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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朴英熙, 1901~?) (號)懷月 芳村香道 松隱] ()

(문인, 카프 문학부 책임자) 서울 출신으로, 서울 공옥소학교를 거쳐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봄 일본으로 가서 토오꾜오(東京) 세이소꾸(正則)영어학교에서 2년간 수학했다. 1921년 시 전문지 『장미촌』 동인, 1922년 『백조』 동인이 되었고 1923년 파스큘라(PASKULA) 결성에 참여했다. 1924년 8월 잡지 개벽사 기자가 되었고 1925년 8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 결성에 참여했다. 1926년 「지옥순례」, 「철야」를 발표하여 문학에서의 ‘내용과 형식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927년 9월 카프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교육부 위원, 문학부 책임자가 되었다. 신간회 간부를 지냈다. 1931년 11월 중앙일보사에 들어가 학예부장 및 사회부장을 지내다가 1932년 7월 중앙일보사를 사직했다. 1934년 1월 『동아일보』에 「최근 문예이론의 신전개와 그 경향」을 발표한 후 변절했다. 1934년 11월 다시 개벽사 기자가 되었다. 그해 ‘신건설사 사건’(제2차 카프 사건)으로 검거되어 1935년 12월 집행유예로 출옥했다.
(조선문인보국회 총무국장) 1936년 12월 사상범보호관찰법에 의해 설치된 경성사상범보호관찰소에 수감되었다. 1938년 6월 조선인 전향자 대표로 선출되어 토오꾜오에서 열린 시국대응전국위원회에 참석했다. 7월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時局對應全蘇思想報國聯盟) 경성지부 간사가 되었다. 1939년 4월 황군위문작가단의 일원으로 북중국으로 파견되었다. 1940년 11월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 1941년 8월 조선문인협회 간사장, 1943년 4월 조선문인보국회 총무국장이 되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국문학사를 강의했으며, 보도연맹 간부가 되었다. 한국전쟁 때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납북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적(笛)의 비곡」(1921), 「꿈의 나라로」(1922), 「월광으로 짠 병설」(1923), 「결혼전일」(I924), 「전투」(1925), 「산양개」(1925), 「문단의 투쟁적 가치」(1925), 「푸로문예의 초기」(1926), 「신흥예술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논하여 염상섭(廉想涉)군의 무지를 박(駁)함」(1926), 「문학비평의 형식파와 맑스주의」(1927), 「문예운동의 방향전환」(1927), 「무산예술운동의 집단적 의의」(1927), 『회월시초』(1937)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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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朴英熙, 1901~?) (號)懷月 芳村香道 松隱
박영희(朴英熙, 1901~?) (號)懷月 芳村香道 松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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