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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렉산드라 뻬뜨로브나 (1885~1918) (여성)] ()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당원) 러시아 연해주 니꼴리스끄 ․ 우수리스끄에 인접한 조선인 농촌 시넬리니꼬보 마을[秋風, 永安坪 또는 大甸子]에서, 함북 경흥 사람으로 1869년에 러시아로 이주한 김두서(金斗瑞)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으며, 1895년 중동선(中東線) 철도건설공사장의 통역으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갔다가 그곳에서 아버지와 사별했다. 그후 아버지의 폴란드인 친구인 스딴께비치의 후원으로 성장했다. 고향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뒤 블라지보스또끄의 한 여학교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니꼴리스끄사범학교에 진학했다. 재학중 짜르 전제에 반대하는 러시아 혁명가들의 저작을 탐독했으며, 러시아 청년혁명가들과 교유했다.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시넬리니꼬보 마을의 한 소학교 교원이 되었으며, 이즈음 후견인인 스딴께비치의 아들과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았다. 결혼 후에도 러시아 짜르정권에 반대하는 지하혁명활동에 종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 말 조선인 ․ 중국인 노동자를 대규모로 고용하는 러시아 관영공장들의 소재지 우랄지방으로 이주했다. 빼름스끄 대공장에서 통역관으로 일하면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진력했다. 이 무렵 러시아사회민주당 예까쩨린부르끄위원회에 가입했다. 1917년 초 러시아사회민주당(볼셰비끼)에 가담했다. 그해 러시아 2월혁명이 일어난 직후 빼름스끄 대공장의 조선인 노동자들의 소송대리인이 되어 공장책임자의 불법을 성토하는 등의 활동으로 소송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조선인 ․ 중국인 노동자들의 밀린 임금은 물론 수만원의 손해배상까지 받아냈다. 이 사건으로 조선인 ․ 중국인 ․ 러시아인 노동자들 사이에 널리 명성이 알려지게 되었다. 7월 러시아 극동지방의 볼셰비끼 당사업에 관한 책임을 부여받고 블라지보스또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조선인 ․ 중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조직 및 선전 활동에 종사했다. 10월 블라지보스또끄에서 열린 제2차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볼셰비끼) 극동지방 대표자회의에 무라비요프 ․ 아무르스끼 지역 대표로 참석했다.
(극동인민위 외교인민위원, 한인사회당 간부) 1918년 1월 하바로프스끄에서 볼셰비끼당 간부로 선임되었다. 같은 시기 제3차 극동쏘비에뜨대회에서 결성된 극동인민위원회 정권의 외교인민위원이 되었다. 4월 하바로프스끄에서 이동휘(李東輝) 등과 함께 최초의 조선인 공산주의단체인 한인사회당을 창립하여 간부로 취임했다. 9월 하바로프스끄가 일본군과 백위군(白衛軍)에게 함락되자, 볼셰비끼당 및 한인사회당의 간부들과 함께 바론 꼬르프호를 타고 아무르강을 거슬러 무르주로 퇴각하다가 백위군에 체포되었다. 백위군의 즉결재판에서 볼셰비끼 핵심인물 17명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달 16일 새벽 4시 우수리 강변의 ‘죽음의 골짜기’에서 총살당했다. 1967년 11월 하바로프스끄에 그녀의 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며, 처형장에는 추모탑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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