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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맑스주의] (Marxism in Eastern Europe)

나름대로 독특하게 발전된 이론으로서 동유럽 맑스주의의 역사는 이 지역이 소비에트 진영으로 편입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오늘날 동유럽 국가에서 태어났거나 또는 그 곳에서 생을 마친 중요한 인물들의 저서는 소비에트 맑스주의 역사에 속하거나(예를 들면, 1930년에서 1945년 사이의 디미트로프, 바르가, 루카치 같은 인물들), 메를로 퐁티가 명명했던 바와 같은 서구 맑스주의에 속한다(예를 들어 1918년에서 1929년 사이의 루카치, 블로흐). 마찬가지로 보다 논쟁 중심적으로 본다면 오로지 비정통적 접근 방법만이 지금의 주제에 속할 뿐, 1945년 이후의 정통적 접근방법(그것의 내용, 발전단계 및 사회적 기능의 측면에서 볼 때)은 동유럽에서의 소비에트 맑스주의권에 속한다. 끝으로 유고슬라비아 맑스주의도 지정학적으로는 소련권에 속하지만 지적 풍토로 보면 대부분 서구 맑스주의의 사상체계에 속한다.
동유럽 맑스주의는 관련 국가들의 서로 다른 시간적 연속성에 기인하는 4개의 개별적 단계를 중심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즉 그것은 동독(GDR),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 그들 나름의 독자적인(아마도 그렇다고 보아야 할) 맑스-레닌주의의 기초 위에서 기존 체계의 이론과 실천을 재구성하려는 대안을 들고 나온 수정주의라는 용어는 다음 세 가지 점에서 보완되어야 한다.첫째, 공인된 견해와는 완전히 다른, 본래의 맑스주의 철학과 사회 이론의 부활이라는 결과에 따른 기존 체계와의 정면 대립은 맑스주의의 르네상스(루카치)라는 적절한 이름이 붙여졌다. 맑스의 고전적 사회 이론 가운데 몇 가지 관점을 (서구에서보다 동구권에서는 훨씬 드문 일이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소비에트 유형의 사회에 적용시키려던 노력은 이 단계에서 논리적 귀결이다. 둘째, 맑스 사회철학의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의 규범적인 토대 위에서, 그리고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일반적인 모델 위에서 전혀 새로운 분석적 방법을 사용하여 그들 자신의 사회에 알맞은 비판 이론을 전개하려는 계획은 맑스주의의 재구성(하버마스)이라고 특징지워지는 것이 가장 합당할 것이다. 셋째, 전통과 결별하려는 분명한 의도를 지닌 맑스 이후 비판적 전망의 구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이 비록 ‘재생되고’ ‘재구성된’ 다양한 이론과의 (중요하면서도 단지 암시적인 정도의) 일정한 지속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소멸과 보존(지양)이라는 의미로 본 맑스주의의 초월이라고 불려야만 할 것이다.
분명히 수정주의는 동유럽 맑스주의의 모든 단계에서 나타난 가장 보편적 양상이다(이것은 또한 오직 소련에 대해서만 분명하게 대비되는 경우이다). 그러나 또한 수정주의는 가장 역설적 단계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이것은 실로 전체주의적 집권당과 그들 자신의 원초적인 맑스-레닌주의 원칙과의 대립인 데, 말하자면 그 원칙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비권위적 몇몇 원칙들이 어렵게 선택된 셈이다. 다른 한편으로 수정주의는 레닌주의가 허용하는 그 어떤 이해의 범위도 훨씬 능가하는 민주적이고 다원적 도전의 길을 열어 놓는 것을 표명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때때로 하리히(W.Harich)와 같은 단 하나의 인물과 실제적으로 혼합되었다는 사실도 결코 이러한 결합을 덜 모순된 것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이론에서 수정주의는 당연히 공인된 두 개의 사회과학 영역, 즉 철학과 경제학에서 가장 잘 표현되고 있다. 철학에서 루카치, 블로흐와 그의 제자들, 하리히와 그가 발행한 《독일 철학회지》(Deutsche Zeitschrift fur philosophie), 폴란드 학생잡지인 《프로 프로스투》(Pro Prostu)를 중심으로 하는 모임들, 그리고 헝가리의 ‘폐퇴피 서클’ 등은 맑스주의 로부터 인식론과 인류학에서의 결정론과 객관주의(인간의 주관성과 작인作因 무시), 그리고 윤리학에서 과학주의와 역사주의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많은 경우에서 그렇게 수정된 이론은 궁극적으로 전반적 개혁(경찰 탄압의 종결, 법률 개정, 검열제도의 철폐, 중앙집권적 행정체계의 축소 등) 뿐만 아니라 최소한 몇몇 수정주의자들에게는 민주화(노동자 평의회, 자유노동조합, 집권당 안에서 자유로운 토론과 다원주의, 때로는 복수정당 체제의 부활)의 매개수단을 위하여 처음부터 의도된 것으로 여겨졌다. 