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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혁명] (the Russian Revolution)

엥겔스 : 러시아의 농민공동체 (mir) ------그것은 확실히 고대토지공유제가 이미 현저하게 붕괴된 형태이지만------는 보다 고도의 공산주의적 토지소유형태로 직접 옮겨갈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 이전에 서유럽의 역사적 발전 속에서 점하고 있었던 것처럼 분해과정을 겪어야만 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오늘날 가능한 유일의 해답은 다음과 같다. 만약 러시아혁명이 서유럽 노동자혁명의 신호가 되고 이러한 양자가 서로 취약점을 메꾸어 나간다면 현재의 러시아의 공유제는 공산주의적 발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공산당선언서문, M・E선집, 제2권, p. 547).
체르니세프스키 (N. G. Chernyshevskii, 1828〜89)도 러시아 농민공동체를 현존하는 사회제도에서 탈피한 하나의 새로운 발전단계, 즉 한편으로는 러시아의 공동체보다도 고도이고 또 한편으로는 계급대립이 있는 서유럽 자본주의 사회보다도 고도의 단계에 도달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수단이 서유럽에는 없지만 러시아에는 있다는 점이 하나의 특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여하튼 사실은 다음과 같다. 서유럽에서 자본주의적 사회의 붕괴, 즉 그들의 발전이 필연적인 모순에 봉착하여 멸망의 길로 허덕이고 있을 때도 러시아에서는 전경작지의 절반이 여전히 농민공동체의 공유재산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데 서유럽에서 사회개조에 의해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생산수단, 즉 토지까지도 사회의 공동소유로 옮기는 것이 전제가 된다면, 러시아에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 공동소유는 이제부터 겨우 형성되기 시작한 서유럽의 공동소유와는 어떤 관계에 있게 될 것인가? 그것은 하나의 국민적 운동, 즉 러시아의 농민공산주의가 자본주의 시대의 모든 것을 뛰어넘어 즉각 전생산수단의 근대적・사회주의적 공유로 옮기는 운동, 더우기 자본주의시대의 기술적 성과의 전부를 함께 가짐으로써 농민공산주의를 더욱 풍부한 것으로하는 이 운동의 출발점이 되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인가? 혹은 마르크스가 편지 속에서 체르니세프스키의 의견을 요약한 말을 빌린다면 ‘러시아는 자유주의자가 요구하는 바와 같이 우선 농민공동체를 파괴하고 그후에 자본주의로 옮겨 갈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이나라에 특유하게 역사적으로 주어진 전제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 자본주의의 고통을 맛보지 않고도 그 열매를 모두 우리의 것으로 할 수 있을 것인가’이런 문제제기는 그 자체가 이미 올바른 해결을 요구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즉, 러시아의 공동체는 수백 년간 존속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더욱 고도 형식으로 공동소유를 발전시킬 수 있는 동인(動因)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원시공산주의적 제도가 실시되던 독일의 마르크(Mark) 조직, 켈트인의 씨족(clan), 인도와 기타 공동체도 이점은 똑같다. 이것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이 주위에서 혹은 그 속에서 발생하여 점차 이를 침투해온 상품생산과 각 가족이나 각 개인 간의 교환에 영향을 받아 점점 그 공산주의적 성질을 잃어가고 상호 독립된 토지소유자의 공동체로 해체되어 왔다. 그러므로 러시아의 공동체는 이와 다른 그리고 더 좋은 운명을 갖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일반에 제기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러시아의 공동체 자체의 책임이 아니라, 그 공동체가 유럽의 한 나라에서 비교적 강한 생명력을 보유하여 왔다는 사정에 책임이 있다. 즉, 서유럽에서 그 최고이자 최후의 형식인 자본주의적 생산이 스스로 만들어낸 생산력과의 모순에 빠질 때까지 존속되며, 이러한 생산이 생산력을 그이상 관리하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게 될 때 까지 그리고 이러한 생산이 거기에 내재하는 모순과 거기에 따른 계급투쟁에 봉착하여 멸망할 때까지 이 공동체가 버티고 있을 것이라는 사정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러시아의 공동체를 개조할 수 있는 주도권은 공동체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서유럽의 공업프롤레타리아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다. 