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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의식(階級意識)] (Class Consciousness; 독, Klassen-bewusstsein; 프, Conscience de cla)

. 계급의식에 대한 규정.

마르크스는 계급 그 자체의 객관적 존재와 자기가 속한 계급에서 생겨나는 이해관계를 의식하는 계급의식을 구별했다. 계급의식이란 일정한 생산관계에 놓인 계급의 공통된 이해관심에 의해서 형성된 의식으로서 자기계급의 연대성의 기반이 되며 계급투쟁에서 행동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또한 계급의식은 계급투쟁을 통해서 역사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는 사회가 신분 및 계층이라는 정치적 혹은 종교적 요소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계급의식이 명확하지 않았다. 부르주아지가 시민혁명을 통해서 봉건적, 신분적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비로소 계급이해를 인식할 수 있는 객관적 가능성이 생겨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부르주아사회가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만들어내고, 이들이 역사변혁의 담당자가 되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일이다. <공산당선언>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운동은 모두 소수자의 운동 혹은 소수자의 이익을 위한 운동이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동은 압도적인 다수자의 이익을 위한 압도적인 다수자의 자주적인 운동이다.” 이 경우 다수자의 자주적인 운동은 계급의식에 바탕을 둔 행동이다. 만년의 엥겔스는 <1848년부터 1850년까지의 프랑스 계급투쟁>의 서문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회조직이 완전히 변혁되기 위해서는 대중 자신이 그 변혁에 참가하고, 그들 자신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신체와 생명을 걸고 행동을 일으키는가 하는 것을 이미 스스로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 자연발생성, 계급의식, 조직.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단계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에 역사적 발전방향을 반영하는 사회주의적 의식이 체현되어 있었다. 그런데 20세기 초두에 독일과 러시아에서 사회 민주주의 정당이 발전하고 노동자계급의 운동이 전개됨에 따라서 양자 사이에 틈이 생겨나고, 당이냐 대중이냐, 조직이냐 운동이냐를 둘러싸고 마르크스주의자들 간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의 논쟁이 그것이다. 물론 누구도 한쪽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한 것은 아니며, 이 문제는 두 사람이 처해 있던 시기나 국내 상황 등의 구체적 요소를 고려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논쟁이 나중에 레닌주의와 로자 룩셈부르크주의의 대립점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조류를 규정하고 있는 점 또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논쟁은 혁명적·사회주의적 인텔리겐치아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물음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1901~1902)에서, 역사 변혁에서 자연발생성과 의식성의 대립을 다루면서 의식성을 갖춘 혁명적 인텔리겐치아의 역할을 높게 평가 했다. “사회주의 학설은 유산계급의 교양 있는 대표자인 인텔리겐치아에 의해 만들어진 철학·역사·경제 이론에서 성장해온 것이다. 근대의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인 마르크스와 엥겔스 자신도 그 사회적 지위로 보면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에 속했다. 그와 완전히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 사회민주주의 학설은 노동운동의 자연발생적 성장과는 완전히 독립되어 발생했다.” 이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에 대해서 이른바 외부주입론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과 당의 지도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자칫 의식성은 조직이나 당 중심주의와 결부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로자 룩셈부르크는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운동이 조직되어 있으며 원칙을 갖춘 역량에 의해서 지도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오히려 인민대중의 역사적 역할을 전면에 내세운다. “인민의 역사적 주도성은 앞으로는 이미 사회민주당 조적의 도구로 모두 바뀌어버리고, 비조직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은 모습도 갖추지 못하고 역사의 짐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생각은 돌이킬 수 없는 오류일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인민대중은 사회민주당을 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세계사의 살아 움직이는 내용으로서 계속 존재한다.”

 

. 루카치의 계급의식론과 그에 대한 비판.