어떤 경우 (특히 폴란드)에는 그러한 대안들이 결과적으로 그 어떤 형태의 레닌주의와도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른 곳에서는 《철학노트》와 《국가와 혁명》(심지어는 노동조합 논쟁)의 레닌과 《유물론과 경험비판론》과 《무엇을 할 것인가》의 레닌을 호의적으로 비교하려는 시도가 행해졌다. 대부분의 수정주의자들에게는 이미 콜라코브스키에 의해서 대표되는 일관되고 비타협적인 반레닌주의는 미래에도 여전히 계속될 성질의 문제이다. 경제학에서 수정주의는 최소한 ‘시장 사회주의’의 이념(부분적으로는 독립적인 연원을 갖고 있는)이 충분히 표현될 수 있는 지적인 맥락에서 나타났다. 순수 경제학적 차원에서 보면 분명히 가능성 있는 개량 모형에 대한 맑스 이후 논쟁을 포함한 동유럽 맑스주의의 모든 단계를 특징짓는 접근방법 사이에는 상당한 정도의 지속성이 존재한다. 중앙집권적 계획과 탈중앙화 된 시장구조를 적절하게 혼합하려는 시도는 1950년대 초에 폴란드의 랑게와 동독의 베렌스[F. Behrens와 베나리(A.Benary)에서 시작되었고, 이와 관련된 이론적 모델들은 1956년 이후에 브루스(W.Brus), 칼렉키(M. Kalecki), 식크(O.sik), 코스타(J.Kosta) 및 코르나이(J.Kornai)와 같은 경제학자들에 의해서 풍부하게 제시되었다. 여기서 정의된 바와 같은 수정주의의 맥락에서 이러한 시도를 특징짓는 것은 오로지 순수한 경제적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체제의 구조적 개혁을 위한 정치-사회적 전제조건들을 회피하는 데 있다. 이러한 것은 어느 정도 ‘프라하의 봄’에 편승한 체코의 경제적 개량주의자들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밖의 다른 곳에서도 역시 이들 경제학 전문가들은 맑스주의의 르네상스와 공통적인 것은 별로 발견하지 못하였는 데, 그 이유는 이 전통의 근원을 옹호하려는 노력은 이 분야에서는 항상 독단주의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맑스주의의 재구성 계획은 사회주의 경제와 정치경제학에 대한 고전적 비판에서 교묘하게 지나쳐버린 문제 영역의 모형을 구성할 목적으로 이미 비맑스주의적 개념을 사용한 경제학자들에게는 불필요한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단지 맑스주의의 초월만이 경제학에서 반향을 얻을 수 있을 뿐이었지만, 이러한 영향은 폴란드(리핀스키, 코발틱크, 망명 중인 브루스 등)와 더 미미한 정도로 헝가리에 국한되어 있다. 맑스주의(‘실천의 철학’이라고도 불리는)의 르네상스는 레닌주의의 전반적 폐기와 맑스주의의 원초적 근원과 역사적 가치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대체로 그러한 경향은 사회 운동의 침체기에 나타나는 집권당의 자학적 이데올로기적 의식주의(儀式主義)에 대응하여 나타난다. 이러한 단계의 동유럽 맑스주의는 서구의 신좌파운동과 유고슬라비아의 《실천》학파와 지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유럽에서는 맑스의 부흥으로 인한 최상의 결과는 철학에 국한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청년 맑스로의 복귀와 함게 또한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나타난 청년맑스의 철학적 관심에 대한 재발견을 내포하고 있다(샤프, 콜라코프스키, 루카치, 헬러, 마르쿠스 등). 청년 루카치, 코르쉬, 그람시의 저서들에 대한 이러한 맥락에서의 연구와 해석도 대단히 보편적이다. 그러한 최초의 전망은 때때로 그와 관련된 비맑스주의적 철학 전통, 즉 하이데거(코지크), 훗설(바야다), 신칸트학파(헬러)의 전통에 의해서 그 내용이 풍부해졌다. 그러나 단 하나의 중요한 경우로서 모드젤레프스키와 쿠론의 《공개 서한》만이 소비에트 유형의 체제에 적용된 고전적 맑스 사회 이론의 견강부회(牽强附會)적 해석을 이루었다. 맑스주의 부흥기의 이론가들은 사실 이러한 고전적 이론의 최상의 해석에 정통해 있지만(마르쿠스, 키스, 벤스), 대체로 그들은 고전적 이론, 즉 사회변화의 세력관계 모형, 가치론, 상품 숭배 개념, 상부구조로서의 국가 개념 등을 동유럽 맥락에서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따라서 맑스는 엄밀하게 말해서 그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다름 아닌 철학자로서 추앙되었던 셈이다. 