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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階級-2] (영, Class, 독, Klasse, 프, Classe)

1. 계급 개념의 어원과 변천

 

계급이라는 용어는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계급은 사회계층 연구의 중심적인 개념으로, 비슷한 경제적·사회적 지위와 공통된 이해 위에 결합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을 묘사하기 위해 다양한 뉘앙스를 지닌 채 사용되어 왔다.

계급 개념은 역사 속의 인간 행위를 이해하는 데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사는 사회적 과정이며 개인은 사회적 존재로서 사회적 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사회와 개인을 분리해서 볼 수 없다. 또한 개인은 여러가지 사회적·경제적 이해관계로 얽힌 집단에 소속되어 행동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집단과 개인들이 역사발전 과정에서 일으키는 여러 사건들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계급 개념은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계급(class)의 라틴어 어원은 클라시스(classis)’이다. ‘클라시스는 세르비우스 툴리우스(Servius Tullius)에 귀속된 로마인들을 구분하는 데 사용했던 사회 용어였다. 초기 로마에서 계급은 군사복무 형태의 구분뿐만 아니라, 재산세를 내는 사람과 내지 않는 사람들의 지위구분을 의미하였다. 특히 클라시스는 종종 하층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는 평민들을 의미하곤 했다. 아우구스투스(Augustus) 제정 이후에야 클라시스는 비로소 모든 종류의 사물을 집단으로 분류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라틴어인 클라시스16세기에 영어에 편입되었다.

라틴어 클라시스가 사용되기 전 고대 그리스 시기에도 사람을 집단으로 나누었다. 플라톤(Platon)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사회집단을 시민공동체 전체의 목적에 기여한 공헌에 따라 등급 지워진 지위와 권력을 가진 기능적 계급으로 나누어 사용하였다. 유럽 중세 시기에도 많은 사상가들이 사회집단을 기능에 따라 싸우는 사람, 일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으로 나누었다. 솔즈베리의 존(John of Salisbury)은 중세 사회에 왕, 왕의 조력 군인, 관료(magistrate), 농민, 장인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움직이고 있다고 보았다. 유럽사에서 근대 이전 시기에 계급이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gradus’, 프랑스의 신분(état)’, 독일어의 지위(Stand)’, 그리고 영어의 서열(orders)’이나 사회적 지위(estates)’처럼, 사회집단 사이의 정체성을 구분하기 위해서보다는 신분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1770~1840년 사이에 집단이나 구분을 뜻하는 일반명사 계급(class)’이 특정 계급을 가리키는 사회적 내용을 담는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산업혁명에 따른 경제적 변동, 미국 독립 전쟁과 프랑스 혁명 같은 정치적 격변 등이 발생했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근대적 의미를 지닌 계급이란 새로운 개념이 출현하였다. 하층 계급(lower class)1772년에 사용되었고, 최하층 계급(lowest class 또는 lowest classes)1790년대 이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840년에 이르러서 중간계급(milddle classes)과 노동계급(working classes)은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다. 이 시기에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한나 모어 (Hannah More) 그리고 제임스 밀(James Mill) 등이 계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또한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와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등의 저작에서 노동하는 계급(the laboring classes)’노동계급(the working class)’이라는 새로운 계급 개념이 사용되었다.

1840년대에 마르크스(Karl Marx)와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계급이라는 용어를 자본주의 시대의 인구집단을 분류하는 사회·경제 개념으로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계급을 사회·경제 개념으로 파악한 것은 마르크스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18세기에 프랑스의 케네(François Quesnay)경제표Tableau économique(1758)에서 경제적 기준에 근거하여 농민·영주·상인이라는 세 계급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이 구분은 농업생산 방법에 전적으로 치우친 계급 모델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생시몽(Henri de Saint-Simon)이 산업사회를 향한 계급 모델을 본격적으로 발전시켰는데, 그는 산업자의 교리 문답Catéchisme des industriels(1823~1824)에서 프랑스 혁명이 부르주아 계급과 산업 계급으로 구성된 계급사회로 이행하는 데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산업계급(classe industrielle)이 다수 집단으로 성장하여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뒤에 노동자들과 생산수단 소유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두 계급 사이의 갈등이라는 계급 이론의 틀은 마르크스 이전에 로렌츠 폰 슈타인(Lorenz von Stein, 1760~1825)과 장 바티스트 노통브(Jean Baptiste Nothomb)에게서도 나타난다. 슈타인은 1789~1850년 프랑스 사회운동의 역사History of the Social Movement in France, 1789~1850에서 두 계급 사이의 갈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청년 마르크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노통브도 노동을 파는 계급과 노동을 사는 계급이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이미 말했다[벨기에 국민회의 토론Discussions du congres national de 依匈(1830.1831, 1844)].

