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레스2] (Johann Joseph von Görres )
출생 - 사망 | 1776. 1. 25. ~ 1848. 1. 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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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작가이자 역사학자. 소년 시절에 프랑스 혁명에 공감하여 고교를 나오자마자 공화주의 결사의 활동가가 된다. 그 결사 대표단의 한 사람으로서 프랑스에 파견되었지만, 나폴레옹의 대두에 환멸을 느끼고, 귀국 후 태어난 곳인 코브렌츠의 고교 교사(1801-06, 08-14), 하이델베르크 대학 사강사(06-08)로 일했다. 이 사이 셸링의 자연철학의 영향을 받아 분극성의 원리에 기초하여 우주의 발전과 인간의 유기조직을 설명하는 대단히 특이한 '형식주의'적 생리학을 전개하고[『아포리즘』 2. 542], 다른 한편으로 낭만파 시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독일 고대 서사시 · 중세 예술의 연구와 이란 영웅 서사시의 번역에 몰두했다.
반 나폴레옹 투쟁의 고양과 더불어 『라인 메르쿠르(Rheinischer Merkur, 1814-16)』지를 창간하여 독일 해방의 논진을 넓혀 주목을 받았지만, 그 후 프로이센 정부의 반동화를 비판했다고 하여 발행을 금지 당했다. 19년 카를스바트 결의에 의한 언론통제가 시작되면서 『독일과 혁명(Teutschland und die Revolution)』에서 이를 비난하고, 그로 인해 스트라스부르로 어쩔 수 없이 도망하게 된다.
여기서 가톨릭주의자로서 역사 연구에 힘을 기울여 27년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1세의 초청을 받아 뮌헨 대학의 역사학 교수가 된다. 이후 점차 신비주의적 경향에 기울어 『기독교 신비주의(Die christliche Mystik. 4 Bde.,1836-42)』에서는 다양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세계사의 기초, 구분 및 시대순서에 관하여(Ueber dieGrundlagen, Gliederung und Zeitfolge der Weltgeschichte, 1830)』에서는 신에 의한 역사지배가 근본적 원리이자 선악의 대립도식에 기초하여 역사가 구분된다는 역사관을 전개했다.
헤겔은 이러한 역사관에 대해 그것은 세계사를 "수"에 의해서 규정하는 "외면적인 도식화"이며, "따분한 단순함을 역사기술 안으로 들여오는" 것이라고 평가한다[『베를린 저작집』 11. 512]. -기타자와 쓰네토(北澤恒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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