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동 (河振東, 1914~?) 河振禹 河東振 河東禹] ()
(조선의용군 대원) 평북 벽동 출신으로, 한때 우편배달부로 일했다. 1933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9월 조선혁명간부학교 제2기에 입학했고 1934년 4월 졸업했다. 1935년 4월부터 9월까지 조선혁명간부학교 제3기생 교관으로서 야간전투교육을 담당했다. 1936년 5월 조선민족혁명당 당원으로서 당수 김원봉(金元鳳)과 동거하며 각 방면과의 연락을 담당했다. 1937년 12월 중앙육군군관학교 성자(星子) 강릉분교(江陵分校)에 입학했고 1938년 5월 졸업했다. 10월 조선의용대에 참여했고 1941년 화북(華北) 팔로군(八路軍)지역으로 이동했다. 그해 하반기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제1대 제1분대장으로서 안양(安陽) · 자현(磁縣) 일대에서 활동했다. 1944년 초 산서성(山西省) 양곡현(陽曲縣) 태원시(太原市)에서 최채(崔采)와 함께 적 점령구와 무역을 벌여 옷·약품·군용전지 등 필수물자들을 구입해 학교운영에 충당했다. 해방 전 중국공산당에 입당했고 해방직후 조선의용군 공급처에 배속되어 활동했다. 이후 38선 이북으로 귀국하여 포병학교 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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