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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르] (Thiers, Louis Adolphe)

프랑스의 정치가, 저널리스트, 그리고 수정주의적 역사가. 제3공화국의 첫번째 대통령(1871-1873) 티에르는 특히 1832년 Duchess de Berry와 1834년 공화주의자들의 군주정치에 맞선 전대중의 폭동들에서 자신의 잔인성을 주목받게 되었다. 오를레앙가 사람들의 군주정치 아래서 티에르는1836년과 1840년에 수상 겸 외무장관, 1833-1834년에 상공장관, 1832년과 1834-1836년 사이에 내무장관, 1830년에 재무차관을 지냈다. 나중에 왕좌를 얻기 위해서 1838년에 루이 보나파르트를 지지했고, 제2제정(프랑스제국)에서 자신의 정부에서 의원이 되었다. 1870년까지 정부를 이끌어 가면서 티에르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을 강력하게 선동했지만, 프랑스의 군대가 수주일 동안 거의 모두 패퇴에 패퇴를 거듭하여 타격을 입는 동안 티에르는 재빠르게 자신의 정책을 바꿨고, 프랑스가 이미 전쟁에 졌을 때는 "전쟁에 맞서라고 외쳤다."
전쟁을 위한 선동이 자신의 전체 경력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책략을 통하여 그는 전쟁에서 프랑스의 결정적 패퇴 이후 상승하는 정치적 입장에 자신을 내세웠다. 티에르는 독일과의 조약 협정에 서명하고 항복하도록 강요받는 국민방위군의 정부로부터 가능한 자신의 힘을 확산시키려는 목적을 성취했다.
조약에 서명하면서 티에르는 국민투표를 요청했고 상승하는 분위기로 입성했다: 티에르는 26개의 다른 현들에서 선출되엇다. 1871년 2월 17일 티에르는 "공화국의 중요한 행정상 권력자"로 선출되었고, 그 해 8월 제3공화국의 첫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1871년 5월 티에르는 파리콤뮌을 잔인하게 해산시키기 위하여 독일의 지원을 받는 프랑스 군대를 파리로 보냈다. 티에르는 1873년에 자신의 지위를 사임했고, 1877년 9월에 죽었다. 괴물같은 노인 티에르는 거의 반세기 동안 프랑스 시민계급에 마법을 걸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 자신의 계급적 타락의 지적 표현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한 사람의 정치가 이전에 한 사람의 역사가로서 자신의 허위 권력들을 증명했다. 자신의 공적 삶의 연대기는 프랑스 불행의 기록이다.
Saint Germain l'auxerrois의 교회와 Archbishop의 궁전이 대성당 스파이와 Duchess de Berry의 감옥 남자 산부인과 의사를 쫓는 행동으로 약탈되는 동안, 1830년 이전에 공화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그는 자신의 보호자인 라피트를 배신하므로서, 그리고 성직자에 맞서 폭도를 흥분시켜서 루이 필립 아래 있는 관직으로 빠져 들어갔다.
협회의 신문과 권리에 맞서 9월의 연속적인 수치스러운 법들과 Rue Transnonian에서 공화주의자들의 대량학살들은 그의 작품이었다. 1840년 3월 내각의 우두머리로서 재등장하면서, 그는 프랑스를 요새화 하기 위한 자시의 계획으로 프랑스를 경악시켰다......티에르는 부에 대한 탐욕과 부를 생산하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만은 끝까지 유지시켰다. 루이 필립 아래 있는 그의 첫번째 내각에 입각하면서 욥과 같이 가난했던 그는 백만장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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