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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敎育 ] ()

목차

  1. 【Ⅰ】 김나지움(Gymnasium)과 실업계 중등학교의 형성
  2. 【Ⅱ】 민중학교의 기능


18세기 말 독일(프로이센)의 교육제도는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있었다. 한편으로는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이 있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초등교육기관인 민중학교가 병존하고 있었지만, 양자는 교육적인 상하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횡렬적인 병존 상황에 있었다. 또한 양자를 연결하는 중등학교도 없었다. 다시 말해 초등 · 중등 · 고등이라는 3단계 교육체제는 독일, 더 나아가서는 널리 유럽에서는 20세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Ⅰ】 김나지움(Gymnasium)과 실업계 중등학교의 형성

이러한 교육사회의 상황에 새로운 구조적 변동을 일으킨 것은 프로이센 정부에 의한 대학 진학 억제 정책이었다. 당시에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이렇다 할 자격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입학과잉에 처해 있었고 사회불안을 배양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하여 정부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특정한 중등학교에 재학하고 졸업시험에 합격한 사람에게 대학 입학 자격(아비투어)을 수여하기로 하고, 이 중등학교를 김나지움이라 부르기로 했다. 나아가 1834년에 각 대학의 독자적인 입학시험을 폐지하기로 결정함으로써 김나지움은 대학 입학으로 가는 길을 독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김나지움을 설립하는 데 있어 기존의 라틴어학교(교회 등에 의한 성직자 양성의 예비교육기관) 중에서 설비와 교원이 충실한 곳을 승격시켰는데, 그러한 혜택을 받지 못한 라틴어학교는 실업계 중등학교로 전환함으로써 계속 존속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고 있었다. 여기서 대학 진학을 위한 엘리트 중등학교로서의 김나지움과 더불어 직업코스라 할 수 있는 실업 김나지움과 고등실업학교라는 모두 세 가지 계열의 중등학교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세 계열의 중등학교 커리큘럼의 특징에 대해 1882년 시점에서 말한다면, 김나지움에서는 라틴어 · 그리스어가 필수로 전체 수업시간의 약 40%를 차지하고, 실업 김나지움에서는 라틴어만 필수로 약 20%이며, 고등실업학교는 고전어로부터는 해방되어 그 대신에 현대어(영어 · 프랑스어)가 약 30%, 자연과학 · 도화가 약 22%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김나지움에서는 고전어 중심의 인문적 교양을 중시하는 교육이 행해졌고, 고등실업학교에서는 현대어 · 자연과학 등의 실학적인 교양교육이 중점적으로 주어졌으며, 실업 김나지움은 양자의 중간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이들 세 계열의 중등학교가 커리큘럼에서 각각의 특징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 입학권에서의 격차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1901년까지 김나지움은 대학의 모든 학부에 입학권을 갖고 있었던 데 반해, 실업 김나지움은 철학부에만, 고등실업학교는 수학 · 자연과학 코스에만 입학권을 갖고 있었던 데 지나지 않았다. 즉 라틴어 · 그리스어라는 고전어 습득의 범위와 정도에 따라 교육제도상의 순위가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밖에도 이러한 9년제 중등학교와 더불어 뒤에서 언급하는 초등학교=민중학교를 졸업 또는 4년 수료한 뒤 취학하여 주로 직업적 지식을 습득하는 4~5년제의 학교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학교들에게는 실업학교라든가 시민학교와 같은 다양한 명칭이 붙어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대부분 '중간학교(Mittelschule)'라 불리었고, 민중학교는 연령적으로나 지능 · 지식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부족하다고 여겨진 아이들의 취학기관이었다.

【Ⅱ】 민중학교의 기능

그런데 프로이센에서는 중등학교의 설립에 앞서 18세기 초부터 잇따른 정부의 교육령에 의해 민중교육이 장려되고, 특히 1763년의 '학사통칙'(일반 지방학교령)에 의해 5~14세의 취학의무제도가 실시되었다. 그 배경에는 영방절대주의 국가 프로이센의 농민정책 · 군대정책이 있었다. 즉 국가는 농민의 자제가 납세의무자로서, 또한 병역의무자로서 걸맞은 의식 · 행동양식을 습득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 때문에 기본적인 읽기 · 쓰기 · 계산 및 종교를 주요한 내용으로 하는 민중교육을 추진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의무교육 8년제 하에서 초등교육=민중학교(Volksschule)가 성립되어 갔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의무교육 8년제란 반드시 민중학교에서 8년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4년간만 민중학교에 재학하고 나머지 4년간은 공립과 사립의 중등학교나 중간학교 등에 취학해도 상관이 없었다. 또한 부유한 가정의 자제가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는 것으로 대신해도 무방했다. 이와 같은 의무교육의 양태는 바이마르 공화제의 성립까지 기본적으로는 변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장래에 김나지움에 진학하고 나아가서는 대학 입학을 뜻하고 있던 아이들 중에는 민중학교에 가지 않고 사립 예비학교(Vorschule)에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그 이유는 19세기 독일의 민중학교의 설비와 교원은 매우 참담한 상황에 처해 있어 김나지움 진학의 예비교육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세기의 민중학교(특히 상급학년)는 실질적으로는 중등학교나 대학까지 진학할 의지가 없는 아이들의 취학기관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민중학교 4학년에서 5학년으로 올라가는 시점의 진로 선택별 비율을 대략적으로 나타내면, 그대로 민중학교 상급학년에 머무는 학생은 90%,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은 불과 몇%(이 가운데 거의 절반이 김나지움에 진학)이며, 나아가 김나지움에 진학한 학생들 중 약 절반이 고등교육=대학교육의 길로 들어섰다. 여기에 19세기 독일의 교육상황이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

-모치다 유키오()

[네이버 지식백과] 교육 [敎育] (맑스사전, 2011. 10. 28., 마토바 아키히로, 우치다 히로시, 이시즈카 마사히데, 시바타 다카유키, 오석철,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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