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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어베르츠』1] (Vorwärts )

1844년 초에 파리에서 발간된 주 2회(수요일과 토요일) 발행의 파리의 독일인을 위한 독일어 신문. 편집과 경영은 H. 뵈른슈타인과 보른슈테트, 인쇄는 레누아르였지만 프랑스인 레이노가 신고 책임자였다. 첫 호는 1844년 1월 2일에 간행되었다. 『포어베르츠』라는 명칭은 "전진(포어베르츠)은 우리 시대의 해답이며 개개인, 민족의 말이다"라는 이유에서 붙여졌다. 요컨대 본래 모든 분야의 진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신문으로서 출발했던 것이다.

『포어베르츠』의 논조는 44년 1월부터 6월까지와 그 이후로 명확히 나뉜다. 게재된 최초의 논제는 프로이센에서의 검열에 대한 비판과 출판의 자유에 대한 것이었고, 나아가 독일의 통일이라는 문제가 더해져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자유주의자들의 테마이며, 『포어베르츠』는 당시까지 자유주의자의 신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말에 대해 엄격한 비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보른슈테트를 매개로 독일인 구제협회와도 깊이 관계하고 있었다. 이는 대개 200명으로 이루어진 파리에 체류하는 부유한 독일인들이 파리에 살고 있는 가난한 독일인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조직(맑스도 회원이었다)으로 보수적인 조직이었다.

『포어베르츠』의 변화는 7월에 베르나이스가 편집에 참가하면서부터이다. 『포어베르츠』는 이 무렵 재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서 자금이 풍부한 『독불연보』의 사람들을 편집에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 맑스도 편집에 참가한다. 이러한 신문의 변화에 대해 보수층은 파리에서 『독일인의 물길 안내인』(1844-46)이라는 신문을 만든다. 『포어베르츠』는 6월에 일어난 슐레지엔의 직조공 폭동트리어의 성의순례,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암살사건 등을 다루어 프로이센에 대한 비판을 전개했다. 특히 8월 3일의 「프로이센 국왕 암살사건」은 암살이 프로이센 국왕의 신성성을 파괴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프로이센 정부는 프랑스 정부를 움직여 『포어베르츠』에 대한 탄압을 시도한다.

베르나이스는 법원에 불려가 암살미수사건의 기사가 프랑스 국왕에 대한 불경죄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 또한 신문 발행에 필요한 보증금 체불로 2개월의 금고와 300프랑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12월에 베르나이스가 체포됨으로써 『포어베르츠』는 1845년부터 월간지로 바뀌게 되었지만 결국 폐간된다. 나아가 신문에 관계하고 있던 맑스,루게, 보른슈테트, 헤르베크 등에게 프랑스에서 국외로 퇴거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이러한 일련의 조처에 알렉산더 훔볼트가 관계하고 있었다는 풍문이 있지만 증명되지는 않았다.

-마토바 아키히로()

[네이버 지식백과] 『포어베르츠』1 [Vorwärts] (맑스사전, 2011. 10. 28., 마토바 아키히로, 우치다 히로시, 이시즈카 마사히데, 시바타 다카유키, 오석철, 이신철)

■ 인접어

『쾰른 신문』
『텔레그라프 퓌어 도이칠란트』
『트리어 신문』
『파리의 비밀』
『팔 말 가제트』
『포어베르츠』1
『포어베르츠』2
『포어베르츠』3
『포이어바흐론』
『포자우네』
『포크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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