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책 처음으로 | 사전 | 자유게시판 | 회원자료 | 로그인

 

       ■ 의견바로가기

[김문준(金文準, 1894~1936)] ()

(재일조선노총 집행위원) 제주도 출신으로 1917년 수원농림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3 ․ 1운동에 참가했다. 이후 제주도에서 사립학교를 창설했다. 1927년 7월 일본 오오사까(大阪)로 건너가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산하 오오사까 조선노동조합 집행위원을 지냈다. 12월 신간회 오오사까지회 설립에 참여했다. 1928년 5월 재일조선노총 집행위원이 되었고 7월 오오사까 조선인거주권획득동맹을 조직하고 연설회를 개최했다. 1929년 4월 제주도 출신 소년을 중심으로 오오사까 조선소년동맹을 조직했다. 같은 달 ‘우리가 우리의 배를’이라는 슬로건 아래 일본에 있던 제주도 출신자의 제주도 왕래를 도모하기 위해 제주통항조합준비위원회 결성을 주도했다. 그해 가을 제주도 출신자를 중심으로 오오사까 고무공조합을 결성했다. 8월 신간회 오오사까지회 확대위원회에서 검사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2월 오오사까에서 열린 재일조선노총 전국대표자회의 및 확대집행위원회에 오오사까 대표로 참석하여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달 재일조선노총 칸사이지방(關西地方) 협의회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全協 오오사까지부 책임자, 『民衆時報』 발행자) 1930년 1월 재일조선노총을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全協]로 해소하는 데 반대했다. 5월 오오사까 고무공조합을 젠꾜오(全協) 일본화학 산업노동조합 오오사까지부로 개편하고 책임자가 되었다. 이 무렵 오오사까에서 이 단체 명의로 『뉴스』를 발행하고 『제2노동자신문』을 배포했으며, 조선어신문 『대중신문』을 발행했다. 8월 오오사까에서 고무공장 노동자파업을 준비하던 중 검거되어 12월 오오사까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았다. 1932년 4월 오오사까공소원(控訴院)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1934년 일본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했다. 1935년 6월 『민중시보』를 창간했고 이 무렵 노농후원회를 조직하고 인민전선 운동에 참여했다. 1936년 5월 이꾸노구(生野區)에서 사망했다.
■ 인접어

김명팔(金明八, 1910~38)
김명환(金明桓, 생몰년 미상)
김명희(金明熙, 1910~?)
김무(金武, 1912~?)
김문옥(金文玉, 1904~?)
김문준(金文準, 1894~1936)
김문준(金文準, 1894~1936)
김미하일(생몰년 미상)
김민산(金民山, 1917~?) 楊民山 金大陸 揚振崑 진산
김백동(金百東, 1903~?) 權逢春
김백만(金白萬, 1906~35) (本)金亨國 崔成浩 崔萬福 崔山東

뒤로
■ 의견

 



HOME - 후원방법 안내 - CMS후원신청 - 취지문 - 사용 도움말 - 회원탈퇴하기

2002 노동자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 만들기 모임
120-702 서울시 중구 정동 22-2 경향신문 별관 202호 44
laborsbook@gmail.com
모바일버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