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책 처음으로 | 사전 | 자유게시판 | 회원자료 | 로그인

 

       ■ 의견바로가기

[간백 簡帛] ()

간백簡帛은 종이가 문자 기록의 주요 수단이 되기 이전에 사용된 필기도구의 하나로서 , 간 독簡牘과 백서帛書를 아우른 명칭이다 . 이 중 간독은 그 재질이 나무로서 , 대나무로 만 든 죽간竹簡과 소나무 · 버드나무 등 일반 목 재로 만든 목독木牘또는 목간木簡올 합한 명칭이다 . 백서는 말 그대로 비단에 기록한 문서라는 뜻인데 , 그 재료가 비싼 까닭에 이 를 사용하는 계층이나 용도가 극히 제한되어 일반적 필기도구로 보기는 어렵다

간독은 제작이 간편하고 저렴하며 구하기 도 쉬워서 은 . 주대殷周代부터 가장 보편적 필기도구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그러 나 지금까지 중국에서 발굴된 것은 전국에서 위진시대까지 사용된 약 40만 매이다

중국 이외에 한국과 일본에서도 목간의 발 굴은 활발한데 , 한국의 경우 1975년 경주 안 압지에서 30여 매가 발굴된 이래 현재까지 약 600여 매가 발굴되었고 , 일본에서는 현재까지 약 20만 매 이상이 발굴되었다 . 다만 , · 일 양국의 목간은 6-7세기 이후 종이의 보조도 구로 사용된 것일 뿐 아니라 , 용도 · 형태 · 종 류 면에서 중국의 간독보다 단순하며 , 또 죽 간의 발굴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

그런데 최근 북한의 평양시 낙랑 구역의 낙 랑시대 분묘에서 다수의 죽간과 목간이 발굴 되었는데 , 그중에는 ' 낙랑군초원4년현별호구 다소□□(樂浪郡初元四年縣別戶口多少□□) ' 라는 제목의 호구부簿목간과 논어論語)』가 수록된 죽간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전언도 있 다 . 그러나 이 경우는 1931년 대동강변의 채 협총彩筐塚에서 발굴된 목독과 더불어 한대 의 군현인 낙랑군에서 사용된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 내지에서 발굴된 목간과는 구별되는 점이 많다 .

20세기 초 현재까지 중국에서는 약 40만 매 의 간독이 발굴되었다 . 간독 발굴의 역사는 전한 무제武帝말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무제 말년 공 자孔子의 구택舊宅으로 알려진 가옥의 벽 에서 전국시대 문자로 기록된 상서尙書)』 · 예기禮記)』 · 논어論語)』 · 효경孝經)』 등이 죽간 형태로 발굴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이 외에도 한선제宣帝시기 하내河內컁의 고택에서 발굴된 )』 · )』 · 상서, 서진西晋무제武帝태강太康2년 급군汲郡의 전국시대 위나라 양왕襄王의 묘에서 발굴된 급총서汲家書)』를 비롯하 여 , 위진남북조는 물론 북송대에 이르기까지 간독의 발굴 기사가 적지 않게 전해진다 . 그 러나 이러한 발굴은 대부분이 주택수리나 분 묘도굴 등 우연한 기회에 발굴된 것이고 , 간 독 실물도 전해지지 않는다 . 비교적 체계적이 고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간독이 발굴되기 시 작한 것은 20세기 이후이다