맑스주의 부흥기의 철학적 이상주의가 볼세비즘에 대한 신볼세비키주의자의 비판, 즉 권위주의적 사회질서의 방어로 퇴보할 수 있는 이념의 옹호 아래서 기존의 체제를 복원시키고자 하는 비판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것(Szelenyi and Konrad, 1979)이 공정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회이론에 관한 실천 철학자들의 침묵은 그들이 신화나 권위주의 또는 이 양자에게로 복귀하지 않고서는 고전 이론에 대한 제아무리 최상의 해석이라도 이것을 도무지 활용할 수 없다는 내면적 소신을 피력하고 있다. 실제로 쿠론과 모드젤레프스키는 노동자계급과 평의회 민주주의의 고전적 신화를 부활시킴으로써만 레닌주의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할 수 있었지만(→평의회), 맑스주의 르네상스가 낳은 최후의 주요이론가인 바로(R.Bahro)는 그보다 10년 정도 뒤 이와 다른 맥락에서 쓴 글에서 고전 이론과 레닌주의 정치학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재정립하였다.
신맑스주의 또는 후기 맑스주의의 재구성과 초월은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여 각기 다른 두 가지 반응을 나타냈다. 그 두 국가의 선택적 공공의 영역에서 정치 계획에 대한 가장 최근의 논쟁 수준에서 볼 때, 후기 맑스주의가 압도적으로 지배적이었던 반면에 이론적 업적의 수준에서 볼 때는 신맑스주의의 성과가 훨씬 압도적이었다. 이러한 차이는 부분적으로 그들의 발생 연원이 서로 달랐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물론 1968년은 위로부터의 체제의 구조적 개혁이라고 하는 동유럽 모든 지역(동독은 제외)의 비판적 지식인들 사이에 팽배했던 환상에 종말을 고하는 해였다. 프라하의 봄의 패배뿐만 아니라 특히 집권당이 이 사건으로부터 유추한 교훈은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그 뒤를 이은 전 시기에 걸쳐서 이들 집권당들은 정치나 문화의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는 경제적 또는 행정적 개혁을 감수하지 않기로 굳게 결의하였다. 이와 같은 새로운 태도에 직면하여 마침내 동유럽 맑스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들로서는 일당 국가의 사회에 대한 관계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구조적 변화는, 어쨌든 아래로부터의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가능성이 탐색될 수 있는 방식은 개별 국가들의 사회적 배경에 의해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고도의 탄압으로 인해서 그런대로의 기능만을 하는 선택적 공공 영역의 가능성이 봉쇄된 국가에서는 정치적 견해를 표방하는 어떠한 새로운 발언도 할 수 없으며, (어떠한 열의도 없다면(동독의 형태)) 구래의 개념을 계속 사용하거나 모든 반체제 인사들이 동의하는 최소한의 입장, 즉 인간의 권리에 대한 발언(체코슬로바키아)으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경제분야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상대적으로 개선된 법률 구조의 유지를 가져왔던, 헝가리의 그 미미했던 위로부터의 민주화라는 맥락에서는 선택적 공공 영역의 발전 가능성(다른 사회 세력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은 본질상 이론적인 토론으로만 그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전된 선택적인 공공 영역의 존재가 처음부터 점증하는 사회 운동의 힘과 요구에 의해서 결정되었던 폴란드에서는 토론이 일차적으로 정치적이며 실천적이었다. 헝가리에서는 구조적 변화의 가능성이 처음부터 행정적-경제적 합리성의 위기와,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입안된 위로부터의 현대화 시도(‘위기관리’)에 의해 점차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회의 추진력에 대한 분석의 차원에서 탐색되었던 반면에, 폴란드의 이론가들은 그들의 사회구성체의 한계성과 유약성을 실제로 연구하는 사회운동의 관점, 즉 실천 철학에는 생소하지 않은 전망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헝가리에서의 논쟁의 이론적 특징과 그의 신맑스주의적 입장은 최소한 1977년까지는 영향력있던 지식인 서클인 부다페스트의 루카치학파를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졌다. 이 서클의 서구 신좌파 운동과의 결합은 맑스주의적 입장을 지속적으로 천명하는, 보다 넓은 국제적 연대를 가져오게 하였다. 