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 국왕과 사회개혁'에 대한 비판적 논평. 어느 프로이센인에 대하여」] ()
『포어베르츠』1에 1844년 8월 7일에 게재된 맑스의 논문. 6월에 일어난 슐레지엔의 직조공 폭동에 대해 루게가 7월 27일의 『포어베르츠』에 「프로이센 국왕과 사회개혁」이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은 프로이센 국왕의 자선을 기대한다는 것이었지만, 『포어베르츠』 편집부는 국왕의 자선정책에 반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베버가 8월 3일에 「프로이센의 공적 자선」을 『포어베르츠』에 게재해 자선은 빈곤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것을 이어받아 맑스가 쓴 것이 이 논문이다. 따라서 부제에 있는 '어느 프로이센인'은 루게를 가리킨다.
맑스는 사회 위기의 원인 쪽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하고, 슐레지엔의 폭동은 국왕을 향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를 향한 농민들의 저항임을 지적한다.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국왕의 자선이 아니라 이러한 빈곤을 낳은 국민경제학이었다. 이 논문은 『경제학 · 철학 초고』를 집필할 무렵에 씌어졌다. 그 후 작성된 베버의 「알자스의 오스트발트 콜로니」(8월 10일), 「화폐」(8월 23일)라는 논문도 사적 소유를 전제로 한 국왕에 의한 자선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내용적으로도 맑스의 『경제학 · 철학 초고』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따라서 베버의 논문은 『경제학 · 철학 초고』를 토대로 해서 씌어진 논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토바 아키히로(的場昭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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