 

2. 마르크스와 계급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은 사회 . 경제적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계급 이론과 같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계급 이론은 기존의 사회 상태를 묘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사회발전 법칙에 따라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계급 개 념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계급 이론과 구분된다.

마르크스는 역사적으로 규정된 사회적 생 산체계 내에서, 그리고 생산수단과의 관계 속 에서 계급을 보고자 했다. 엥겔스도 마르크스 처럼 사회적 생산력이 발전하여 잉여생산물 이 발생하는 역사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필연 적으로 인간사회는 계급별로 분열될 수밖에 85 계급없다고 파악하여 사회적 총노동에 의하여 생 산되는 생산물의 총량이 만인의 필수적인 생 활수단을 겨우 초과하는 한, 따라서 노동이 대다수 사회성원의 모든 또는 거의 모든 시 간을 빼앗는 한, 그 사회는 불가피하게 계급 들로 분열된다. 노동에만 얽매어 있는 대다수 외에 직접적인 생산적 노동으로부터 해방되 어 노동의 관리, 국가적 업무, 사법, 학문, 예 술 등 사회의 공동적인 관심사에 종사하는 계 급이 형성된다.”라고 하였다. 사회가 계급별로 분열하는 것은 사회발전 의 일정 단계에서는 불가피했다. 역사발전 단 계에 따라 그 단계에 맞는 계급이 출현하고 사라져 갔다. 노예제 사회에서는 노예주와 노 예가, 봉건제 사회에서는 봉건영주와 농노가,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와 노동 자가 주요한 적대 계급으로 존재했다,“자유 인과 노예, 귀족과 평민, 봉건영주와 농노, 장 인과 도제, 한 마디로 말해 억압자와 피억압 자는 항상 서로 대립하면서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한 투쟁을 끊임없이 수행해 왔 다. 이 투쟁은 매번 사회의 혁명적 변혁이나 투쟁하는 계급들 모두의 몰락으로 끝났다.”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을 통해서 인류사회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라는 과도기적 단계 를 거쳐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로 나간다 고 보았다. 이에 대한 언급은마르크스가 바 이데마이어에게 보내는 편 ]」에 잘 표현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새롭게 행했던 것은, 계급의 존재는 생산의 특정 한 역사발전 단계에만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 재로 나아간다는 사실, 이 독재는 그 자체 가 모든 계급의 지양(Aufhebung)과 계급 없는 사회로의 이행(Ubergang)을 이룬다는 사실들 을 입증했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양대 계급으 로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들 었다. 이들 계급의 개념은 특정한 역사 시기 에 존재하는 집단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은 아 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라는 개념은 노동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개념을 반영한 것이 아 니라, 노동계급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한 것이 기 때문이다(콘스탄티노프, 1987, p. 83). 따라서 부르주아 계급이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해 당되는 집단은 역사적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19세기 산업혁명 초기에 프롤레타리아 계급 개념은 육체 노동자에게만 한정되지만, 20세기 후반에는 다양한 화이트칼라 노동자 까지도 포함할 수 있게 된다. 마르크스는공산당 선언에서 주요 양대 계급만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르 크스는자본론3권의 완결되지 못한 장에서 노동력 소유자, 자본 소유주, 그리고 지주 세 계급으로 구분하기도 하였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 노동자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만 존재 한다고 보지 않았다. 마르크스는루이 보나파 르트의 브뤼메르 18!)" achtzehnte Brumaire "(1852)에서 프티 부르주아 계급과 소농 계급에 대해 언급하였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중간 계급들이 부르주 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 사이에서 동요 하다가 결국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될 것으로 과대평가하였다. 이는 마르크스가프랑스 내 전에서 18기년에 발발했던 파리 코뮌이 농 민들의 이해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이해와 동일시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사실에서 확인 된다. 