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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Islam)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하나의 일반적인 관례로서 이슬람교의 기원과 역사적 역할에 대하여 침묵을 지켜왔다. 이슬람교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언급은 매우 함축적이지만 불완전하다. 마르크스는 아시아 사회의 본질에 대하여 쓴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떠한 적절한 해답도 주어지지 않았던 중심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어찌하여 동양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인 듯이 보이는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엥겔스는 《신 시대》에 기고한 초기 기독교 역사에 대한 논문에서 이슬람 사회구조의 본질적인 전개 과정을 유목문화와 정착문화 사이의 정치적인 진동으로 생각했다. 종족적인 엘리트의 순환에 대한 이븐 칼둔[Ibn Khaldun]의 이론을 재현시킨 이슬람교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엥겔스는 이슬람교가 아랍의 도시인들과 유목하는 베두인[Bedouin]족에 적절한 종교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붕괴에 싹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도시인들은 부유해지고 사치스러워졌으며 "법률"을 지키는 데 있어서도 해이해졌다. 가난하고 동시에 엄격한 도덕률을 지키고 있었던 베두인족은 시기심과 부러움으로 그러한 부유함과 쾌락을 바라보고 있었다.'(《종교에 관하여》, '초기 기독교 역사')
가난한 유목민들은 타락한 도시 거주자들을 축출할 목적으로 예언자 뒤에 주기적으로 집결하였으며 도덕적인 행동을 준수하고 본래의 신앙을 지켜나갔다. 몇 세대가 지나면서 청교도적인 베두인족은 도덕적인 측면에서 개인주의적으로 되고 종교적인 규율을 잘 지키지 않게 되었다. 더욱이 도시를 깨끗이 정화할 목적으로 구세주[Mahdi]가 나타났으며 정치적 지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지도력의 지속적 변화는 현저하게 정체되어 있던 사회의 경제적 토대의 근본적 재조직과 일치하지는 않았다.(→아시아적 사회)
엥겔스는 이슬람교의 수많은 구세주 운동과 분파주의 운동을 유목민들과 도시인들의 끊임없는 갈등의 표현으로 보았지만, 유목민의 牧農주의와 정착 사회의 모순적인 융합의 결과로서 이슬람교 그 자체에 접근하는 것은 가능하다. 서기 622년에 헤지라에 기원을 둔 (마호멧이 메카에서 메디나로 들어감으로써) 이슬람은 아랍 반도의 무역중심으로서, 상업적 문화의 일부분으로 이해되었다. 막스 베버와 같은 사회과학자가 이슬람교를 '군인들의 종교'로 취급한 반면에, 이슬람교는 근본적으로 17세기에 아랍 경제를 지배하게 된 메카를 통해 무역 팽창의 경제적 보상을 즐기는 도시 엘리트의 종교였다. 도시적 경건함과 민족적 미덕이 결합된 것으로서의 이슬람교는 피보다는 신앙에 근거한 새로운 정치적 통합의 원리를 제시하여 예언자와 보편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를 조직하였다. 여러 종족을 도시의 상업적 지도 하에 있는 단일한 종교적인 공동체 내에 통합시킴으로써 이슬람교는 무역을 보호하고 상업층에 특수한 정치적 권력을 부여하였다. 632년 예언자 마호멧이 죽은 후 정치적 후계자의 문제를 놓고 알리[Ali]의 후계자들과 '정통 카리프의 후계자'(모슬렘)의 지도자들 간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종교가 중앙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빠르게 주도권을 확립했다. 도시의 상업 엘리트와 베두인족의 유목 전사들의 융합으로 볼 수 있는 이슬람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확대시킬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는 주변 제국들(사사니안 제국과 비잔틴)의 군사적 취약성과, 부분적으로는 '밀레트 체제'라고 불리는 기독교와 유대 종족과의 상호 의존적이고 보호적인, 주민과 관련하여 이슬람교가 창출해 낸 후원체제에 의해 설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슬람교의 정복은 이슬람교라는 신앙이 지배하게 되는 사회형태의 사회구조를 파괴하지 않는다. 이슬람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일종의 세습적인 제국처럼 널리 확장되었다. (1)땅의 소유는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세습이 안 되는 성직자 녹의 형태로 토지소유주들에게 분배된다. 성직자 녹을 내는 소유권에 부가하여 종족의 토지와 종교, 재산이 있다. (2)국가관료는 노예를 하인으로 썼으며, 노예군은 왕가나 성직자들을 위한 기병대와 도시 주민 사이의 완충지대였다. (3)도시문화와 종교적 경건함은 상인계급의 이익과 생활 유형에 의해, 특히 북아프리카와 중앙 아시아의 선진 사회에서 형성되었다. 