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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명(柳子明, 1891~1985) 柳興湜] ()

(義烈團 단원, 조선무정부주의연맹 대표)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수원농림학교를 졸업하고 1916년에 충주간이농업학교 교원이 되었다. 1919년 6월 상해(上海)로 가서 임시의회 의원과 신한청년당 비서가 되었다. 그해 귀국하여 김한(金翰) 등의 영향으로 무정부주의자가 되는 한편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연락원 역할을 했다. 1922년 다시 중국으로 가서 의열단에 입단하여 통신연락과 선전 책임을 맡았다. 1926년에 김창숙(金昌淑)과 함께 나석주(羅錫疇) 의거를 성사시켰다. 이 무렵 중국의 북벌전쟁중 무한(武漢)에서 열린 동방피압박민족연합회에 김규식(金奎植)과 함께 조선 대표로 참석했다. 1929년부터 상해의 한복염(韓復炎)농장, 천주(泉州) 여명중학(黎明中學), 중국 무정부주의의 근거지의 하나이던 상해 입달학원(立達學院)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1930년 정화암(鄭華岩) 등과 무정부주의단체 남화한인청년연맹을 조직했고, 1936년 기관지 『남화통신(南華通迅)』을 발행했다. 1937년 남화한인청년연맹의 후신으로 조선무정부주의연맹(조선혁명자연맹)을 조직하여 대표가 되었다.
(조선의용대 지도위원, 임시의정원 의원) 1938년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청년전위동맹과 통일전선을 이루어 조선민족전선연맹 결성에 참여하고, 기관지 『조선민족전선』을 발행했다. 조선민족전선연맹의 군사조직으로서 조선의용대를 결성하고 지도위원이 되었다. 8월에서 9월까지 일본군의 무한 침입으로 조선의용대가 전선에 투입될 때 제1지대와 함께 활동하다가 계림(桂林)을 거쳐 1939년에 중경(重慶)으로 갔다. 그해 조선혁명자동맹의 대표로 좌파세력의 통일전선체 조선민족전선연맹과 우파세력의 연합체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통일하기 위해 추진된 ‘7당통일회의’에 참가했다.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조선민족전선연맹의 통일이 이루어지자 임시의정원 의원이 되었다. 이 무렵 중국 복건성(福建省) 정부가 전쟁고아 교육기관으로 설립한 강락신촌(康樂新村) 제2촌의 준비처 주임으로 일했다. 해방이 되자 1946년 대만(臺灣)으로 가서 대만농사시험소 부소장이 되었다. 1950년 대만에서 대한민국으로 귀환하기 위해 홍콩(香港)에 체재하는 동안 한국전쟁이 일어나 다시 중국대륙으로 갔다. 그후 호남대학(湖南大學) 농예학부장, 호남 농학원 원예학부장 등을 지내면서 『중국 고대농업 서적의 유물주의사상』『포도를 한 해에 여러 번 맺게 하는 기술』 등 농학 관계 서적을 저술했다. 1983년 『나의 회억』이란 자서전을 썼다. 197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로부터 제3급 국기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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