그러나 프티 부르주아 계급은 현재까지도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들에 소멸되지 않고 존 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프티 부르주아 계급 이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 존재할 수 있 다는 의견과, 대자본이 그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86 3. 마르크스 이후의 계급 개념 마르크스 이후에 많은 역사가들이 생산관계 와 생산력에 근거한 계급 개념을 둘러싸고 찬 반 논쟁을 되풀이해 왔다. 1917년 러시아 혁 명을 통해 성립된 소련의 사회과학자들의 주 장은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을 더 체계화한 블 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의 계급 개념 에 근거하였다. 레닌에 따르면, 계급이란 역 사적으로 결정된 사회 생산체계 내에서 차지 하는 위치, (대부분의 경우 법률 속에 고정되고 형 식화되어 있는) 생산수단에 대한 관계, 사회 노 동조직 내의 역할, 그리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부에서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몫의 크기와 획득 방식 등에 의해 서로 구별되는 거대한 인간집단이고, “특정한 사회 . 경제체제 내에 서 점하는 지위의 차이로 인해 다른 인간집단 의 노동을 전유할 수 있는 인간집단이다.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은 경제적인 현상만 을 강조하는 잘못을 범했다는 비판도 받게 된 다. 초기의 대표적 비판가로 독일 사회학 사 상가인 막스 베버 (Max Weber)를 들 수 있다. 베버는 사회의 계증(stratification)이 너무 복잡 하기 때문에 경제적 결정론으로 다 담아낼 수 없다고 보았다. 베버는 시장에 의해 규정되는 기능과 직업에 기초한 사회적 분화를 나타내 기 위해 계급이라는 경제적 개념을 사용하였 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러한 계급 개념과 마 찬가지로 지위(status)와 권력 (power)도 중요했 다. 지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특 정한 생활방식에 수반되는 영예와 명성의 요 인을 표현해 주며, 권력은 자신의 집단적 의 지가 다른 사람들의 저항에 부딪힐 경우에도 강요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베버는 근현대 세계에서 행정 관료들의 사 회적 위치가 계급이나 지위와 전적으로 일치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최고 의 신분이나 계급적 위치를 지닌 사람들이 행 . 계급 정적 권한이나 관료적 권한을 지니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관료들이 경제 엘리트나 명예로운 위치에 있는 엘리트들의 실제 이해 에 반하는 정책을 입안하여 실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후 베버의 영향을 받은 사회과학자들은 사회적 분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 혈족관계(kinship), 직업, 인 종, 민족성(ethnicity), 교육 등을 추가하였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권력을 잡아 자본주 의 사회를 무너뜨리지 못함에 따라, 프롤레타 리아 혁명을 주장하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계급 분석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시 작했다. 비판적 사회이론을 강조하는 프랑크 푸르트 학파(Frankfurt School)는 전통적 마르 크스주의의 계급 경제주의를 비판하면서 대 중매체, 소외집단에 대한 책임 전가, 기술적 합리성 같은 노동계급을 보수화하는 문화적 원천을 강조하는 분석을 선호하였다. 막스 호 르크하이 머 (Max Horkheimer)와 테오도어 아 도르노(Theodor W. Adorno)는 계급투쟁이 성 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고, 마르 쿠제 (Herbert Marcuse)는 인종적 소수자, 학 생, 3세계 국가의 주민, 여성, 환경주의자들 이 혁명적 주체성을 담지할 수도 있다고 보 았다.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 또는 '분 석적 (analytical)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리는 다 른 학파는 경제학과 다른 사회과학의 엄격한 방법론적 원리를 끌어들여 합리적 경제행동 선택 이론과 급진적 세계관에 접목시키려고 하였다. 존 엘스터。。n Elster)와 존 뢰머 (John Roemer)는 계급은 그 계급 구성원의 합계보다 더 큰 것이 아니라 비슷한 위치를 지닌 개인 행위자들이 모인 것이기 때문에, 개인주의의 기준에 따라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 계급론에 대한 이러한 비판 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르크스의 계급투쟁 개념에 정치적인 면을 복원하려는 학자들도 있다. 