상인계급의 부는 법률(the shari'a)을 통제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종교적 지도자(the ulama)와 사치품의 대륙간 무역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슬람 사회가 3개의 제국(사파브, 티무르, 오토만)으로 나누어지기 이전인 팽창과 통합의 시기(700∼1500)에 있어서 사치품(향수, 비단, 향료, 보석 등)에 기초한 상업적 부와 더불어 13세기와 14세기의 몽고의 침입에 의한 경제적 파탄에도 불구하고 제지, 직물, 카피트, 가죽제품, 도자기들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특히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 스페인이 농업발전, 조선업, 광산, 그리고 직물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정복과 팽창, 그리고 수공업의 성장으로부터 추출된 경제적 잉여가 왕가의 후원을 통하여 과학, 의학, 미술에 대한 학구적이고 합리적인 왕궁문화 성장의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슬람은 이슬람 문화권인 스페인을 통하여 르네상스의 지적 근거가 되었던 그리스 철학과 과학의 창조적 매개물이 되었다.
이슬람 사회에 토착 자본주의 발전이 부재하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적 역사편찬에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회교 신앙과 이슬람 신학의 운명론, 혹은 고리대금업에 반대하는 법적 규제가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을 막았다는 견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하여 거부되었다. 예를 들어 로딘슨(Rodinson 1974)은 코란(신의 교시)과 순나[Sunnah](예언자들의 정통적인 실천록)에 나와있는 경제적 행위와 관련된 규정이 경제 발전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반대로 자본주의적 부문은 유럽의 발전상과 대체로 유사한 이슬람 사회에서 발전했다. 그러나 그러한 자본주의적 부문의 팽창을 제한하는 세 가지 한계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1)지역적 촌락경제의 자급자족성, (2)길드체제, 무역관계, 토지 소유 등을 통한 국가의 지배, 그리고 (3)유목민의 침입에 뒤이은 사회경제적 발전의 주기적인 좌절 등이다. 로딘슨의 주장이 갖는 한 가지 문제는 무역과 상업자본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동일시한 것이다. 이슬람 사회에서 자본축적의 주요 근원이 되는 대륙간의 무역은 토착적인 생산이나 분배에서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소규모집단의 상인들에 의해서 통제되었다. 비록 농촌의 잉여가 조세 구조를 통하여 도시 거주자들에게 전유되기는 했지만, 도시와 농촌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경제적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농민의 수요는 지방 자체적으로 자급자족되었기 때문이다. 이슬람 사회에서 무역의 역할은 마르크스 주장의 실례를 보여 주었다. 즉 무역이 유럽에서는 전통적인 경제관계를 해체시키는 반면에, 그것의 부정적 결과는 무역이 발생하는 생산적 공동체들 간의 본질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의 고대 공동체는 그러한 대륙간의 무역에 의해서는 거의 파괴되지 않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종교적 신앙과 주체의식을 일소시키기 위해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전을 기대했으나, 이슬람은 자본주의적 변형의 영향에 매우 저항적임이 판명되었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이슬람교 반응의 결과는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첫째로, 수니파와 성인들의 추앙과 관련하여 지역적이고 불가사의한 관습들을 억제할 목적으로 광범위한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났다. 따라서 교육, 성서인 코란의 정통성과 제식의 간소함이 재강조되었다. 도시인들의 성서에 대한 경건함에 지방인들의 대중적인 종교의식이 첨가되었다. 개혁된 이슬람교는 동시에 코란의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이슬람교를 세속적인 현대 산업사회와 공존할 수 있게 만들었다. 둘째 단계에서 이슬람교는 울라마[ulama]가 도시빈민과 실업청년층, 그리고 소외된 학생들의 대변자로 나타난 상황에서 군사적이고 반식민주의적 인민주의의 입장을 내세웠다. 회교사원, 마드라샤[madrash](종교학교), 울라마가 대중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얻음으로써 청교도적이고 군사적인 이슬람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예속적 체제에 대항하는 주요한 동력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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