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책 처음으로 | 사전 | 자유게시판 | 회원자료 | 로그인

 

       ■ 의견바로가기

[사이프러스 문제] (Cyprus)

사이프러스 문제는 지중해 동쪽에 있는 섬 사이프러스에서 일어난 민족분규로, 그리스(Greece)와의 통합을 주장하는 그리스계 주민과 사이프러스의 분할을 요구하는 터키(Turkey)계 주민들 간의 갈등을 말한다. 1571년 오스만 터키 제국이 사이프러스를 점령하면서 원주민들의 반터키 운동이 발생하였다. 러시아·터키전쟁(1877~1878) 이후 터키와 식민지정책 강화에 이해를 둔 영국 간의 비밀협정에 의해 행정권이 영국으로 넘어갔으며 1925년 직할식민지화되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반영 무장투쟁을 전개한 그리스계 사이프러스인들은 그리스와 사이프러스를 통합시키기 위한 에노시스enosis(희랍어로 병함')운동을 전개 하였으며. 이에 대응하여 영국은 지배 안정화의 일환으로 사이프러스의 분할을 주장하는 터키와 결탁하여 그리스계 주민과 터키계 주민의 대립을 배후에서 조종하였다. 1954년 그리스 정부가 에노시스의 실현을 위해 사이프러스 문제를 유엔에 상정했으나 영국의 개입으로 좌절되자 그리스계를 중심로 <사이프러스 전사국가기구 Ethmk Organosis Kypnon Agoniston EOKA>를 결성하였다. 터키계 또한 EOKA에 대항 하고자 <터키저항기구 Turk Makavement TeskilatiTMT>를 결성하여 양주민 간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이런 상황에 미국과 영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3대륙을 연결하는 사이프러스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는 한편 이 섬을 둘러싸고 나토 동맹국인 그리스와 터키의 대결로 인한 반공군사 체제의 분열을 우려하여 양국 간의 협상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1959년 취리히·런던협정의 성립으로 사이프러스는 19608월 독립되었지만 영국의 군사기지 존속, 그리스·터키 양군의 주둔 등 불평등 협정에 의해 3국에 증속될 수밖에 없었다. 196711월 양주민의 무력충돌로 그리스와 터키 간의 전쟁위험이 고조되었으며 19747월 그리스계 장교들에 의한 쿠데타가 성공하자 그 해 8월 이를 빌미로 팽창주의 노선을 걷고 있던 터키가 사이프러스를 침공하여 북부지방(전국토의 40%)을 점령하였다. 1975년 터키계 주민은 점령지구의 연방자치주화를 선언하고 198311북사이프러스 터키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하였다. 이로써 사이프러스는 그리스계와 터키계 양주민이 각기 달리 헌법을 제정하고 대통령을 선출하는 등 사실상 두 개의 국가로 분열되었다.

■ 인접어

쁘띠부르주아지
사료 편찬
사북항쟁(舍北抗爭)
사삼민중항쟁(4·3 民衆抗爭)
사용가치
사이프러스 문제
사이프러스 문제
사적 유물론(私的唯物論)
사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史的 唯物論
사회

뒤로
■ 의견

 



HOME - 후원방법 안내 - CMS후원신청 - 취지문 - 사용 도움말 - 회원탈퇴하기

2002 노동자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 만들기 모임
120-702 서울시 중구 정동 22-2 경향신문 별관 202호 44
laborsbook@gmail.com
모바일버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