로버트 브레너 (Robert Brenner) 같은 역 87 계급 사학자와 엘렌 우드(Ellen Meiksins Wood) 같 은 정치이론가는 정치적 맥락에 근거하는 계 급 관계의 우발성 (contingency)을 강조한다. 그 들은 자본주의하에서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 는 것은 환상이고, 정치권력이 계급투쟁을 형 성하므로 국가 자체가 계급투쟁의 최대 대상 이 된다고 주장한다. 4. 사회사와 계급의식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대부분의 서유럽 역 사가들은 상층계급, 중간계급, 노동자, 농민, 다른 범주들이 독자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고 생각하면서 계급 개념을 느슨하게 사용하 였다. 그들은 동시에 계급형성, 계급의식, 계 급차이 등의 문제를 고민하였는데, 특히 경제 사와 정치사 영역에서 계급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었다. 빈곤의 원인과 결과, 자본주의의 기원, 지주와 상인과 제조업자들 사이의 권 력 변화 등이 첨예한 논쟁 대상이었다. 각각 의 논쟁에서 좌파적인 역사가들은 변화하는 계급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리처드 헨리 토니(Richard Henry Tawney), 시드니 웨브dney Webb), 비어트리 스 웨브(Beatrice Webb) 등이 그러했다. 구소련 역사가들과 구소련에 속하지 않은 마르크스 주의 역사가들은 계급 범주에 근거하여 주로 분석하였다. 1950. 1960년대에 민중주의적(populist) 사 회사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사회계급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었다. 1960년 대에 대학 캠퍼스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지면 서 민중주의가 더욱더 아래로부터의 사회사 연구에 관심을 쏟게 하였다. 많은 학생들이 이 시기에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의미를 부여해 주고, 당시의 투쟁에 대한 역사적 선 례를 찾으려는 희망을 가지고 역사 영역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민중적 정치동원과 반란을 분석하거나,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을 재구축하 거나, 또는 사회적 불평등이나 유동성을 세밀 하게 조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엘리트주의 관점에서 본 노동계급 운동의 역사에서 노동자 개개인 의 삶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노동의 사회사 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구서독에서는 디터 랑 게비쉐(Dieter Langewiesche), 프란츠-요제프 브뤼 게 마이 어 (Franz-Josef Bruggemeier), 클라우 스 텐펠데 (Klaus Tenfelde) 등은 계 량화할 수 있 는 경험 자료를 사용하여 프롤레타리아 계급 의 형성을 수반한 산업화 과정을 분석하였다. 그들은 루르 강 유역 광산노동자들의 생활조 건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광산에서 일어 난 노동조건의 변화, 노동계급의 충원, 노동자 와 고용주 간의 관계, 그리고 사회적 . 경제적 갈등 등이 상세하게 다루어졌다. 동시에 이 지역 광산노동자들의 공식 파업을 통한 투쟁 이나 일상생활 속의 저항 등도 구체적으로 서 술하고자 하였다. 한편, 구동독에서 위르겐 쿠진스키 ((Jurgen Kuczynski)1980년 초에 나온독일 민족 의 일상생활사 Geschichte der Alltags des Deutschen 及以es에서 위로부터의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벗어나 노동하는 사람들의 일상생 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그는 구체적 인 노동자들의 일상생활 상태에 대한 역사적 분석에 근거하여 근대 사회의 '좁은 의미에서 의 노동계급(die Arbeiterklasse)'과 전근대 사회 에 존재했던 매뉴팩처 노동자, 농업노동자, 광 부, 가내노동자, 직인, 도제 등과 같은 '노동하 는 계급들(die arbeitenden Klasse)'을 구별했다. 쿠진스키는 일상생활의 역사와 기존의 역사 를 결합하고자 했고, 일상생활의 역사를 과거 를 혁명으로 이어지는 일상적 과정을 이해하 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자 했다. 노동자 계급을 객관적 범주로만 보려는 기 존의 시각을 비판하면서 노동자 계급의 계 88 . 계급 급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관점이 출현하였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톰슨 (Edward Palmer Thompson)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The Making .the English Working Class(1963)에서 마르크스주의 계급이론을 비판하 면서 계급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톰슨 은 계급을 어떤 구조''범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역사적 현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 다. 