맑스주의의 재건 계획은 이러한 교류로부터 성장하였는 데, 그것은 프랑크푸르트와 스타른베르크의 다양한 ‘비판 이론’을 동유럽의 독특한 방식으로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곳에서는 폴란드의 사회학자인 스타니스키스만이 위와 유사한 계획을 세웠는 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베버, 폴라니, 후기 케인즈주의자의 경제학, 체계이론, 맑스 등으로부터 다양하게 도출한 개념을 중심으로 역동적인 사회 이론을 세우면서도 맑스적 비판 이론의 기본적인 특징은 유지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취해진 최초의 중요한 일보는 소비에트식 사회의 경제적 재생산의 새로운 구조(키스, 벤스-‘마르크 라코브스키’-마르쿠스), 새로운 형태의 계층 형성(헤게뒤스, 콘라드, 첼레니), 정치제도 및 이데올로기(폐허, 헬러), 사회체계 내에서 사회운동의 위치(스타니스키스) 등을 분석해 내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에서는 신맑스주의적 전망으로부터 새로운 저항 정치학적 요소를 기대하는 것이 자주 가능했던 반면에 (첼레니, 콘라드, 헤게뒤스), 좀더 일반적 맑스주의적 전망은 새로운 사회운동에서 실제적으로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었다(스나니스키스, 그리고 다른 지적 배경에서는 바로(Bahro)). 일찍이 그 전례가 없었던 규모로 아래로부터의 혁신을 기존 체제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했던 폴란드의 사회운동에 관하여 쓰면서, 신 맑스주의 이론가들은 아래로부터나 위로부터의 개혁을 거부하거나 흡수할 수 있는 폐쇄적이고 거의 불변적 사회구조를 상정하거나(라코브스키, 마르쿠스, 폐허, 헬러, 스타니스키스), 또는 개량주의적이고 기술관료적 국가 사회주의 단계의 승리에 관한 환상적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즉 결과적으로 확고한 역사적 유물론의 전제 위에서 사회 변화의 모델을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첼레니와 콘라드).
폴란드식의 운동이 발전할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헝가리에서 신맑스주의가 거의 전반적으로 후기 맑스주의에 의해서 대치되었던 것은, 폴란드 사회운동의 완숙한 전개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본 바로 이 이론적 문제들에 기인한다. 오늘날 신맑스주의적 접근 방법은 대체로 망명 중인 헝가리(폴란드와 비교하여) 이론가들에 의해서 수행되고 있으며, 이들은 물론 서구의 과격한 독자들을 대상으로도 글을 쓴다. 반면에 후기 맑스주의적 입장은 폴란드의 대부분 주요 이론가들(모드젤레프스키, 미크닉, 크론 등)과 헝가리의 국내 저항 이론가들(키스, 벤스, 바야다 등) 사이에서 지배적이다. (헤게뒤스와 스타니스키스가 국내의 이러한 흐름과는 예외적인 것처럼 보인다)
철학적으로 말해서 후기 맑스주의는 헤겔과 청년 맑스에 의해서 최초로 체계화된 국가와 시민 사회의 문제에 대한 재검토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후기 맑스주의가 맑스의 부흥기의 연구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었던 것도 물론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콜라코프스키의 영도하에 후기 맑스주의 이론가들은 국가-시민 사회의 이중성에 내재되어 있는 소외의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적 해결책, 즉 국가와 사회의 민주적 통합은 필연적으로 권위주의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여 이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신 그들은 사회와 국가 사이의 제도적 중재, 즉 법률주의, 다양성, 공개성을 옹호하거나 재정립하고자 하였다(바야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운동은 전체주의적 국가에 의해서 억압 또는 종속되거나 심지어 말살되기까지 한 시민 사회의 능동적 건설로 해석될 수 있다(쿠론). 