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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발(李恒發, 1891~1957) 李時雨] ()

(서울청년회 회원) 전남 나주의 유복한 가정 출신으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1908년 무렵 영산포로 이사했다. 나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1년 4월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1913년 3월 중퇴했다. 4월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다가 1916년 3월 중퇴했다. 1921년 독립군 자금을 모으다 발각되어 경성지법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22년 봄 출옥하여 서울청년회에 가입했다. 10월 자유노동조합 결성에 참여하여 상무위원이 되었다. 자유노조의 창립취지문과 강령을 노동자들에게 배포하기에 앞서 『신생활』지에 취지문을 게재했다. 1923년 1월 ‘신생활지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경성지법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1925년 초 출옥 후 사상단체 효종단(曉鍾團) 결성에 참여했다. 개량주의적인 활동을 벌여오던 나주청년회에 효종단원들과 함께 참여하여 청년회를 장악했다. 나주노농공영회에 들어가 조직을 개편하고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1926년 나주노농공영회가 나주농민연맹과 나주노동연맹으로 분립되자 양 연맹 모두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조선공청 검사부 위원) 1927년 4월부터 1928년 4월까지 서울에서 잡지사 『노동운동』의 상무이사로 일했다. 5월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창립대회에 참석하여 상설론을 주장했으나 부결되었다. 9월 신간회 나주지회 창립대회에 참석했다. 1929년 4월 조선공산청년회 재결성에 참여하고 검사부위원이 되었다. 6월 신간회 복대표대회에서 중앙검사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1월 광주학생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조선공청을 기반으로 운동에 참여했다. 이 무렵 검거되어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1930년 11월 신간회 중앙상무집행위원 겸 조사부장이 되었고 1931년 4월 나주노동조합 결성에 참여했다. 1932년 12월 검거되어 다음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옥 후 서울에서 거주했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선거에 나주 갑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50년 5월 제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낙선했다. 1987년 대한민국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 인접어

이평산(李平山, 1908~?) 李鳳洙 李漢雨 李桂福 李萬五
이필(李泌, 1910~?)
이필규(李弼珪, 1909~?) 李植孝 朱基龍
이학복(李學福, 1901~38) (本)李學萬 李葆滿
이한영(李翰榮, 생몰년 미상) 李漢榮
이항발(李恒發, 1891~1957) 李時雨
이항발(李恒發, 1891~1957) 李時雨
이해명(李海嗚, 1904~?)
이헌(李憲, 1892~?) (本)李祥奎
이혁로(李赫魯, 1888~?)
이현(李鉉, 1907~?) 李載倍 李大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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