그는 계급에는 '역사적 관계'라는 개념이 뒤따른다고 보았다. '역사적 관계 '란 고정시켜 분석할 수 없는 흐름'이고, 사회학적 이론 틀 이 아무리 정교하다 하더라도 순수한 계급 표 본을 추출해 낼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관계란 현실적 맥락 속에서만 구체 화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톰슨은 '계급적 경험''계급의식'을 구별하였다. 그에게 있어 '계급적 경험'은 사 람들이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맺게 되는 생 산관계에 의해 주로 결정되고, 계급의식은 이 러한 경험들이 문화적 맥락에서 조정되는 방 식, 즉 전통, 가치체계, 관념, 그리고 여러 제도 적 형태 등으로 구체화된다. 그는 노동계급이 라는 존재를 생산수단에 대해서 특정한 관계 를 갖고 있는 얼마만큼의 사람들'로 수량적으 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되 면 진정한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파 악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적 변동 과정 속에서 계급을 보 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를 특정 지점에서 정지시켜 버리면 계급들이 존재하지 않고 다 양한 경험을 가진 다양한 개인들의 무리만 남 게 된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을 역사적 사회 변동 과정 속에서 관찰할 때만이 이들의 관 계, 관념, 제도 안에서의 여러 양식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계급이란 사람들이 자신 의 역사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에 의해 규정되며”, 이것이 계급에 대한 '유일한 규정' 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톰슨은 이 러한 입장에서 계급을 일련의 과정을 거쳐 대 두하는 '하나의 사회적 . 문화적 구성체'로 보 았다. 또한 노동자 계급뿐만 아니라 다양한 하 층 계급들을 연구하는 '아래로부터의 사회 사'가 등장했다. 프랑스 역사가 조르주 르페 브르(Georges Lefebvre)1789년 프랑스 혁명 기의 농민봉기로 이어졌던 농촌지역의 공포 를 다루었다. 영국 역사가 로널드 힐튼(Ronald Hilton)은 중세 영국의 농민봉기를, 크리스토 퍼 힐(Christopher Hill)17세기 영국혁명에 서의 하층 계급을, 그리고 아프리카계 미국 흑인운동가 듀 보이스(Du Bois)는 남북전쟁 후 재건기의 남부 흑인집단을 서술 대상으로 삼았다. 영국 역사가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1917~2012)원초적 반란 Primie Rebels(1959)평 범하지 않은 사람들 Uncommon 尸仇少(1998)에서 역사 전면에 서서 역사를 주도했던 사람들보다는, 역사의 다양한 현장 에서 역사 발전에 조용히 기여했던 사람들 의 역할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역사를 주도했 던 상층의 엘리트 중심의 접근이 아니라는 점 에서 일종의 '아래로부터의 민중사'의 성격 을 띠고 있다.원초적 반란은 산적들 중에서 도 정의와 부의 재분배 문제에 관련된 무리인 '의적'들을 다루었다.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은 노동자 이외에 장인, 수공업 농민, 현대 베트남의 게릴라, 문화예술 영역의 아방가르 드 등 계급으로 담아내기 어려운 다양한 계층 들에 대한 연구를 담고 있다. 5. 유럽중심주의적 계급이론을 넘어 오늘날 주로 사용되고 있는 계급이나 계층 이 론은 유럽의 역사적 상황을 분석하는 과정에 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유럽중심 주의적 성격을 띠게 된다. 그동안 유럽중심주 89 계급 a 의적 계급 개념을 유럽 이외의 지역에 기계적 으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발 생했다. 역사적 환경이 다르면 그와 관련된 사회 .경제적 구조와 계급 구조도 달라지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새로운 계급 이론을 발전 시킬 필요가 있다. 유럽중심주의적 계급이론에서 벗어나 비유 럽 세계의 독자적 시각에서 계급이론을 모색 하는 대표적 시도로 인도의 '서발턴 연구집 단(Subaltern Studies Group)'을 들 수 있다. 인도 역사가 라나지트 구하(Ranajit Guha) 주도하에 1980년 초에 결성된 서발턴 연구집단은 인도 민중의 문화와 정치 참여를 제대로 분석하고 서술하겠다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서발 턴은 계급, 카스트, 젠더, 인종, 언어, 문화와 관련된 종속성을 드러내고, 역사에서 지배 . 피지배 관계의 중심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 되었다. 인도 사회에서 '서발턴'은 농민, 노동 하층 여성, 도시빈민, 소수인종, 하위 카스 트 등 종속적 지위에 있는 인민을 말한다. 서발턴 연구집단은 민족이나 계급이라는 유럽 개념에 근거한 역사 주체 파악을 비판 한다. 민족이나 계급이라는 개념이 인도 인민 의 사회적 존재와 의식을 구성하는 젠더, 카 스트, 종교, 인종, 종족성 같은 다양한 요소 들을 주변화하거나 배제한다고 보기 때문이 다. 