1900년 이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 립되기 이전까지 발굴된 간독은 스벤 헤딘 (Sven Hedin) , 마크 오렐 스타인Marc Aurel Stein) , 폴커 베리만Folke Bergman) 등 주로 외 국 탐사대에 의하여 중국 서북부 지역인 누란 樓蘭· 니아尼雅· 나포뇨이 羅布淳爾. 돈황 敦煌·거연居延등에서 발굴되었다 . 이들 간 독은 중국에서 발굴된 실물 간독의 효시라 할 수 있다 . 당시 발굴된 간독은 12천여 매로 서 대부분 죽간이 아닌 목간이라는 점이 특 징인데 , 이는 이 지역에 대나무가 자라지 않 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이들 간독은 한 대 및 위진시대의 변방 군사주둔 지역에서 사 용한 것들로서 , 주요 내용은 변경수비 업무상 필요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 중국학자들에 의해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간독이 발굴된 것은 1949년 이후부터 현재까 지이다 . 특히 1970년대 이후 신장 ·간쑤 떼 이멍구 등 변경 지역은 물론 , 이전에 간독이 출토되지 않은 후난 . 후베이 · 허난 · 허베이 · 쓰촨 · 안후이 · 장시 · 광시 · 산시 · 산둥 · 칭하 이 둥의 성에서도 다량의 간독이 출토되었다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에서는 죽간이 아닌 목간만 발굴되었기 때문에 목질 기록물을 일 률적으로 목간으로 부른다 . 그러나 중국에서 는 형태 · 재질 . 크기 등을 기준으로 간독의 세 부 명칭을 상이하게 적용하고 있다 . · ) .· · · · · · · · · 등의 용어가 그것인데 , 현재 중국에서는 이들 목 질 기록물을 총칭하여 ' 간독簡牘' 으로 부른 다 . 우선 , ' ' 은 엄밀한 의미에서 글이 기 록된 대나무 조각인 죽찰竹札또는 죽첩竹牒으로서 일반적으로 ' 죽간竹簡' 으로 칭하 고 , 이와 유사한 형태와 크기를 취하면서 대 나무가 아닌 일반 나뭇조각에 글을 기록한 것 을 ' 목간木簡' 으로 칭한다 . 지금까지 발굴 된 가장 일반적인 간독은 그 표준 길이가 약 23cm, 이는 진·한 시대의 표준적 간독 제 작방식이 지켜졌음을 보여준다 . 즉 진 · 한 시 대 문서행정에서 허용된 가장 표준적인 간독 은 일척간(-尺簡으로서 길이 약 23cm·한 대의 도량형으로 1, 폭 약 lcm[5] , 두께 02-0.3cm1로 제도화되어 있었으며 , 하 나의 간독에 보통 30-40, 많으면 50자 정도 의 글자를 쓸 수 있었다 . 이러한 개별적 간독 은 기록 내용의 분량을 고려하여 일정 분량씩 끈으로 함께 묶어 편철編綴하여 사용하는 것 이 일반적이다 . 즉 끈으로 간독의 아래 위 두 부분을많게는 서너 부분굴비 엮듯이 엮은 후 , 끈이 통과하는 부분을 피하면서 수직 방향으 로 글을 기록하고글을 기록한 후 끈으로 엮는 경 우도 있음, 이를 두루마리 형태로 말아서 보관 하거나 전달한다

간독을 연결하는 끈으로는 일반적으로 삼 으로 만든 마승麻繩이 쓰였고 , 귀중한 책은 청사靑絲또는 암색하지 않은 소사素絲가 쓰였다 . 드물게는 가죽 끈도 사용된바 , 공자가 역경易經)』을 애독한 나머지 책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떨어쳤다는 ' 위편삼절韋編三絶' 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일반적 죽간 또는 목간에 비해 폭이 약간 더 넓은 것으로 ' ' 이 있는데 , 이는 설 문해자說文解字)』에서 ' 서판書版' 으로 풀이 하듯이 글을 쓰는 나무판으로서 , 길이는 일 반 죽간과 유사하지만 폭이 더 넓으며 , 끈으 로 엮지 않고 독의 상층부에 구멍을 뚫고 끈 을 끼워 사용하거나 아예 구멍이 없는 경우도 있다 . 지금까지 발굴된 독의 절대다수는 대나 무가 아닌 일반 목재로 제작되어 있는 까닭에 이를 목독木牘으로 범칭한다 . 이는 굵기가 한정되어 있는 대나무로서는 넓은 면의 죽독 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 지금 까지 발굴된 목독은 주로 편지 계약서 , 초록 한 약방문 , 달력 , 통행증 등의 용도로 사용되 었음을 보여준다

' ' 는 다각형의 나무토막 형태로서 3 -4, 드물게는 7-8면까지 단면을 내어 글 을 쓰도록 하였는데 , 비교적 특수한 용도에만 사용되어 급취편急就篇)』 · 창힐편蒼頓篇)』 등 아동용 습자 교본 , 기록물의 초안 작성 , 글 씨쓰기 연습 등에 쓰였다 . 한국의 경주 안압 지와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3면과 4면 목간 및 경남 김해시 봉황동에서 발굴된 4면 목간 , 그리도 인천의 계양산성에서 발굴된 5면 목간 등은 모두 형태상 중국의 고와 일치한다