1917년의 러시아혁명은 성공했지만 1918년의 독일혁명과 1919년의 헝가리혁명은 좌절했기 때문에 이 좌절의 원인을 놓고, 마르크스주의자들 간에 제2차 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의 체질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움직임이 등장했다. 2차 인터내셔널은 객관주의적인 자본주의 자동붕괴론에 빠져서, 프롤레타리아계급의 혁명적 의식의 역할을 경시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계급의식은 부르주아적 개인의식으로 물상화되어 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새로이 유럽혁명을 재현하기 위해서 이 계급의식을 재검토한 것이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1923)이었다. 루카치는 계급투쟁에서 계급의식이 차지하는 역할은 결정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특정한 계급이 지배할 사명을 갖고 있다는 말 속에는 바로 자신들의 계급이익과 계급의식에 기초해서 사회 전체를 그 계급의 이익에 따라서 조직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하여 모든 계급투쟁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문제는 일정한 순간에 어느 계급이 이와 같은 능력과 계급의식을 갖추는가에 달려 있다.” 여기서 루카치가 계급의식이라고 한 것은 개개의 계급성원들 속에서 경험적으로 나타나는 의식을 모두 합한 것도 아니고 또 그 평균도 아니다. 이와 같이 경험적 심리학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계급의식은 루카치에게는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루카치는 헤겔의 의식의 현상학에 따라서 개개 현상의 배후에 있는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객관적 의식으로서 계급의식을 이해한다. 사실 바로 기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사실적, 심리학적 의식 상태를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역사발전의 궁극적 목적을 실현하는 일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사명이다. 하지만 이 사명을 단순하게 직접적으로 달성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사회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러한 사명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이 사명의 달성을 특유의 물상화에 의해서 방해하려 한다.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 속에서도 허위의식진실의식의 분열을 인식했지만, 루카치는 역사 속에서 이 분열한 의식이 담당하는 역할을 규정하고, 궁극적으로는 주체와 객체가 일치하는 자유의 왕국이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루카치의 이와 같은 계급의식의 변증법에 대해서 지금까지 많은 비판이 등장했다. 3차 인터내셔널로부터는 루카치가 계급의식의 독자성을 인정한 것은 의식이 존재의 반영이라는 유물론의 원칙을 왜곡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또한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루카치의 계급의식의 변증법이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이라는 논리이기 때문에 결국은 레닌적 당 중심형의 논리로 전화하고, 스탈린주의의 모태가 된다고 엄중하게 비판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루카치로부터 물상화의 논리를 섭취하지만 헤겔적 절대주의적 형이상학은 단호히 배제하게 되었다.

 

. 계급의식과 인텔리겐치아.