서유럽 내 프롤레타리아트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승리, 이에 따른 자본주의적 생산의 사회적 관리들의 이행만이 러시아의 공동체가〔서유럽과〕같은 단계로 향상되는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농민공동체와 병행하여 같은 시기 에 서유럽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붕괴, 즉 생산 자체가 이미 생산수단을 사회적소유로 하여 계획적으로 사용한다는 새로운 생산형태를 맞이하는 시점에 접근해간다는 사실―이 사실만으로는 스스로 새로운 사회형태로 발전해갈 수 있도록 러시아의 공동체가 힘을 부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아직 이 혁명을 완성시키지 않았는데 러시아의 공동체가 사회적 재산 및 사회적 수단으로서의 자본주의사회의 거대한 생산능력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겠는가? 러시아의 공동체는 이미 토지의 공동계산에 의한 경작마저 잊어버렸는데 대공업의 공동계산에 의한 경영을 어떻게 세계를 향하여 제시할 수 있겠는가? 융합하기 어려운 대립이나 충돌을 안고 있는 서유럽 자본주의사회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러시아에도 틀림없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이해하고 있는 수 천명 정도의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지 않으며 대러시아에서 아직도 토지를 공동소유로 하여 생활하고 있는 약 5,000만의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전혀 모른다. ……경제적 발전이 비교적 얕은 단계에 있으면서 그보다 훨씬 높은 단계에 이르러 발생하거 나 발생할 수 있는 난제와 충돌을 해결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상품 생산이나 개별적 교환 이전에 있었던 모든 형식의 씨족공동체와 미래의 사회주의 사회가 갖고 있는 한가지 공통점은 생산수단이라는 일정한 물자를 집단이 공동으로 소유하며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공통의 성질이 있다고 할지라도 낮은 사회형태 속에서 자본주의에 가장 고유한 최후의 형태인 미래의 사회주의 사회가 태어 날 수는 없다. 주어진 어떠한 경제적 구성체도 해결되어야만 할 독자적인 문제, 즉 자체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있게 마련이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타 구성체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다. 그리고 이것은 남슬라브의 트아도루가에 대해서도, 인도의 씨족적 세대 또는 기타 생산수단의 공유를 특징으로 하는 야만기(期)나 미개기(期) 사회형태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공동체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서유럽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하여 생산수단이 공유재산으로 옮겨진 뒤 겨우 자본주의적 생산으로 들어가나 씨족적 제도나 그 유물을 존속시키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이 공동재산의 유물과 그에 상응하는 민족적 관습이 사회주의사회에 도달할 때까지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진화과정을 훨씬 단축시키며 고통과 투쟁의 대부분을 생략해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자본주의적이었던 서유럽의 실례와 적극적 지원이 불가결한 조건이 된다. 다만 자본주의 경제가 태어났고 또한 번창할 수 있었던 나라에서 극복되어 후진국은 이 선례에 따라 ‘어떻게 할 것인가’ 즉 근대적 공업생산력을 사회적 재산으로 하여 어떻게 전체에 도움이 되도록 할 수 있는가를 인식하게 된 경우에만 후진국이 이 단축되어진 진화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확실히 성공한다. 또한 이것은 러시아만이 아니고 자본주의 이전의 단계에 있는 모든 나라들에게도 들어맞는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그것이 비교적 가장 용이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나라에서는 국내인구의 일부분이 이미 자본주의적 발전의 지적결과를 체험했으며 따라서 이 나라에 혁명의 시기가 오면 서유럽과 거의 동시에 사회개조가 성취될 수 있기 때문이다. 1882년에 마르크스와 내가 희망했던 것처럼 필요한 경우에 서유럽에 있어서의 급변과 보조를 맞추어 공산주의적 발전의 출발점이 되게 할 만한 요소가 공동체 내에 보존되어 있는가? 이 의문에는 대답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공동체의 유물을 하나라도 보존하려 든다면 그를 위한 첫째조건으로 츠아(Czar) 의 전제주의를 타도하고 러시아에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만은 확실하다. 이 혁명은 국민의 대다수인 농민을 그들의 ‘미르 즉 그들의 ‘세계’ (mir의 원래 뜻은‘세계’) 를 이루는 고립상태의 촌락에서 끌어내어 그들이 외계, 여기에 대비된 자기, 자기자신의 상태, 그리고 현재의 빈곤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수단을 알게 되는 큰 무대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서유럽의 노동운동에서 새로운 자극과 보다 나은 투쟁조건을 수용하여 근대적 공업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앞당기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승리가 없이는 오늘의 러시아가 공동체 또는 자본주의로부터 빠져나와 사회주의적 개조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의 사회관계에의 후기, 1894, M・E선집 제13권, pp. 153~169).