' ' 은 주로 관청에서 문서나 물건을 우 송하는 데 사용되는 목독沐牘의 한 형태로 , 용도에 따라 두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 첫째는 일명 서검書檢으로서 , 주로 관청에서 문서나 서신을 우송할 상대방 관청의 이름과 주소 및 전달 방식 등을 기록하는 목독으로서 , 문서 꾸러미의 제일 겉면에 부착하였는데 , 오늘날 의 편지봉투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20은 보통 길이가 6정도이고 , 일반 간독 에 비해 너비가 넓은 목독의 형태를 취하며두 줄 또는 세 줄로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이 다 . 둘째는 기밀을 요하는 문서 꾸러미나 물 건을 우송하는 데 쓰이는 일명 봉검 封檢으로 서 , 내용물의 외부노출 또는 타인이 내용물을 뜯어보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였다 . 봉검 은 목독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윗부분 또는 중 간에 자형의 홈이 있다 . 검을 문서 꾸러미 나 물품을 담은 상자 위에 얹고 자형 홈을 따라 끈으로 묶은 후 , 그 위에 진흙을 바르고 소위 봉니封泥] 친흙 위에 인장소위 봉인封印)]을 찍게 된다 . 오늘날의 소포를 생각하면 된다 .

' ' 은 오늘날의 화물 꼬리표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 한국과 일본에서 발굴 된 하찰간(1札簡또는 부찰간付札簡과 흡사 한데 ,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진다 . 첫째 는 둥그스름하게 깎은 상단부에 먹으로 검게 칠하거나 거물 문양의 빗금이 쳐져 있는 경우 로서 , 이러한 갈의 윗면에는 작은 구멍이 하 나 또는 두 개씩 뚫려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구멍을 뚫은 이유는 물품을 담은 상자 또는 바구니에 갈을 끈으로 묶어두기 위해서이다지금까지 발굴된 이러한 형태의 갈에는 물품 명 · 문서명 · 장부명 · 물품수량 등이 기록되 어 있다 . 상단 혹은 하단에 구멍이 뚫려 있는 목간은 한국의 함안 성산산성 목간에서도 발 견되는데 , 아마도 중국의 갈과 유사한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두 번째 형태의 갈 은 상단부 또는 하단부를 삼각형 또는 반원 형 모양으로 깎고 , 바로 아랫부분의 양 측면 을 자형 또는 삼각형의 홈을 낸 형태로서 , 이 역시 각종 물품을 담은 상자 또는 바구니 에 갈을 꽂아두거나 끈으로 묶어두기 위한 것 이다 . 이러한 갈은 한국의 안압지 · 성산산성 · 이성산성 등에서 출토된 상당수 목간의 형태 와 흡사하여 비교연구가 필요하다

' ' 는 사신이나 여행자가 관소關所를 통과하거나 관청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힐 때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제시하는 신표의 일종으 로 , 원칙상 대나무로 제작되었으나죽부竹符] 일반 나무로 제작된 것목부木符)]도 있다 . 일 반적으로 부는 길이가 615cm으로 1 척의 일반 간독에 비해 짧고 , 부의 상층부 좌 우에 삼각형의 홈을 하나씩 파서 2개의 부를 맞닿게 하면 홈이 서로 일치하도록 하는 것 이 일반적이다 . 그리고 군대를 징발하거나 출 정할 때에도 부의 일종인 호부虎符가 사용되 었는데 , 이 경우는 동으로 만드는 것이 일 반적이어서 동호부銅虎符라 부른다 . 부와 유 사한 것으로서 계· ) .등이 있 는데 , 이것들은 기입하는 내용의 장단이나 종 류 또는 사용자의 신분에 따라 형태상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 공통적으로 공무 또는 사적인 일로 여행하는 자의 통행증명서나 신분증 또 는 여권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 이 외에 부와 유사한 형태와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권과 별이 있다

마지막으로 ' , 오늘날 중국학계에서는 削衣 , 일본학계에서는 削屑' 는 간독에서 떨어져 나 온 나뭇조각이다 . 간독에 문자를 잘못 기입한 경우 , 또는 간독의 원래 용도가 다 되어 기존 내용을 삭제하고 새로운 내용을 기록할 경우 기존 간독 표면의 일부 또는 전면을 삭제할 필요가 있는데 , 지우개가 없는 당시로서는 간 독의 표면을 칼로 깎아낼 수밖에 없었다 . 이 때 떨어져 나온 글자가 기재된 나무 부스러기 가 바로 폐인 것이다

