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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천(金南天, 1911~?) (本)金孝植] ()

(카프 東京지회원) 평남 성천의 중농 집안 출신으로 1926년 평양고등보통학교에서 잡지『월역(月域)』발간에 참여했다. 1929년 3월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4월 토오꾜오(東京) 호오세이대학(法政大學) 예과에 입학했다. 7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 토오꾜오지회에 가입했다. 12월 반제국주의민족독립지지동맹, 적색구원회(赤色救援會)에 가입했다.『전기(戰旗)』『제2무산자신문』『무산청년』등의 독자망을 확립 ․ 확대하기 위해 전기사, 무산자신문반, 무산청년반, 독서회, 적색스포츠반에 가입했다. 반제국주의민족독립지지동맹 호오세이대학 C반 책임자로 활동했다. 1930년 8월 평양에서 고무직공 파업이 일어났을 때, 격문을 작성 ․ 배포했다. 같은 달 국치기념일에 즈음하여 격문을 작성하고 배포했다. 9월 성천청년동맹 결성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이 되었고 10월 이후 무산자사(無産者社) 서기국원이 되었다. 1931년 10월경 검거되어 1934년 7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1935년 5월 임화(林和), 김기진(金基鎭)과 함께 카프 해산계를 경기도경찰부에 제출했다. 조선문인보국회 소설 ․ 희곡부 평의원을 지냈다.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서기장, 남로당원) 1945년 8월 조선문학건설본부 결성에 참여했으며,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서기장이 되었다. 같은 달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12월 전국문학자대회 준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46년 2월 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같은 달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문학가동맹 대표로 참석하여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8월 문학대중화운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남조선노동당 문화부에 소속되었다. 1947년 2월 ‘문화옹호 남조선 문화인예술가 총궐기대회’에서 ‘남조선의 현정세와 문화예술의 위기’를 보고했다. 7월 ‘미소공위 경축 임시정부수립촉진 인민대회’ 준비위원, 8월 ‘8 ․ 15해방 2주년기념 시민대회’ 준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48년 8월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하여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49년 6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상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문화전선사 책임자, 조선문학예술 총동맹 서기장을 지냈으나 1953년 종파분자로 지목되어 숙청되었다. 소설 및 평론으로는「영화운동의 출발점 재음미」(1930),「반카프 음모사건의 계급적 의의」(1931),「공장신문」(1931),「공우회」(1932),「물」(1933),「임화에 관하여」(1933),「창작방법에 있어서의 전환의 문제」(1934),「창작방법의 신국면-고발의 문학에 대한 재론」(1937),「미담」(1938),「민족문화 건설의 기본임무」(1946),「조선문학의 재건」(1946) 등이 있다.
■ 인접어

김기환(金紀煥, 1903~?)
김길우(金吉友, 1899~?) 金春植 金成春 金都成 金島城
김낙천(金洛千, 1907~35) 金洛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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