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책 처음으로 | 사전 | 자유게시판 | 회원자료 | 로그인

 

       ■ 의견바로가기

[나폴레옹 3세 (1808-73) ] (Napoleon III)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빠르트, 나폴레옹 1세의 조카,
프랑스 제 2 공화국 대통령 (1848년 - 52년).
제 2 차 프랑스 왕국의 황제( 1852년 -70년)

나폴레옹 1세의 의붓딸이었던 모친의 망명 생활 중에 성장하였다. 그는 유년시절 부터 나폴레옹과 그가 창설한 제국에 애정을 갖도록 교육 받았다.

24세까지, 보나빠르트는 그 자신을 대 나폴레옹의 왕관의(당시 생존하지 않았던) 상속자로 생각하였다

그의 유산이 프랑스 군인들의 충성심을 불러 일으키리라는 것을 믿고, 보나빠르트는 1836년 10월 30일 쿠데타 시도를 노렸으나 스트라스부르크(Strasbourg) 수비대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당시 프랑스 황제 루이 필리페(Louis-Philippe)는 그를 미국으로 추방했으나, 단 몇 달 후 보나빠르트는 죽어가는 모친을 보기 위해 스위스로 돌아왔다.
1년 후 그는 스위스로부터 추방되어 영국으로 이민했다.

1840년 8월 6일 , 보나빠르트는 볼로뉴(Boulogne)에서 구데타를 재차 시도했으나, 지방 수비대가 그를 돕지 않아, 그의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그는 체포되어, 진지 안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보나빠르트는 흔들리지 않고 1846년 5월 그는 다시 탈출하여 잉글랜드로 향했다.

1848년 혁명개시 후, 보나빠르트는 급히 프랑스로 이동하였으나, 즉시 잉글랜드로 재송환 되었다.
그러나 보나빠르트의 지지자들, 지령당원(Party of Order)들은 그를 선거에서 지지하여, 9월에 정부 5개 부처를 그에게 맡겼고 이는 대통령 선거를 위한 시발점이 되었다.

집중적인 선거운동과 선전공세로 인해, 1848년 12월 보나빠르트는 입후보한 단 한명의 후보자가 되었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보나빠르트는 즉시 군대를 보내어 교황이 로마를 재탈환하는 일을
도왔으며, 국내에서 노동자를 몹시 잔인하게 탄압하였다.
그는 이 당시 권력강화에 많은 시간을 들였고 ,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정부인사에 채워 넣었다.
그러나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지정하였으며, 이에 만족하지 못했던 보나빠르트는 헌법을 개정할 방법을 모색하였으나 합법적으로 개정할 수 있는 정족수를 획득하는데 실패했다.

1852년 대통령 임기가 만료되기 전에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하고, 그 자신이 황제가 되었다. 1870년에는 프로이센의 왕자가 스페인의 황제가 되었다.

보나빠르트는 프로이센 왕의 친족이 스페인을 통치할 것 이라는 소식에 크게 격분하여
프랑스와 프로이센은 1870년 7월 18일 전쟁에 돌입 하게 되었다.

이 전쟁에서 그의 군대는 연패를 당해 6주를 채 버티지 못하고 결국 1870년 9월 2일 세단(Sedan)전투에서 그의 8만 군사가 항복을 선언했다.

보나빠르트는 말년에 영국으로 망명하여 약 1 년 후 1873년 1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참조 :

1848 년에 주도한 쿠데타 이후 보나빠르트는 마르크스의 ' 브뤼메르의 18일
(Eighteenth Brumaire of Louis Napoleon )' 에서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

또한 마르크스는 저서' 프랑스 내전(The Civil War and France)' 에서 1870년 프랑스 - 프로이센 전쟁에서의 그의 역할을 비판했다.


■ 인접어

김남주
김성동 (金聖東)
김일성(金日成, 1912~1994)
김지하
나폴레옹
나폴레옹 3세 (1808-73)
나폴레옹 1세
나폴레옹 1세 (1769-1821)
나폴레옹 3세
나폴레옹 3세 (1808-73)
네스터 마크노(1884-1934)

뒤로
■ 의견

 



HOME - 후원방법 안내 - CMS후원신청 - 취지문 - 사용 도움말 - 회원탈퇴하기

2002 노동자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 만들기 모임
120-702 서울시 중구 정동 22-2 경향신문 별관 202호 44
laborsbook@gmail.com
모바일버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