간독의 길이는 목질 · 제작도구 · 기록자의 습관 등에 따라 결정될 수도 있지만 , 기록 주 체의 사회적 지위 또는 내용의 중요도나 성격 등에 따라 증감이 결정되었다 . 지금까지 중국 에서 발굴된 간독의 길이는 14-88cm 사이이 고 , 이 중 서적이나 문서를 기록한 간독은 대 부분 23 -28cn사이인데 , 표준적인 간독 길이인 23cm의 것이 제일 많다 . 간독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원판이 필요한데 , 원판의 길이 는 약 370cm으로 이를 참이라 불렀 다 . 참은 글자가 기록되지 않은 백지 상태로 서 , 거연居延에서는 하단부가 떨어져 나간 67.8cm의 글자 없는 목간이 발굴되었는데 , 이 는 1척 길이의 표준 목간 3개를 만들 수 있는 재료이다

기록 내용의 중요도나 기록자의 신분이 높 을수록 간독의 길이가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 이다 . 황제의 조서詔書는 표준 간독에 비해 1촌이 더 길게 제작되어 황제의 조서를 ' 척 일지조之詔' 라 부르기도 한다 . 황제가 제정 · 반포하는 법률을 기록한 간독은 조서 에 비해 더욱 길게 만들어졌다 . 염철론鹽鐵論)』 · 사기史記)』 · 한서漢書)』 등에서 발견 되는 " 이척사촌지율二尺四寸之律" · " 삼척법 三尺法' · " 삼척율령忌聿令" 등의 구절은 2 4촌 또는 3척 길이의 목간에 법률을 기재 하였음을 보여주는데 , 실제 거연한간居延漢簡중에는 율령의 목록이 기재되어 있는 3척 길이의 목간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 효경구명 켤孝經鉤命決)』에 의하면 , 춘추春秋)』24, 효경孝經)』12, 논어8촌의 길이로 제작한다고 하여 , 유가경전은 전반적 으로 표준 간독에 비해 크게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이는 유가이론이 사장계의 독존적 반열에 오른 한대에 유가경전이 여타의 서적 에 비해 존중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간쑤 성 무위현武威縣마저자磨咀子의 후한시대 묘에서 발굴된 의례儀禮)』 갑본甲本목간은 길이 55.5 -56cm , 너비 0.75cm이고 , 병본丙本목간은 길이 56.5cm , 너비는 0.9cm인데이는 2455.92cm과 거의 일치하는 것 으로 , 한대의 유가경전은 실제로 24촌 길 이로 제작되 었음을 시사한다

이보다 좀 더 짧은 2척 길이의 간독으로 ' ' 이 있는데 , 이는 주로 군령을 기록하는 용도로 제작되었던바 , 후대에 군사적 목적으로 작성된 ' 격서 ' 또는 ' 격문 ' 이라는 용어도 여기 에서 유래되었다 . 격은 긴급하게 전달해야 하 는 군령의 기록과 전달을 보다 편리하게 하는 한편 , 내용의 중요성을 부각하기 위해 일반 간독보다 2배나 길게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이 외에 일반 간독에 비해 길이가 훨씬 짧은 것으로서 , 셈을 할 때 사용하는 산가지산주 算籌)]와 통행증 또는 신분 확인용으로 사용 된 부6촌 길이로 제작되었고 , 독서 시 내용을 참조하기 위한 주석용 간독인 전은 부보다 훨씬 짧게 만들어졌다 .

기록할 분량이 많으면 간독의 폭을 넓히는 방법이 있었다 . 한간漢簡중에는 약23cm 길 이에 폭이 1촌 좌우인 1.8 -2.8cm 정도의 간 독이 있다 . 이 경우 두 줄로 기록할 수 있는데 , 이러한 간독을 ' 양항兩行' 이라 부른다 . 그리 고 더 많은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거의 사각형 형태로 폭을 계속 넓히면 되었는데이러한 간독을 ' ' 이라 부르고 , 심지어 세 로가 짧고 가로가 더 긴 경우도 있다 . 방의 전 형적 형태로서 거연에서 발굴된 한 선제宣帝원강元康)5B.C. 61) 4..5월의 달력을 기재 한 목간이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 간독의 서체는 한자의 서 체 발전사와 궤를 같이한다 . 그러나 특정 시 대에 특정 서체만 사용된 것은 아니고 , 또한 간독 사용자의 신분이나 취향 및 간독의 용도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서체가 뒤섞여 나오는 경우도 있다 . 따라서 간독의 해독은 특정 시 대나 지역에서 다량 발굴된 간독 서체에 대한 경험적 해독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 이 과정에서 허신설문해자設文解字)』 한간汗簡)』이 중요한 참고서로 사용되어 왔다

