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드] (Jules Guesde)
출생-사망: 1845년 ~ 1922년 본명: Mathieu Basile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파리 코뮌을 변호하는 신문 기사를 작성했다가 탄압을 피해 1871년 9월에 제네바로 망명했다. 에로 형사법원의 결석재판에서 5년 형을 받았다. 망명 중에 그는 맑스에게 반대하는 반권위주의자를 자임하고, 제네바에서는 바쿠닌을 지지하는 '프로파간다 행동지부' 소속으로 송빌리에 대회에 출석해 서기를 맡았다. 1872년 봄부터는 로마로 옮겼는데, 헤이그 대회를 둘러싸고 툴루즈에서 맑스파의 당트레그와 브루스 사이에 벌어진 논쟁에서는 브루스를 지지했다. 이 시기의 그는 명백히 무정부주의적이었다[1873년 3월에 작성된 『쥐라연합 회보』(Bulletin de la Fédération jurassienne ...) 4월 15일호에 게재된 그의 기사 참조].
1876년 9월, 신문법 위반죄의 시효가 끝나면서 귀국하여 주간지 『에갈리테』(L'Égalité)를 창간 · 편집했다. 그 후 라파르그를 알게 된 것을 계기로 맑스주의로 기울어 프랑스에 그것을 수입 · 소개하게 되었다. 1880년에 런던으로 가서 맑스와 엥겔스를 만나 맑스주의에 대한 신념을 굳힘과 동시에 라파르그와 노동당을 결성하여 강령을 기초 · 출판했다. 같은 해 11월, 맑스는 미국의 조르게에게 "게드는 우리 편이 되었다"라고 쓴다. 1904년 8월의 제2인터내셔널 암스테르담 대회에서 조레스의 '절충주의'에 반대했으나 대회 결의에 따라 조레스와 함께 통일사회당 창립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국가주의적으로 되었다. -와타나베 고지(渡辺孝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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