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식(崔昌植, 1892~?) 丁昌] ()
(在上海 고려공산당 간부) 평북 창성출신으로 1914년 서울 오성학교(五星學校) 교사가 되었다. 1916년 9월 학생들에게 반일의식을 고취했다는 이유로 검거되었으나 공소 기각으로 석방되었다. 토오꾜오(東京)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문과 1학년을 수료했다. 1919년 4월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가한 후 국무원 비서장, 의정원 경기도 대의원, 노동국 서기를 지냈다. 1920년 재상해 한인공산당에 입당했고 1921년 6월 고려공산청년회 상해회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1922년 1월 모스끄바에서 개최된 극동민족대회에 고려공산당 상해지방회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1923년 재상해 이르꾸쯔끄파 고려공산당 간부가 되었고 1924년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에 입회했다. 1926년 10월 임정 내무부장에 선출되었다. 임정 기관지 「독립신문」 주간을 지냈고 1927년 3월 한국유일독립당 상해촉성회에 참여했다. 1928년 1월 상해 프랑스조계 내 삼일인쇄소를 인수하여 경영하며 조선공산당 기관지인 「불꽃[火花]」 등의 출판물을 인쇄했다. 1929년 10월 한국독립운동자동맹을 설립했다. 1930년 4월 상해 일본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로 이송되어 11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98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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