기원전 221년 진의 전국 통일과 더불어 소전체小篆體로 문자가 통일 되었으나 , 현재 까지 발굴된 진대의 간독은 대부분이 예서체隷書體로 작성되어 있다 . 이는 자획이 복잡 하고 곡선 필획이 많아서 실용성이 떨어지는 전서체 대신에 이를 훨씬 간단하 만든 예서 隷書를 사용한 결과로서 , 이러한 현상은 진 은 물론 한예漢隷로 작성된 한대의 간독에도 잘 나타나 있다 . 전한 중기 이후의 간독 중에 는 초서체가 점차 많아지다가 , 전한 말 왕망 王莽시기 및 후한 초기의 간독 중에는 초서 草書로 씌어진 것도 많이 나타난다 . 초서는 예서를 더욱 간략히 하는 과정에서 생긴 서체 였는데 , 진간 및 전한 초기의 간독에는 거의 보이지 않다가 , 전한 중후기가 되면 거의 보 편화되어 전서 · 예서와 더불어 독립적 서체로 자리잡게 되었다 . 그리고 후한 및 삼국시대의 간독에는 해서체楷書體도 나타나는데 , 이는 예서체의 구조를 계승하는 한편 초서의 장점 을 취한 형태로서 , 필획이 훨씬 간단하고 안 정적이다 . 그러나 당시의 해서는 후대의 해서 처럼 정형화되지는 않았고 , 단지 예서체의 범 위 내에서 약간 변형된 형태를 취할 뿐이었 다 . 따라서 이를 ' 예해隷楷' 로 부르기도 한 다 . 이상과 같은 서체 외에도 예서와 초서의 중간 형태로서 행서行書의 초기 형태도 나타 나는데 , 이를 예행서隷行書로 칭하기도 한다한편 , 중국 간독의 특징으로 간문簡文중 에 가차자假借字· 피휘자避諱字. 합문자合文字가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 가차자는 발음이 완전히 같거나 비슷한 음가를 지니는 글자를 서로 빌려쓰는 현상으 로 , 특히 전국시대 초간楚簡및 진간秦簡, 그리고 한대 초기의 간독에 가차자 사용 비율 이 높다 . 이러한 경향은 전한 중기 이후 점차 감소하지만 , 그 추세는 후대에도 지속되었다 . 피휘자의 경우는 황제 또는 성인의 이름에 쓰 인 글자를 피하여 이와 뜻은 같지만 음가는 다른 글자를 대용하는 현상으로 , 진간 중에서 진시황의 이름인 ' ' ' ' 으로 , 한간 중에서 한고조의 이름인 ' ' ' ' 으로 표기한 예가 대표적이다 . 합문자의 경우는 2개의 글자를 상하로 밀착 표기함으로써 마 치 하나의 글자처럼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 해 독 시 특히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다 . 초간 중 의 소인· 대부大夫· 이십) · 삼십 ) ·지일之日·지월之月, 진간 중의 지지之志·화패貨貝· 견우牽牛, 한간 중의 십칠(+· 칠십) . 정월正月. 영사合史등이 그러하다 .

 

윤재석

 

참고문헌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 韓國古代木簡調査報』 (예맥출판사2006).

권인한 · 김경호 · 이승률 편집 . 죽간 , 목긴뻬 담긴 고대 동아시아』 (성균관대학교출판부2011).

騈宇騫 · 段書安 編著 , 世紀出土簡帛綜述J 文物ti反社2006).

李均明 · , 『簡牘文書學』 (廣西敎育出版社 1999).

大庭脩r木簡J 學生社 , 1979).

朝鮮文化硏究所 帝扁 , 韓國出土木簡Q世界』 (雄山閣 . 2007).

■ 인접어

가치와 가격
가치판단 논쟁 價値判斷 論爭
가훈 家訓
간 干
간도 間島
간백 簡帛
간백 簡帛
갈리카니슴
감성感性
감조감식 減相減息
감찰제(동) 監察制

뒤로
■ 의견

 



HOME - 후원방법 안내 - CMS후원신청 - 취지문 - 사용 도움말 - 회원탈퇴하기

2002 노동자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 만들기 모임
120-702 서울시 중구 정동 22-2 경향신문 별관 202호 44
laborsbook@gmail.com
모바일버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