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윤구(南潤九, 1892~?) 白山 波天] ()
(조공 함북도 위원) 함북 무산의 가난한 농민 집안 출신으로, 조선총독부 청진경찰서에 재직하던 중 3·1운동에 참가했다.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출옥한 후 일본에 건너가 니혼대학(日本大學) 중등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귀국했다. 1924년 조선노동총동맹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5년 3월 노농총의 분규에 개입해 서울파의 입장을 대변했으며, 신민부(新民府)의 지시로 함경도에 파견된 이강훈에게 군자금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을 소개해주었다. 1926년 1월 동북노동연맹 집행위원, 2월 함북청년단연합회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7년 4월 조선공산당 함북도 연락부 책임자가 되었으며, 청진·나남야체이까에 배속되어 활동했다. 8월 함북청년총연맹 집행위원, 9월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그해 말 서울파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조공에서 탈퇴했다. 1929년 조공[春景園黨] 함북도 청진그룹 책임자가 되었다. 이 무렵 신간회 청진지회 집행위원, 함북기자동맹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30년 2월 청진여자고등보통학교 만세시위를 선동한 혐의로 검거되어 1931년 초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해방 후 월남해 청진시민회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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