅳ. 모택동의 군사론. 모택동의 군사론은 제2차 국내혁명전쟁 시기인 1928년 <정강산 투쟁>에서 본격적으로 제시되고, <중국 혁명전쟁의 전략문제>(1936년 12월), <항일 유격전의 전략문제>(l938년 5월), <지구전론>(1938년 5월) 그리고 <전쟁과 전략문제>(1938년 5월)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이 같은 군사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은 중국혁명 과정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모택동은 레닌의 <사회주의와 전쟁>이라는 저술을 통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철학, 즉 “전쟁은 특수한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테제를 접하고 그것을 ‘정치는 무혈의 전쟁이며, 전쟁은 유혈의 정치’로 해석해낸다, 그리고 그러한 원칙을 중국의 상황에 적용시키고 있다. 곧 “중국은 하나의 독립된 민주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반식민지 반봉건국가이다. 내부에는 민주제도가 없고 외부에는 민족독립이 없다. 그러므로 공산당의 임무는 기본적으로 장기적인 합법투쟁을 경과하지 않고 봉기와 전쟁에 진입하는 것이며, 도시를 먼저 점령한 후 농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길을 걸을 것”을 제기하였다. 모택동에게는 중국 상황하에서 유격전쟁이야말로 새롭고 올바른 것이었다. 즉 단순히 정규군의, 작전상 제기되는 배합작용이 아닌 국토의 광활함과 국력의 약함이 동시에 고려된 것이 모택동의 전략으로서의 유격전쟁론이었다. 그러나 모택동이 유격전쟁을 전략적인 수준에서 고려했다고 할지라도 혁명의 전 과정에서 볼 때 유격전은 보조적인 것이며 주요한 것은 정규전임을 언제나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항일 혁명전쟁을 규명할 때 내용상 전략적으로는 내선전, 지구전, 방어전, 전력 전투적으로는 외선적, 속결적, 공격적이며 형식상 운동전이 된다고 지적하였다. 운동전과 유격전을 기본으로 특정 지점의 고수 및 사수를 고집하지 않고 전 지역에 걸친 역관계를 선 또는 면적 개념에 입각하여 시간을 지배하면서 방어전쟁으로서의 특성을 제대로 살려 일본군을 인민의 바다 속에 익사시키려 했다. 이 같은 것을 그는 지구전이라 불렀다. 지구전은 ①적의 전략적 진공과 아군의 전략적 방어기 ②적의 전략적 보수와 아군의 반격기 ③아군의 전략적 반격과 적의 전략적 퇴 각기의 3단계로 나뉜다. 나아가 모택동은 전략적 방어기에 유격전의 기본원칙, 즉 철저하게 싸울 수 있을 때 싸우고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 후퇴한다는 이른바 ‘16자 전법’을 제시하고 이후 홍군의 10대 군사원칙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중국혁명전쟁의 특수한 조건을 극히 구체적인 차원에까지 발전시켰다. 이 같은 모택동의 군사사상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식민지반봉건국가에서 제국주의의 축출을 기본과제로 하는 혁명전쟁에서의 군사론의 또 다른 예인 베트남혁명의 보 구옌 지압의 군사론이다. 그의 군사론은 크게 장기항전과 인민의 전쟁으로 구성된다. 그에 따르면 베트남혁명은 명확한 전선이 없으며 적이 있는 곳에 전선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식민지반봉건국가 베트남이 제국주의와의 전쟁에서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아의 강점은 근본적이고 적의 강점은 일시적인 것’이기에 적의 침략원칙은 속결전이므로 전쟁의 장기화를 통해 승리를 얻는 장기항전이라는 것이다. 또 그것은 일반법칙을 경과하는데, 즉 방어·경쟁의 단계, 대치·균형의 단계, 총반격의 단계를 거친다. 이 같은 장기항전의 수행에서 지압은 인민의 무장력은 민족적 군대, 민주적 군대, 인민의 군대이며, 노동계급의 당이 지도하는 군대로서 인민과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할 것을 지적한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 군사론의 기본원칙인 군사에 대한 정치의 우위를 관철시킨 것이었고, 그것을 통해서만 제국주의와의 전 인민적 민족해방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혁명이 공간의 면에서 지리적 이점을 활용했다면 그는 시간을 목적의식적으로 활용했다. 마르크스주의 군사론은 전쟁을 계급투쟁의 연속에서 본다는 점 그리고 그것은 각국의 조건에 알맞게 창조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갖고 있다. → 전쟁론, 모택동, 인민전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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