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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성(金午星, 1908~?) (本)金亨俊 金亨隣 金亨傑 金東俊 金화사리 曉汀 黎曉 赤星天 赤心] ()

(조선농민사 상임이사) 평북 용천 출신으로, 토오꾜오(東京)에서 니혼대학(日本大學) 철학과를 졸업하고 잡지 『대중지광(大衆之光)』 발행에 참여했다. 1926년경 용천 소작쟁의를 지도했다. 1927년 토오꾜오에서 학생독서회 사 건으로 검거되었다. 1928년 7월 용천군 부나면(府羅面) 세도(細島)농민사에서 주최한 강연회에서 ‘농촌문제’, ‘사회상과 농민의 지위’라는 강연을 했다. 1931년 11월 일본 토오꾜오농민사(農民社) 주최 강연회에서 “‘해당배(害黨 輩)’의 농민운동과 그 본질”이라는 강연을 했다. 이 무렵 토오꾜오에서 천도교 종리원(宗理院)의 청년활동을 지도했으며, 1932년 귀국하여 『농민』, 『신인간』을 편집했고 조선농민사 상임이사가 되었다. 이후 검거되어 1934년 8월 예심에 회부되었다. 1936년 2월 『조선일보』에 「능동적 인간의 탐구」를 발표했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 해체 이후 대두된 휴머니즘에 관한 논쟁에서 네오휴머니즘을 제시했다. 1938년에서 1939년까지 『동아일보』, 『조선일보』와 각종 잡지에 문학과 철학에 관한 글을 발표했다. 1940년경에는 문학에서의 ‘세대논쟁’에 참여하여 「신세대의 개념」이라 는 글을 발표하고 딜타이류의 ‘생의 철학’으로서 세대론을 주장했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수필 ․ 평론부회 평의원으로 선출되었다. 해방 직전 건국동맹에 가입했다.
(남로당 중앙위원) 1945년 8월 건국준비위원회에 관여하고 조선문학건설본부 결성에 참여했다. 9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결성에 참여했다. 11월 조선인민당 선전부장을 맡고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에 강원도 북부 대표 로 출석했으며 조선인민당을 대표해 축사를 했다. 12월 조선문학가동맹 결성에 참여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준비위원회 사무국 산하 조사부에 소속되었다. 민전 결성대회에 조선인민당측 대의원으로 출석하여 중앙위원 및 사무국 선전부장을 맡았다. 당시 조선인민당 선전부장으로서 당내의 좌파적 입장을 대변하여 ‘민전 5원칙’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같은 달 조선문학가동맹 주최로 개최된 제1차 전국문학자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 및 평 론부 위원이 되었다. 조선인민당 내 조공 프랙션 성원이었다. 5월 『조선인민보』 편집국장으로서당국에 대한 비방 혐의로 군정재판에 회부되었다. 7월 『지도자군상』을 저술했다. 8월 미군정에 의해 좌익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령이 내려진 후 검거되어 징역 3월을 선고받았다. 12월 남조선노동당 중앙위원이 되었다. 1947년 1월 한때 검거되었다가 그해 말 월북했다. 1948년 8월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하여 제1기 최고인민회의 남조선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53년 종파분자로 지목되어 숙청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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