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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홍 (姜大洪, 1904〜?)] ()

(고려공청 경남도책) 경남 김해 출신으로, 일본 유학중 1923년 9월 칸또오(關東)대지진을 겪은 뒤 귀국했다. 1925년 1월 경남청년연맹 발기준비위원이 되었다. 6월 진영소작인회 대회에 참여하여 실행위원이 되었고 9월 진영소작 인회 주도로 개최한 촌정농장(村井農場) 소작인대회에 참여했다. 12월 진영청년회에서 발기한 삼각(三角)청년연맹 창립대회에서 조직부 담당 집행위원이 되었다. 그해 고려공산청년동맹 경남 책임자로 선정되었다. 1926년 7월 부산노동청년회 집행위원이 되었다. 10월 『동아일보』 부산지국 기자로 재직하던 중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11월 고려공청 경남도책, 조선공산당 경남도당 위원이 되었다. 1927년 7월 부산청년회 총회에서 정치문화부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2월 부산청년동맹 창립대회에 참여하여 서무부 위원이 되었고, 신간회 부산지회 대회에서 본부대희 대의원 및 간사로 선출되었다. 같은 달 조선공산당 제3차 대회[春景園黨]에 경남 대표로 참석했다. 1928년 2월 경남청년연맹 창립 서면대회(書面大會)에서 검사위원이 되었다. ‘제3차 조공 검거 사건’으로 검거되어 1930년 6월 평양지법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937년 11월에서 1940년 5월까지 『동아일보』 부산지국장을 지냈다. (남로당 부산시당 위원장) 해방 당일 부산치안대 결성에 참여하고 대장이 되었다. 1945년 8월 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 결성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총무부장이 되었다. 9월 치안대를 확대 개편한 치안사령부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10월 부산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11월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에 경남 대표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1946년 1월 민주주의민족전선 부산지부 결성에 참여하고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2월 민전 결성대회에 경남 대표의 일원으로 참가했고, 3월 남조선노동당 부산시당 위원장이 되었다.
■ 인접어

강기보 (康起寶, 1906〜?) 姜基寶
강기적 (康基迪,1901〜?)
강달모 (姜達模,1909~75)
강달영 (姜達永, 1887〜1942) 黃山 紅爐
강대창 (姜大昌, 생몰년 미상)
강대홍 (姜大洪, 1904〜?)
강대홍 (姜大洪, 1904〜?)
강덕선 (姜德善, 19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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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범 (姜東範, 1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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