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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코뮌 ] (Kwangdung Commune)

19271211일 중국공산당은 폭동을 일으켜 광동에서 코뮌 권력을 설립하였는데, 이것을 광주공사’(廣州公社) 또는 광동코뮌이라고 부른다. 중국공산당은 1920년 코민테른 제2차대회의 식민지 민족문제에 관한 테제에 따라 부르주아 정당인 국민당과 합작운동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1927412일 상해 지구에서 장개석이 반공 쿠데타를 감행하였고, 415일에는 광동유수(廣東留守) 총사령 이제침이 광동지구의 공산당 조직을 탄압하였다. 이에 공산당은 국민당 좌파의 합작기대를 버리고 독자적 권력수립을 시도했던 것이다. 광동에는 국민당원의 내분이 심했던 데다가 인접 지역인 동부에 해풍(海豐) 육풍(陸豊) 소비에트가 성립되어 지원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세하에서 중국공산당의 구추백(懼秋白)은 광동성 폭동계획에 대해 코민테른의 지지를 얻어냈다. 그리고는 즉시 광동성의 폭동 지도기관으로서 혁명군사위원회가 편성되었다. 1211일 미명에 시작된 봉기는 성과를 거두어 일곱시까지는 사령부 몇 군데만 제외하고 광주시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코뮌의 병력은 총 3~4천 명 이었고 무기는 권총, 자동권총(30정 이하), 수류탄(50개 이하), 소총 등이었다. 아홉시에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30여만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소비에트의 수립을 공표하고 집행부 11명을 선출하였다. 노동자·농민의 민주적 독재를 실시할 예정으로 소비에트 정부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실제로 노동자·농민·병사의 소비에트는 조직할 틈이 없었다. 코뮌 집회에서는 농민에게 땅을 주자!” “가난한 민중과 노동자에게 먹을 것을!” “병사에게 평화를 주자!” 등의 구호가 등장했다. 이 집회에서 채택된 강령은, 첫째 노동자를 위하여하루 8시간 노동, 훌륭한 노동법, 실업보험, 노동조건 개선, 둘째 농민과 병사를 위하여일체의 지주토지의 재분배, 셋째 빈민을 위하여충분한 식량의 보장, 다섯째 여성을 위하여남성과 동일한 임금과 동일한 법적 지위의 보장 등이었다. 이와 같은 봉기에 의한 코뮌 수립은, 봉기성공 이후의 프로그램까지는 갖지 못하고 인근 해·육풍 소비에트와의 연계·지원도 소홀한 상황에서 반혁명군에게 포위되어 공격을 받았다. 코뮌의 지도자인 장태뢰(張太雷)는 사망하고 군사지식이 부족한 노동자 2천여 명만 남긴 채 지도부가 와해되면서 광동코뮌은 ‘3일천하로 끝났다. 중국공산당, 중국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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