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괄(李适, 1898~?)] ()
(고려공산당 중앙감사위원) 함북 종성에서 태어나 1903년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해서 6년제 소학교를 졸업했다. 1917년 블라지보스또끄, 치따, 빼뜨로빠블로프스끄에서 제화공 및 운반노동자 생활을 했다. 1919년 연해주 한인단체에 참가했다. 1920년 옴스끄에서 러시아공산당에 입당했고, 상해(上海)로 파견되어 고려공산당 시무국의 일원으로서 기관지 『공산(共塵)』 편집에 참여했다. 러시아로 돌아가 코민테른 극동서기국에서 일했다. 1921년 5월 이르꾸쯔끄에서 열린 고려공산당 창립대회에서 중앙감사위원으로 선출되었고, 8월 중국 북경(北京)에서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을 결성하고 집행위원이 되었다. 그해 말 만주리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다. 8개월간 구금되었다가 출옥한 후 1923년 일본을 거쳐 블라지보스또끄로 탈출했다. 그후 기자대학을 졸업하고 『선봉』, 『레닌의 길로』 등의 신문 주필을 지냈다. 1937년 10월 연해주 조선인 강제이주 당시 우즈베끄공화국으로 이주당했다. 그해 소련공산당에서 제명당했다. 따쉬겐뜨주 중치르치끄 구역 ‘북쪽등대’ 꼴호즈 작업반 반장으로 활동하다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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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접어
이계석(李季錫, 생몰년 미상) 이계순(李桂筍, 1914~38) (여성) 이계심(李啓心, 1899~?) 이계철(李桂哲, 생몰년 미상) 李桂山 李正孫 이관술(李觀述, 1902~50) 李樹海 金鍵石 金大成 이괄(李适, 1898~?) 이괄(李适, 1898~?) 이광(李光, 1905~33) (本)이명춘 이승룡 이광(李珖, 1903~?) 이광림(李光林, 1910~35) 이구훈(李龜博, 1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