러시아 농민의 상태가 농노해방운동 이래 참을 수 없으며 오래 지속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러시아에 혁명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남은 것은 다만 이혁명의 결과가 어떠한 것일까 하는 문제뿐이다. 트카초프 (Pyotr Nikitich Tkachov, 1844~86, 러시아 문학평론가) 는 그것이 사회혁명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그야말로 동어반복이다. 참된 혁명이란 하나의 새로운 계급을 지배적인 지위로 하여 그 계급이 자기와 닮은 모습으로 사회를 개조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모두 사회혁명이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사회주의혁명일 것이다. 따라서 서유럽의 사회주의가 추구하고 있는 사회형태를 서유럽에서 그것을 실현하기 전에 러시아에서 성취할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것도 프롤레타리아트나 부르주아지가 겨우 산발적으로 약간 나타난 낮은 발전단계의 사회상태에 있을 뿐인 러시아에서 라 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러시아인이 소위 사회주의의 선민이며 그리고 아르텔리 (Artelj, 러시아 특유의 전근적 동업조합) 나 토지공동체 제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르텔리에 관해 트카초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미 게르첸 (Aleksandr Ivanovich Gertsen, 1812~70, 러시아의 사상가) 시대이래 많은 러시아인 사이에서 신비적 역할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르텔리는 러시아에서 널리 실사되고 있는 일종의 조합으로서 수렵민족이 수렵 할 때 나타나는 자유로운 협력의 가장 간단한 형태이다. 아르텔리라는 용어나 그 내용이 슬라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타타르에서 기원한 것이다. 한편 이는 키르기스족, 야쿠트족, 래프랜드족, 사모에드족, 기타 핀란드인 사이에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러시아의 아르텔리는 원래 핀란드인이나 타타르인과 접촉하고 있는 북부와 동부에서 발달되어 온 것이며 서남부에서는 발달되지 않고 있다........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아르텔리는 자연적으로 발생했고 아직 그 발달이 매우 뒤떨어진 협동조합으로서 결코 러시아만의 것도, 슬라브만의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은 결사는 그 요구가 있는 곳에는 어디나 조직되어 있다. 예를들면 스위스의 착유장(搾乳場), 영국 어부의 경우가 그것인데 거기서는 아르텔리가 다종다양하기 조차하다. 40년대에 독일의 많은 철도를 건설했던 실레지아의 토목노동자(그것은 독일인이지 폴란드인이 아님 )는 완전한 아르텔리로 조직 되 어 있었다. 러시아에 이 형태가 많다는 것은 확실히 러시아국민 사이에 강열한 단결충동이 존재하는 것을 입증하고는 있지만 러시아 국민이 이 충동의 도움을 받아 즉각 아르텔리로부터 사회주의적 사회질서로 비약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아르텔리 그 자체에 발달능력이 있고 우리가 이미 보아온 바와 같이 아르텔리가 노동자보다도 자본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과 같은 자연발생적 형태에서 벗어나 적어도 서유럽적 협동=결사의 수준까지 자신을 높일 필요가 있다.……러시아 농민의 공동소유체는 1845년경 프러시아의 참사관 학스타우젠 (Ha- xthausen, 1792〜1866, 독일) 이 발견하여 매우 불가사의한 것이기나 한듯 전 세계에 떠들어 댔다. 학스타우젠의 고향 웨스트팔렌에도 그러한 유물이 얼마든지 있으며 정부관리인 그로서는 더우기 정확하게 알아 두었어야 할 의무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러시아의 지주 게르첸도 자기의 농민이 토지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학스타우젠으로부터 처음 들었다. 