후기 맑스주의자들(콜라코프스키, 쿠론, 미크닉)의 대표적 몇몇 저서들은 시민 사회 건설의 전략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것만으로 그들은 1980-81년의 결속 운동(Solidarity-Movement)에 기대를 걸고 헌신하였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지식인들과 노동자들 간의 새로운 후기 레닌 주의적 관계를 정립한 KOR의 업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기 맑스주의자들의 이론적 접근은 이러한 맥락에서 생겨난 두 개의 중요한 문제들을 거의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첫째, 철학적 수준에서 행해진 시민사회 문제에 대한 맑스적 해결책의 거부는, 그것이 비록 정당하다 할지라도, 시민사회의 자본주의적 변형에 대한 헤겔 및 맑스적 비판과 후기 맑스주의자 사이의 관계를 거의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비판이 간단하게 무시될 수 있는 것이라면(콜라코브스키). 이론가들은 위험스럽게도 자본주의사회의 변호에 근접해 가게 될 것이다. 만일 그 비판이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받아들여진다면(바야다), 이론가들은 권위적 국가로부터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의 자본주의 사회와의 역사적 결합으로부터 해방된 시민사회라는 가능성 있는 관점에서의 계획을 개념화시켜야만 한다. 이러한 문제의 많은 측면들이 사실은 1980-81년의 폴란드 운동에 의해서 창조적으로 해결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이론적인 반성은 실질적 실천 뒤에서 지체되고 있었다. 이러한 지연은 최근에 비알로레카 감옥으로부터 밀반출된 책에서 미크닉에 의해서 지적되었다.
두 번째 차원에서도 역시 후기 맑스주의적 접근방법에 의해서 해결되지 못한 일련의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사회 운동의 관점을 취하면서도 기존 체제의 외적 억압과 스스로가 유도해 온 난점을 적절하게 설명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두 경우 모두 동유럽의 체제를 일거에 전복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시민사회를 재건하려는 사람들의 행동 영역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이제까지 후기 맑스주의 구조 안에서는 이 문제가 다양한 동유럽 국가들과 소련에서의 서로 다른 사회적 독립의 전통에 대한 역사적 고찰에 의해서만 설명되어 왔다. 이것은 중앙에서는 체제의 안정성을, 주변에서는 불안정성을 가져온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주의적 전환이 신맑스주의적 이론의 구조적 편협성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반면(바야다 1981), 그것의 사회적 변화에 대한 관계는 근본적으로 복고적이다. 소비에트형의 사회에서 회상과 전통의 파괴에 대한 중요한 방어적 대응을 한 것은 고작 그것으로의 접근이 행해졌을 때뿐이다(쿤데라). 그러나 그것이 갖는 역동적 사회이론과의 관련은 역사적이고 구조적 방법이 함께 취해졌을 때만 확립될 수 있다. 첼레니와 같은 몇몇 신맑스주의자들에 의해서 제기된 사회주의적 시민사회의 문제뿐만 아니라, 구조적 분석에서 바야다와 같은 후기 맑스주의 이론가들에 대한 최근의 새로워진 관심은 모든 논쟁들 이외에도 두 개의 경향 사이에 중요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다양성은 동유럽의 지적 생활이 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관련자료]
Bahro, R. 1978 : The Alternative in Eastern Europe.
Brus, W. 1975 : Socialist Ownership and Political Systems.
Erad, Z. and Zygier, G. M. 1978 : La Pologne une société en dissidence.
Hegedüs, A. et al. 1974(1976) : Die Neue Linke in Ungarn.
Kolakowski, L. 1968 : Toward a Marxist Humanism.
-1978 : Main Currents of Marxism, vol. Ⅲ.
Konrád, G. and Szelényi, I. 1979 : The Intellectuals on the Road to Class Power.
Labedz, L. ed. 1962 : Revisionism. Essays on the History of Marxist Ideas.
Rakovski, M. 1978 : Toward an East European Marxism.
Silnitsky, F. et al. eds. 1979 : Communism and Eastern Europe.
Vajda, M. 1981 : The State and Soc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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