인도 역사 속의 구체적인 서발턴의 존재 양태를 분석한 대표적 저서로 라나지트 구하 의서발턴과 봉기: 식민지 인도에서의 농민 봉기의 기초적 측면들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1783.1900년의 117년 동안 식민지 인도에서 발생한 110개 농민봉기를 다루었는데, 농민봉 기의 외형적 역사 과정이 아니라 농민봉기 그 자체의 '일반적 형태', 봉기들을 일으키고 이끌었던 농민들의 의식을 분석한다. 라자니 트 구하는 이를 위해 농민봉기의 6개의 기본 측면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책의 2장부 터 6장까지의 제목인 '부정(negation)', '모호성 (ambiguity)', '양상(modality)', '연대(solidarity)', '전파(transmission)', '영토성(territoriality)'이 그 것들이다. 이 여섯 가지 측면들은 역사라는 공간의 여러 층위에서 서로 겹쳐 있고 서로 연관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봉기 를 구성하고 있다. 라자니트 구하가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얻 고자 한 농민봉기의 모습은 '개별 사례들에서 출현하는 하나의 공통적 형태, 하나의 패턴, 하나의 패러다임이었다. 다시 말해, '봉기의 일반성'을 구죽하고자 했다. 더 나아가 구하 는 영국 식민지 시기의 농민봉기 패러다임을 20세기 인도사에 계속 적용하려고 했다. 20세 기 인도에서 농민, 도시빈민, 공업노동자들이 농민봉기나 '서발턴' 정치의 전통을 계승하여 '엘리트 정치'와 구별되는 '인민의 정치'라는 영역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고 생각했기 때 문이다. 라자니트 구하가 주도한 남아시아 서발턴 연구집단은 라틴아메리카 서발턴 연구그룹 (Latin American Subaltern Studies Group)의 결성 에 영향을 미쳤다. 비버리。。hn Beverley)와 로 드리게스(Ilegana Rodriguez) 등이 주도한 이 그 룹은 구하와 비슷한 방식으로 라틴아메리카 서발턴의 독창성과 독자성을 연구하였다. 그 러나 이러한 서발턴 연구도 여전히 유럽중심 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라틴아메리카 근대성/식민성 연구그룹(The Latin American Modernity/Coloniality Research Program 의 비판 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멕시코 철학자 인 엔리게 두셀(Enrique Dussel), 페루 사회학 자 아니발 키하노(Anibal Quijano), 그리고 아 르헨티나 출신의 미국 기호학자이자 문화이 론가인 발터 미늘로(Walter Mignolo) 등이 중 심이 되어 이 그룹을 형성하였다. 그들은 라 틴아메리카 서발턴 연구가 서발턴을 대상화 하지만 정작 서발턴의 관점에 서지 못했고, 그람시와 데리다, 푸코 같은 유럽 사상가의 90 . 계급 이론에 근거하고 있어 유럽중심주의를 완전 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비판하였다. 이들 은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주의와 포스트 콜로 니얼리즘(Post-colonialism) 연구의 문화주의를 모두 비판하면서, 계급뿐만 아니라 젠더, 인 종, 성별 분화 문제를 동시에 고려할 것을 주 문하였다. 특히 이 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 적으로 해방된 제3세계 국가들 내에 제국주 의의 경제적 . 문화적 . 인종적 지배가 간접적 으로 지속된다는 '권력의 식민성 (colonial.y of power)'을 주장하는 아니발 키하노(Anibal Qpijano)에게 잘 드러난다. 키하노는 먼저 마르 크스의 계급 개념에 대한 재해석부터 시작하 였다. 마르크스에게 사회계급은 구조나 범주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생성되고 결정되는 '역사 적 관계 (historical relation)'였다는 것이다. 따라 서 마르크스 이후의 역사적 유물론이 사회계 급을 인간의 행동과 주관 외부에 존재하는 구 조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그는 비판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키하노는 근대적인 라 틴아메리카가 형성된 이후로, 근대적 . 식민 적으로 지구화된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노동 (labor), 인종(race), 젠더 (gender)라는 서로 다 른 기준으로 나누고, 그러면서도 권력의 식민 성이라는 공동구조로 통합시키고 있다고 보 았다. 이 공동구조는 사회적 생존자원 생산에 대한 통제와 종(species)의 생물학적 재생산에 대한 통제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 다. 사회적 생존자원 생산에 대한 통제는 노 동력, 자원, 생산품에 대한 통제를 의미하고, 또한 자연자원도 포함하며, 소유 (property^로 제도화한다. 종의 생물학 재생산에 대한 통제 는 젠더와 젠더의 생산물(육체적 쾌락과 자손 을 소유의 기능으로 통제한다. 여기서 인종은 유럽중심적 자본주의에서 두 축의 기능으로 통합되고, 권위에 대한 통제는 이러한 권력관 계의 배치를 보장할 수 있도록 조직된다. 따 라서 키하노에게 사회계급은 공동구조에 통 합될 때 이질적이고(heterogenous) 불연속적이 며 대립적인 성격을 띠게 되고, 권력의 식민 성이 이러한 사회계급들을 단일한 공동 권력 구조로 통합시키는 축이 된다. 6. 