게르첸은 이를 기회로, 고생 끝에 겨우 인위적으로 사회주의를 만들어내야만 했던 노쇠하고 무력한 서유럽의 노동자를 러시아 농민으로 대치시켰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담당자이며 천부적인 공산주의자라고 설명하면서 말이다. 이 지식은 게르첸에게서 바쿠닌 (M. A. Bakunin, 1814〜76, 러시아의 무정부주의 혁명가)에게, 바쿠닌에게서 트카초프에게 전해졌다........실제로, 토지의 공동체 소유는 인도에서 아일랜드에 이르는 인도⦁게르만계 민족들에서, 또 인도의 영향을 받는 말라야 민족——자바와 같은——에서 조차 낮은 발전단계로 나타나 있는 제도다.…… 폴란드나 소러시아(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서유럽에서는 이 공동체소유가 사회적 발전의 일정단계에서 하나의 질곡(桎梏)이나 농업생산의 브레이크가 되어 점차 제거되어 왔다. 이에 반하여 대러시아(즉 러시아본토)는 이것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보존하고 있어 이것으로 농업생산 및 그에 따른 농촌의 사회상태가 극히 미발달단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실제로도 그렇다. 러시아농민은 오직 자신의 공동체 속에서만 생활하고 있으며 일 하고 있다. 이 농민들에게 공동체 밖의 세계란 오직 밖의 세계가 공동체에 개입할 때만 존재할 뿐이 다. 러시아 말에서 미르(미비라는 말이 한편으로는 세계를 뜻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농민공동체’를 뜻하는데 그것은 경우에 따라 분명하게 구분된다. 베스 미르 (ves mir), 즉 ‘전 세계’란 농민에게 있어서 공동체 성원의 집회를 뜻한다. 따라서 트카초프가 러시아농민의 ‘세계관’이라고 한 것은 틀림없이 러시아어 ‘미르’라는 말을 잘못 번역한 것이리라. 개개 공동체의 완전한 상호 단절 —— 이것이 전국적으로 평등하기는 하나 공통과는 정반대의 이해관계를 낳게 한다—— 은 동양적 전제주의의 자연발생적 기초로서 인도에서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형태가 지배적이었던 곳이라면 언제나 전제주의를 낳았고, 이 전제주의는 언제나 이 사회형태를 보충시켜 왔다. 러시아의 특수한 형태, 즉 츠아 전제주의조차도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러시아내 사회상태의 필연적・논리적 소산인 것이다.……러시아의 공동체 소유는 그 황금시대가 훨씬 이전에 지나가 버렸고 그 해체로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회형태 (일반적 상황)가 성숙할 때까지 존속 된다면, 그리고 농민이 언제까지나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공동으로 토지를 경작할 수 있도록 그 사회형태가 발전능력을 보여준다면 이 사회형태는 한층 고도의 형태로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러시아 농민이 부르주아적 분할지를 소유하는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이 사회형태를 더욱 고도의 형태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는 것은 부정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공동체소유가 아직 완전히 붕괴 되어버리기 전에 서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승리하여야 하며 이어서 승리한 혁명이 러시아 농민에게 이 이행에 필요한 전제조건들을 제공했을 때에 한한다. 이 전제조건, 특히 농경제도 전체를 변혁시키는데 필요한 물질적 전제조건까지 포함된 것들이 러시아농민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따라서 트카초프가 러시아농민이 ‘소유자’이기는 하나 서유럽의 무산노동자보다 ‘사회주의에 접근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완전한 엉터리이다.. 전적으로 그 반대이다. 러시아의 공동체소유를 구제하고 거기에 새롭고 참된 생명력을 가진 형태로 이행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서유럽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다. (러시아의 사회관계, 1875, M・E선집 제13권, pp. 138〜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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