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交通 ] (Verkehr , commerce)
목차- 【Ⅰ】 '교통'이라는 용어의 폭
- 【Ⅱ】 『독일 이데올로기』에서의 '교통'
- 【Ⅲ】 교통 개념의 전개
맑스와 엥겔스가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구사한 사람들의 상호관계와 사회의 구조적 · 역사적 양태에 관련된 개념. 거기서의 '생산력‒교통형태'라는 맞짝개념은 나중에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나 『자본』에서 정식화되는 '생산력‒생산관계'라는 맞짝개념의 원형을 이루기도 한다. 【Ⅰ】 '교통'이라는 용어의 폭『독일 이데올로기』의 주요 부분을 마무리한 후에 맑스는 유물론적 역사관의 기본적 명제를 간결하게 담은 안넨코프에게 보내는 편지(1846년 12월)에서 "나는 교통(commerce)이라는 용어를 독일어의 교통(Verkehr)이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은 매우 넓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27:390, MEGA Ⅲ/2:72]라고 말했다.
'Verkehr'에는 ① 운송, 통행, 왕래 등, 한국어의 교통에 가까운 의미 외에, ② 상품 · 화폐의 유통, 상거래, 통상, 무역, 교역 등, 상업적인 의미가 있으며, ③ 일상어로서는 교제, 교류, 교섭 등,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나타내는 식으로, 그 자체가 다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헤스는 「화폐체론」(1845, 집필은 1844년)에서 ②와 ③의 양의성을 살리는 형태로 ③에 자리 잡고, 포이어바흐가 인간의 본질로 간주한 '유(類)'를 인간의 '협동(Zusammenwirken)' 및 '교통'으로 바꾸어 읽었다.
"교통이야말로 인간의 현실적 본질"이며, 이것이 소외되고 전도되어 상업과 화폐의 지배가 생겨나게 된다. 맑스도 「밀 평주」(1844)에서 교환거래나 상업을 "사회적 교통의 소외된 형태"[40:370, 372]라고 비판하여 헤스와 같은 취지의 시각을 보이고 있다. 슈티르너도 ③의 의미에서의 교통에 자리 잡고서 국가나 사회에 의한 외적 강제를 받지 않는 에고이스트(유일자)들의 자발적인 '교통'과 '연합(Verein)'을 『유일자와 그 소유』(1844)에서 설파하여 일종의 아소시아시옹론을 전개했다. 【Ⅱ】 『독일 이데올로기』에서의 '교통'(1) 『독일 이데올로기』의 '교통' 개념은 포괄적이어서 앞서 언급한 ①②③ 모두를 포함한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 운송적 교통과 상업적 교통 그리고 인격적 교통 모두 '교통'의 다양한 양태의 구체적 형상으로서 적극적으로 다시 파악된다. 예를 들면 운송이든 상업이든 간에 교통의 확대는 지방들 · 국민들을 서로 의존하고 영향을 미치는 관계 속으로 끌어들이며, 따라서 또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국지적인 것에서 국민적인 것, 더 나아가 세계적인 것으로 확대한다. 세계항로나 세계시장의 형성은 동시에 사람들의 '세계교통'[廣39, 102]의 형성을 수반한다.
교통에 대한 이러한 포괄적인 파악은 맑스 · 엥겔스의 관계주의적인 세계관과 밀접히 관련된다. 그들은 "자연에 대한, 그리고 개인들 상호 간의 역사적으로 창조된 하나의 관계"[같은 책:50]라는 생태학적 · 총체적인 관계에 자리 잡고 있다. 교통은 이 관계의 항(項)으로서 도출된다. 교통은 그 자체가 하나의 관계이다. 그것은 실체로서의인간과 사물 사이에서 이차적으로 맺어지는 것도, 또 실체들을 결합하는 제3의 실체(매개물, 매개 수단)도 아니다. 서로 교통하는 인간과 사물은 교통이라는 일정한 관계 속에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바로 그 인간, 바로 그 사물로서 존재한다.
(2)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교통'은 '생산'과 한 쌍으로 사용되고 있다. 생산도 하나의 관계이다. 그것은 실체로서의 인적 · 물적 요소들의 결합에서 이차적으로 생겨나는 것도, 또 실체로서의 생산력인 사물의 자립적인 활동도 아니다. 원료, 도구 · 기계, 노동(력) 등은 모두 생산이라는 일정한 관계에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생산의 현실적 계기가 된다. 그런 까닭에 생산은 본원적으로 개인들의 '협동'이다. 협동의 편성에 따라서는 개인들의 힘의 총계 이상의 생산결과가 얻어진다. "협동의 양식 그 자체가 하나의 '생산력'인 것이다"[廣26]. '협동'도 헤스에게서 유래하는 술어이지만, 헤스의 경우에는 근대적 대공업 이전의 '소상인 세계'를 모델로 했기 때문에 '협동'과 '교통'은 거의 중첩되고 양자가 호환적인 용어법을 보이고 있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생산의 장면을 기초적 차원으로서 도출하면서, 그러나 거기로는 환원되지 않는 교통의 장면을 상대적으로 구별하여 '생산과 교통', '생산관계와 교통관계' 등으로 상보적으로 표기한다. 나아가 협동에서 생겨나는 생산력이 역으로 강제력으로서 개인들에게 있어 물화된 형상으로 진전한다고 하는 사태, 다른 한편으로는 이 생산력이 일정한 발전단계에서 기존의 교통 양태와 모순을 일으킨다고 하는 사태, 이러한 생산과 교통의 동태적 구조에 비추어 '생산력과 교통형태(Verkehrsform)'라는 맞짝개념이 자주 사용되게 된다(용어법상 어느 정도 정착하는 것은 집필이 상당히 진척된 시점). 【Ⅲ】 교통 개념의 전개『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에서의 유물론적 역사관의 '정식화'에서는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조응하는 '생산관계'를 법적 · 정치적인 '상부구조'나 사회적 의식형태와 구별하여 '토대'라 규정하고, 또한 혁명적인 변동과 변혁이 초래되는 역사적 국면에서는 그 근저에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모순에 빠져 후자가 질곡으로 변하는 토대의 구조변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13:6-7]. 이 입론은 실질적으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루어지는 논의의 요약이다. 차이는 '교통형태'라는 용어가 '생산관계'로 치환되었다는 점에 있다. 이는 물론 맑스의 경제학 이론의 진전과 무관하지 않은데, 치환의 경위와 이유, 의미에 대한 탐구는 경제학상의 하나의 과제를 이룬다.
그러나 문제는 경제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 『독일 이데올로기』의 '교통'에는 '생산관계'로 지양되는 '교통형태'뿐만 아니라 개인들의 "상호적 관계행위(Verhalten)"[廣38, 76]라는 보편적인 사회적 행위 연관이 함의되어 있었다. 생산 또는 경제라는 범주로는 완전히 수렴되지 않는 "정신적 교통"[같은 책:29]이나 "개인들로서의 개인들의 교통"[같은 책:144, 146] 등의 개념은 맑스의 경제학 이론상의 전개에서 지양되었다기보다 전개되지 않은 채로 남겨졌다고 생각된다. 오늘날 사회학의 커뮤니케이션 행위론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과 같이 '교통' 개념의 계승적 전개가 새롭게 요구되고 있다. -고바야시 마사토(小林昌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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