계급과 현대 한국 20세기 이후 한국의 계급상황은 급격한 변화 를 겪었다. 계급상황을 변동시킨 거시적인 요 인들로 조선왕조의 몰락, 일본 제국주의의 식 민지 1, 아래로부터의 저항, 한국전쟁, 국 가의 산업화 정책, 교육정책, 가족정책 등을 들 수 있다. 조선 사회에서는 신분질서와 계 급질서가 일치하였다. 조선의 양반계급은 농 민들의 노동에 기초하여 생활했기 때문에 양 반과 농민의 계급 관계는 경제적인 착취 관계 에 근거한 계급 관계였다. 동시에 양반계급은 신분상의 위계에 근거하여 농민계급을 지배 하였다. 그러나 조선 말 양반계급은 경제력의 약화와 양민집단의 경제력 상승 등으로 인해 약해지기 시작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화하 면서 조선 사회의 계급구조와 신분질서가 재 편되었다. 노동하지 않는 지주들이 농민 노동 을 착취하는 봉건적 계급 관계는 강화되었지 만, 양반을 중심으로 한 신분 관계가 해체되 었다. 그리고 1920년대 소규모 경공업 중심에 서 1930년 대규모 중화학공업이 확대되면서, 토지 대신에 산업자본을 매개로 하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해방된 한국은 미군정과 한국전쟁을 거치 면서 급격하게 양적인 재편을 겪었다. 일본의 패전으로 일본 제국주의 지배가 끝나면서 인 구이동에 따른 계급구성의 변화가 일어났다. 일본의 패전 이후 일본인이 귀국하면서 한국 의 지배집단을 이루고 있던 구성원 수가 대폭 줄어들었고, 그 자리를 미군정과 한국인 지배 계급이 차지하였다. 한국전쟁과 전쟁 직후 실 91 계급 > 시된 토지개혁을 통해 지주들의 지위가 결정 적으로 약화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제침 체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1950년대에 자 본주의적 계급 관계가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경제 발전을 통해 사후적 정당성을 획득하고자 노 력하였다. 경제가 국가의 경제발전 정책을 통 해 급속도로 산업화하면서 농촌인구가 대규 모로 도시로 이동하고, 프티 부르주아 수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1960년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73.39%를 차지했던 프티 부르주아가 1990년에는 34.34%로 크게 축소되었다. 반면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같은 30년 사이에 노동 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 수가 238 만 명에서 1,220만 명으로 거의 1,000만 명 늘 어났다.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으로 노 동자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거나 전문적인 지 식이나 기술에 근거해 활동하는 중간계급도 크게 늘어났다. 같은 기간 동안 중간계급의 경영직 종사자들은 22.84배 증가했고, 감독직 종사자들은 20.31 배 증가했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계급구조 의 변화를 계급정치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정 치제도가 발달하지 못하였고, 이러한 한계 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사회민주화가 진전되 고,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 출하였음에도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1990년 들어 사회주의 몰락과 더불어 가속화 하고 있는 세계화는 국내 계급 관계에 국제 자본이나 국제 자본가가 영향을 미치는 새로 운 계급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국내외적으로 기존의 계급질서에 커다란 영 향력을 행사하면서 새로운 계급이론과 계급 분석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서 계급 연구는 1980년대 중반 이 후에 활발하게 연구되었다. 1980년대 초 이 전까지 주요 관심 사회집단은 노동자라기보 다는 도시의 반프롤레타리아 같은 주변 계급 이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의 자 본-노동의 분화가 현저해지기 시작했고, 특히 1970년대 이후 형성된 중공업 남성 노동자층 이 노동계급의 중심 범주로 떠오르면서 노동 계급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확산되기 시작했 다. 이 시기의 계급 연구를 둘러싼 논쟁은 분 석방법, 이론적 기반, 자료의 활용 등 같은 학 술적인 면보다는, 계급을 보는 이론적 입장이 나 정치적 입장을 둘러싼 논쟁의 형태를 띠었 다. 1980년대 중반의 초기 노동계급 연구는 주로 객관적인 계급 구성에서 노동자가 차지 하는 비중과 노동자들의 존재 조건 등을 중심 으로 이루어졌다. 1980년대 중반에 네오 마르 크스주의와 레닌주의 이론이 급속히 유입 . 확 산되고 마르크스주의 계급이론이 출현하면서, 기존의 계층이론이나 중산층 중심 사회론 사 이에 이론적 공방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 구해근은 톰슨이 제기한 노동계급 형 성론의 관점에서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과정 을 분석하였다. 