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윤흥(朱允興, 1904~?)] ()
(조공 재건운동 참가자) 충남 당진 출신으로 1925년 11월 전진회(前進會) 강연회에서 ‘11월혁명 성공의 근본조건’이라는 연제로 강연했다. 1928년 1월 당진청년연맹 결성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9년 2월 ‘조선공산청년회 후계조직’ 청년부를 담당했다. 김창수(金昌洙)와 함께 충남 공산당재건설준비회와 적색구원회를 조직하고자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1932년 1월 일본경찰에 검거되었으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충남 대표로 참석했고, ‘조선공산당 중앙 및 지방동지 연석간담회’에 충남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다. 13인의 동지와 함께 ‘조공 대회소집준비위원회 구성건의서’를 작성하여 당 중앙위원회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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