그람시는 이탈리아인다운 정감의 소유자로서 지식인들과의 광범한 교제에서 지적 교양을 몸에 익히고, 집단의지의 형성과정에서 지식계급이 담당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평가하고 사상과 실천운동을 결합하려고 했다. 그람시의 지식인론의 특색은 지식인을 중간계급의 일부로서 위치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독립적인 계급으로 간주하며, 자본주의사회 속에서 분해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롭게 재생산되는 존재로 간주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항상 계급의지와 관련시켜서 논하고 있는 점에 있다. 그람시는 <지식인의 형성>에서 지식인계급을 둘로 구별했다. 전통적 지식인과 유기적 지식인의 구별이 그것이다. 전통적 지식인이란 봉건사회에서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성직자, 교사, 법률가들처럼 스스로를 지배집단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간주하는, 시대를 초월해서 존속하는 지식인이다. 유기 적 지식인이란 자본주의사회가 만들어내는 현대의 고유한 지식인어다. 예를 들면 기술자 및 직원층 혹은 관료층이 이에 해당하며, 그람시는 현대세계에서 공업노동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 기술교육 자체가 새로운 형의 지식인의 토대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이들 계급은 자본주의적 기업가가 자신과 함께 만들어낸 존재로서 지배적인 사회집단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유기적인 기구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 그람시는 체제를 변혁하는 노동자 집단 또한 지식인을 만들어낸다고 하였다. 이들은 이른바 반체제 지식인이라고도 불릴 수 있고, 루카치식으로 말하면 자각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의 담당자가 될 것이다. 이 집단은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조직자이다. “비판적인 자기의식은 역사적, 정치적으로는 지식인이라는 엘리트를 창조한다. …… 지식인 없이 조직은 없다.” 이 경우, 유기적 지식인과 반체제 지식인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람시의 기조(基調)에 따르면, 지식인계급은 지배자 집단과 피지배자 집단으로 양극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변혁을 위해서는 대중과 지식인의 유기적 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식인과 민중 사이에 감정적 결합이 없다면 정치=역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지식인이 처음부터 체제와 반체제로 구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지식인은 한편으로는 체제 내에 발을 들이밀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체제비판으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숨기고 있다. 따라서 지식인은 자신의 내부에 이와 같은 모순을 안고 있는 사회적 범주로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 사르트르의 <지식인의 변명>(1966)이다. 근대사회는 필연적으로 지식인을 만들어내지 않을 수 없으면서 동시에 지식인을 배제하는 관계에 있는 점에서 양자의 관계는 변증법적이다. 체제와 지식인의 모순관계는 이러한 지식인의 내부모순에도 반영되어 있다. 지식인은 그 고유한 성격으로서 지배체제가 요구하는 개별적 이익을 실현하는 측면과 진리와 사상의 자유라고 하는 보편성을 담지하는 측면을 갖고 있다. 이 경우, 보편성에 대한 요구는 체제의 특수한 이익과 종종 모순되는 것으로서 참된 지식인이라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결을 자신의 역사적 사명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부르주아지도 겉으로는 보편적 진리를 주장하지만, 이러한 진리는 실은 허위이며 특수한 것으로서 이를 꿰뚫어보지 못하면 허위에 찬 지식인에 지나지 않는다. 지식인은 이와 같은 진실과 허위라는 두 가지 요소의 대결을 숙명으로 항상 등에 짊어지고 있으며, 비판정신을 철저히 추구함으로써 이 내면적인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진리의 보편성이란 지식인에게 저절로 눈앞에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견해서 보편적인 듯이 보이는 것도 허위인 경우가 종종 있다. 사르트르가 지식인에게 근본적radical일 것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마르크스의 말대로 사물을 근저에서 파악하기때문이다. 지식인의 사명은 부르주아사회에서 자신의 개별적 지위와 역사의 보편성 사이의 모순을 자각하고 끊임없이 개별성으로부터 보편성을 지향해가는 변증법적 운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계급 없는 사회의 도래를 통한 개별주의의 소멸이라는 보편성을 목표로 삼는 한, 지식인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과 서로 만난다. 지식인은 프롤레타리아트와는 다른 계급적 입장에 있으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소외 상황을 통해서 자신을 자각한다. 지식인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내부로 들어가서 보편화를 위한 투쟁을 수행함으로써 비로소 인류의 미래를 창조한다. 여기에 참된 지식인의 과제가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르트르의 지식인은 그람시의 지식인과는 달리 단독자이다. 즉 사르트르의 지식인은 어떤 것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개체이며, 어떠한 계급과도 구별되는 개별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인은 지배 계급은 물론 노동자계급으로부터도 배제 당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식인은 고독하다.” 이 점에 보편성과 집단을 통해서 개별을 해소하려는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적 지식인과 실존주의적 지식인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단독자인 지식인은 어디까지나 개별에서 출발하여 보편성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는 단칭적(單稱的) 보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고독은 단순한 고립과는 다르다. 그것은 끊임없이 추방되는 몸이면서, 대중의 편에 서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특별히 유익한 고독이다.” 결국 단지 체제 안에 몸을 웅크린 개별자는 아니다. 진정한 지식인은 항상 보편화를 지향하는 개별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보편성을 매개로 해서 자기부정을 수행하는 개별이다. 이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모순과 그 구조에 대한 예리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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