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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환준(梁煥俊, 생몰년 미상)] ()

(고려공청 만주총국 선전부장)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명암촌(明岩村) 출신으로, 용정(龍井) 동흥중학(東興中學)에 재학중 사회주의사상을 수용하고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했다. 1929년 2월 길림에서 고려공청 만주총국(화요파) 남만도(南滿道) 선전부장이 되었다. 3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남만도위원회 확대회의에 참여하여 코민테른의 조선문제 결정서에 관해 토론했다. 7윌 일국일당 문제를 논의한 길성청년동맹(吉城靑年同盟) 대표자회의에 참가했다. 9월 옹성랍자(甕聲磖子) 구역 유수하지(柳樹河子)에서 정치강습반 교원이 되었다. 그후 국민부(國民府)와의 갈등이 격화되어 길림으로 되돌아갔다. 1930년 2월 광주학생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장인강(長仁江) ․ 이도구(二道溝) ․ 삼도구(三道溝) 등에서 반일시위투쟁을 지도했다. 이 무렵 고려공청 만주총국 선전부장이 되었다. 5월 메이데이를 기념하여 추진된 하얼삔(哈爾寶) 주재 일본영사관 습격작전에 참여했다.
(중공 阿城縣委 선전부장) 1930년 5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6월 약수동(藥水洞)쏘비에뜨 건립 당시 좌경방침을 비판하다가 당직 정지 및 노동개조 처분을 받았다. 그해 11월 중공 아성현위원회 선전부장이 되었다. 1931년 봄 하얼삔 중동선(中東線)철도 호로군(護路軍) 사령부 감옥에 구류되었다. 출옥 후 공산주의운동 일선에서 물러나 하얼삔, 길림에서 거주했다. 1945년 8월 길림조선인해방동맹을 조직했다. 9월 중공에 다시 입당하여 10월 길림특별지부 조선인지부를 조직하고 서기가 되었다. 11월 화전군정학교(樺甸軍政學校) 부교장이 되었다. 1946년 3월 길림성민주연맹이 조직되자 당조직 서기가 되었다. 1949년 이후 연변(延邊)교육출판사 사장을 지내다가 1957년 편집원으로 좌천되었다.
■ 인접어

양봉래(梁鳳來, 1909~?) 梁鳳儀
양봉순(梁鳳順, 1904~?) (여성)
양성룡(梁成龍, 1906~35) 양병진
양송암(楊松巖, 1909~?) 楊九龍 楊春 金應鐵 帳場
양창준(梁昌俊, 1905~?) 梁雨庭 梁又正
양환준(梁煥俊, 생몰년 미상)
양환준(梁煥俊, 생몰년 미상)
양휘(楊輝, 1912~?) 遠震波 李武榮
어구선(魚龜善, 1903~?) (號)海天
어수갑(魚秀甲, 1896~?) 魚成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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