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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센의 급사』] (Der hessische Landbote)

게오르크 뷔히너와 루트비히 바이디히가 작성한 정치 팸플릿. "오두막에는 평화를! 궁전에는 전쟁을!"(프랑스의 작가 샹포르의 말)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민중들에게 자신들이 놓인 비참한 처지에 눈을 뜨게 하고 봉건체제에 대한 봉기를 호소한다. 1834년 7월의 초판과 같은 해 11월의 제2판이 있는데, 후자는 '서문'이 빠져 있고 초판과의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며, 바이디히만이 인쇄와 발행에 관여했다.

발행 당시 뷔히너는 기센 대학의 의학생, 후에 이색적인 희곡작가로서 알려진다. 바이디히는 목사 · 초등학교 교장으로 헤센의 중심적인 반체제 지도자. 두 사람은 1834년에 서로의 지인인 A. 베커의 소개로 알게 되며, 뷔히너의 제안으로 민중에 대한 정치선전 팸플릿 제작에 착수한다. 뷔히너는 이 해에 기센에서 프랑스의 예를 본 따 '인권협회'를 설립, 활동의 기반으로 삼는다. 그는 어릴 적부터 부친의 영향으로 프랑스 혁명에 강한 관심을 보이는데, 이 무렵 그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며 그 성과가 『헤센의 급사』나 희곡 『당통의 죽음』(1835)에 반영되어 있다.

운동의 방법에 대한 양자의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논의 끝에 뷔히너가 우선 초고를 작성하고 바이디히가 수정을 가하는 형태로 작업이 진행된다. '서문'은 바이디히에 의해 가필되었다. 본문의 가필 수정에 대해 뷔히너는 반발하지만 그 내용에 그가 손을 댔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하다. 그대로 비밀 인쇄소에서 인쇄, 초판 부수는 불분명하다(300부 정도로 추정). '기센 인권협회'의 멤버들에 의해 배포되는데, 그룹 내에 숨어 있던 당국의 스파이에 의해 밀고당해 멤버들이 체포되고 팸플릿도 압수된다. 뷔히너의 신변에도 체포 위험이 다가오지만 법적 절차의 미비로 어려움을 벗어난다. 바이디히는 좌천 처분을 받는다.

1834년 말 바이디히가 독자적으로 제2판을 인쇄(400부). 1835년 초 뷔히너는 출두 명령을 받지만 같은 해 3월 슈트라스부르로 도망한다. 4월 바이디히가 구속된다. 1837년 2월 뷔히너는 당시 대학 강사를 맡고 있던 취리히에서 티푸스가 발병하여 얼마 안 있어 사망. 2, 3일 뒤 장기간의 취조와 고문 끝에 바이디히가 옥중에서 자살했다.

바이디히의 '서문'은 팸플릿 성격을 "헤센 땅에 진실을 전하는" 것이라고 하고, 5개조의 주의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바이디히의 가필 수정은 그의 오랜 시간에 걸친 경험을 반영, 서두에서 뷔히너가 타도될 대상을 "부자"라고 쓴 부분을 "높으신 분"으로 변경하고, 또한 곳곳에 성서로부터의 인용을 섞어 넣어 독자인 민중들의 지적 수준을 고려한다. 뷔히너는 이 팸플릿에서 프랑스 혁명의 이상을 가슴에 품고 헤센 농민들의 혁명의식을 시험하고자 했던 것이지만 그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며, 오히려 이 팸플릿을 위험물로 간주하여 경찰에 신고하는 모습에서 독일의 혁명운동의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

-다카기 후미오()

[네이버 지식백과] 『헤센의 급사』 [-給仕, Der hessische Landbote] (맑스사전, 2011. 10. 28., 마토바 아키히로, 우치다 히로시, 이시즈카 마사히데, 시바타 다카유키, 오석철,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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