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첸] (Aleksandr Ivanovich Gertsen , Aleksandr Ivanovich Hertsen)
출생-사망: 1812년 ~ 1870년 맑스가 "딜레탕트의 사회주의자"[「스테파노니와 인터내셔널 재론」, 18:80]라고 그 성격을 규정한 러시아의 급진적 사상가이자 망명활동가. 1829년에 모스크바 대학에 입학하자 오가료프 등과 급진적인 그룹을 결성하여 생시몽파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 후 1840년대 초의 모스크바에서 슬라브파와 서구파로 나뉘기 시작하고 있던 급진적 지식인 · 사상가들 중에서 게르첸은 서구파의 지도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는 유형지인 우라지밀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온 후 헤겔 철학을 연구하여 그 반동성을 깨달으며, 이후 헤겔 좌파인 체시코프스키의 역사철학에 주목하고, 나아가서는 동시에 유물론에 친밀감을 자각해간다. 1850년에 최종적으로 러시아에서 망명할 것을 결심하고, 1852년에 런던 교외에 거주한다. 이듬해부터 인쇄소를 시작하고, 57년부터는 러시아어 신문 『코로코르』를 발행하여 조국의 농노해방 등을 호소하는 등 혁명적 프로파간다에 착수했다. 69년에는 파리에 건너가 거기서 맑스가 지도하는 인터내셔널에 주목했다. 그와 같이 맑스에 대해 관용적인 상황에 이르러 병사한 게르첸을 맑스는 다음과 같이 혹평하고 있다.
"인터내셔널이 창립되기 약 10년 전에 나는 러시아의 범슬라브주의자 게르첸 씨와 나란히 어느 공개 시위집회에서 연설자로서 단상에 올라가는 것을 거절했다"[같은 책, 18:79]. 맑스는 게르첸이 "나에 대한 소문이 가득 실려 있는 책"[같은 책:80]을 유작으로 간행한 데 대해 화를 냈다. 그러나 맑스의 게르첸 이해에도 문제는 많았다.
-이시즈카 마사히데(石塚正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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