그는 한국의 계급 연구가 한 국의 계급 연구를 개발하고 계급 구성의 양 적 변화를 추정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너무 정 태적이고 구조적인 면에서 계급 현상에 접근 했고,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계급 현실을 깊이 있고 세밀하게 분석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는 점을 비판하였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 는 계급과 계급 관계, 계급의 계급 내적 분절 화와 재구성, 구조적 접근과 과정적 접근을 결합할 것을 주장한다. 구해근은 수출주도형 산업화 정책을 구사 한 196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진행된 한 국 노동운동의 발전 과정을 기술하고, 또 한 국 노동계급의 형성 과정을 비교연구적인 관 점에서 분석하였다. 그는 한국 노동계급의 투 쟁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문화적 . 정 치적 요인들이 산업화 과정에서 1세대 산업 노동자들의 경험과 투쟁형태 형성에 기여했 는지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사회계급 92 . 계몽 전제군주 은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생활체 험을 기초로 형성되고, 이러한 생활체험은 생 산관계뿐만 아니라 작업장 내 . 외부에서 영향 을 미치는 문화 .정치권력에 의해 형성된다고 보았다. 그는 한국 노동계급의 발달 과정에서 문화 .정치권력이 노동자들의 정체성과 의식 을 억압하면서도 동시에 촉진하는 이중적이 고 모순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또한 조돈문은 한국 노동계급 형성은 조직 노동 부문의 성격 및 역할 여하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고 보았다. 그는 한국 노동계급은 해 방 이후 60년 동안 민주노조운동의 부침과 함 께 계급형성의 전진과 후퇴를 거듭했다고 분 석하였다. 한국 노동계급은 해방공간에서 조 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을 중심으로 높은 수준의 계급 형성을 보였다가, 이후 전평이 붕 괴하고 대한노총과 한국노총 등 보수적 노동 조합의 등장으로 크게 후퇴 했으나, 1987년 노 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형성 . 성장 과 함께 다시 계급형성의 상승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방은 1990년을 전후한 사회 주의권 몰락을 계기로 가라앉았고, 이후 계급 . 계층 연구는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 는 경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노동자 를 포함한 사회구성원 대부분의 삶의 질이 악 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사회 . 정 치적 의식의 보수화를 겪고 있고, 노동자들의 계급의식도 약화되고 있다. 이러한 역설적 현 상의 원인과 인과적 메커니즘의 작동을 체계 적으로 분석해서, 이러한 현상이 계급 존재와 계급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해 나갈 필요 가 있다. .강성호 참고문헌강성호,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책세 상 2003). 구해근, 신광영 옮김,한국노동계급의 형성창비 2002). 김동춘 . 김수행 외,한국의 맑스주의 노동자계급연구, 198 년대 이후 한국의 맑스주의 연구(과학과 사상, 1995). 라나지트 구하 김택현 옮김,서발턴과 봉기: 식민 인도에서 의 농민봉기의 기초적 측면들(박종철출판사, 2008). 레이먼드 윌리엄스, 김성기 . 유리 옮김,키워드(민음사, 2010). 신광영,한국의 계급과 불평등(을유문화사, 2004). 유팔무 . 김원동 . 박경숙,중산층의 몰락과 계급양극화(소화, 2005). 조돈문,구해근의 모색과 마르크스주의 계급론의 과제, 경 제와 사회77(2008 봄호). 조지 이거스, 임상우 . 김기봉 옮김,20세기 사학사(푸른역 사, 1999). 콘스탄티노프, F. V., 김창선 옮김,사적유물론(새길 1987). 톰슨, E. P., 나종일 외 옮김,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상 하 창 비, 2000). igs, F., "Die Entwicklung des So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 MEW, vol. 19. Latin American Subaltern Studies Group, Founding Statement," Boundary 2, 203(1993). Marx, K. "Der achtzehnte Brumaire des Louis Bonaparte", MEW, vol. 8. Marx, K.. "Marx an Joseph Weydemeyer in Nw York", MEW, vol. 28. Marx, K. & F. Engs,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 MEW, vol. 4. 출처 : 역사용어사전(Dictionary of Historical Terms),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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