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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 (François Pierre Guillaume Guizot)

출생-사망: 1787년 ~ 1874년


프랑스 근대 역사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자 7월 왕정기의 지도적인 정치가이다. 님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던 부친은 공포정치시기에 연방주의자(fédéraliste)로서 처형당하며, 망명지인 제네바에서 엄격한 프로테스탄트 교육을 받았다. 1805년에 파리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1812년에는 소르본 대학의 역사학 교수의 자리를 얻는다. 순리파(doctrinaires)의 루아예 콜라르와 손잡고 한때는 정부 내의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다. 1822년에는 극우 왕당파 빌렐 내각에 의해 소르본의 교수직에서 쫓겨났지만, 1828년에 복귀할 때에는 자유주의적인 학생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유럽 문명사』는 복귀 후 첫 번째 강의를 정리한 것인데, 거기서 기조는 프랑스 혁명의 원리를 제3신분의 입장에서 옹호하고 있다. 기조에 의하면, 문명사란 국민국가 형성(중앙집권)과 인간정신의 해방(자유)의 통일적 발전이며, 양자의 모순의 폭발이 혁명이 된다. 양자를 결합하는 것으로서의 본연의 대의제에 대한 탐구가 기조의 중요한 작업이었다.

7월 혁명의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그가 2월 혁명에 의해 타도되는 권력의 대표(수상)가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7월 왕정 하에서 기조가 수상에 임명된 것은 1847년 9월이지만, 기조는 내무장관, 문부장관, 외무장관 등을 역임하며, 1840년 이후에는 실질적으로는 기조 정권이었다. 1843년 10월에 파리로 이주하고, 1845년 2월에는 파리에서 추방당했다. 맑스는 이 부르주아 정권의 지도자에게 가차 없는 비판을 퍼붓고 있지만, 역사가로서의 기조에 대해서는 일정한 평가를 부여하면서 자신의 계급투쟁사관을 기조를 비롯한 프랑스의 역사가로부터 배웠음을 인정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유럽 문명사』는 일본 메이지 시기의 문명 개념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서적 가운데 하나이며(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을 보라), 몇 차례 번역이 시도되었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기조 재평가 움직임이 있으며, '부르주아지의 그람시'(로장발롱)와 같은 해석도 나오고 있다.

-니시카와 나가오(西)

[네이버 지식백과] 기조 [François Pierre Guillaume Guizot] (맑스사전, 2011. 10. 28., 마토바 아키히로, 우치다 히로시, 이시즈카 마사히데, 시바타 다카유키, 오석철,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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