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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준(梁昌俊, 1905~?) 梁雨庭 梁又正] ()

(중공 東滿特委 조선국내공작위 관련자) 경남 함안 출신으로,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보통학교 교원을 지냈다. 1920년대 중반 『조선일보』 함안지국을 경영했다. 1928년 4월 경남청년연맹 집행위원이 되었다. 동요작가로서 잡지 『음악과 시』를 발간했고,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에 가입했다. 1931년 이적효(李赤曉)와 함께 카프 중앙위원회의 노선에 대항하여 개성지부를 중심으로 카프쇄신동맹을 결성하고 『군기(群旗)』 간행을 주관했다. 이로 인해 카프에서 제명당했다. 그해 4월 중국공산당 동만특위 조선국내공작위원회에 가입했다. 그후 고향으로 돌아가 신간회 함안지회 검사위원, 함안농민조합 조직선전부장이 되었다. 10월 남해척식주식회사 함안농장의 비료대금 과다징수에 항의하는 농민시위를 선동, 배후조종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검거되었다가 조선국내공작위 가입사실이 탄로나 검찰에 송치되었다. 1934년 6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자유당 정무국장, 『연합신문』 사장) 형무소에서 변절했으며 출옥 후에는 송탄업, 가마니 납품업을 하면서 생활했다. 해방 후 『대동신문』 논설위원, 『현대일보』 주필, 『연합신문』 사장을 지냈고 민족청년단에 참여했다. 1951년 12월 원외자유당 결성에 참여하고 중앙당부 정무국장이 되었다. 자유당 창당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중석불(重石弗) 사건’에 연루되었다. 1952년 백골단을 조직했다. 1953년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았으나 이승만(李承晩)의 특사로 풀려났다.
■ 인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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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래(梁鳳來, 1909~?) 梁鳳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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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송암(楊松巖, 1909~?) 楊九龍 楊春 金應鐵 帳場
양창준(梁昌俊, 1905~?) 梁雨庭 梁又正
양창준(梁昌俊, 1905~?) 梁雨庭 梁又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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