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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통신위원회] (Das Kommunistische Korrespondenzkomitee )

1846년 초, 늦어도 2월 중순까지 브뤼셀에서 맑스와 엥겔스를 중심으로 하여 결성된 클럽. 그 목적은 학문적 문제들의 토의, 통속적 서적에 대한 비판, 독일에 대한 공산주의(내지 사회주의. 이하 동일)적 프로파간다 등을 통해 (1) 독일인 공산주의자와 프랑스, 영국의 공산주의자와의 연대를 도모하는 것, (2) 독일에서의 공산주의적 운동에 대해 외국에 소식을 전하는 것, (3) 역으로 프랑스와 영국의 공산주의의 진전에 대해 독일에 정보를 전하는 것이었다. 브뤼셀에서의 멤버로는 슐레지엔 출신의 교사 빌헬름 볼프, 맑스의 처남 에드가 폰 베스트팔렌, 저술가이자 전 바이틀링파의 세바스티앙 자일러 등이 있었다. 

영국과의 연락을 위해 런던에 있는 독일인으로 의인동맹 런던 지부의 지도자이자 독일인 노동자교육협회 창설자의 한 사람이기도 한 칼 샤퍼, 샤퍼와 친했던 영국인으로 차티스트 좌파의 줄리언 하니에게 협력을 구하고, 프랑스에 대해서는 조제프 프루동에게 협력을 요청한다. 독일에 대해서는 쾰른, 킬, 라인 지방, 베스트팔렌 지방에 통신원을 두고 있었다. 또한 1846년 8월에는 엥겔스가 파리에 도착하여 그곳의 의인동맹 내에서 통신위원회를 위한 조직 활동을 전개했다.

결성 당초에 프랑스에서는 프루동의 협력은 얻을 수 없었고, 파리에 있는 의인동맹은 칼 그륀과 빌헬름 바이틀링의 영향이 강해 연대가 곤란했다. 또한 런던에서도 이 통신위원회가 노동자를 내쫒은 '학자귀족제'를 이루고 있다는 평판 때문에 하니와 샤퍼도 협력에는 신중했다. 그러나 46년 6월의 단계에서 샤퍼는 런던에 통신위원회를 만들어 브뤼셀과 연결을 갖겠다는 뜻을 브뤼셀에 알린다.

이 연대가 성립한 것은 1846년 1월부터 3월에 걸쳐 런던과 브뤼셀에서 동시에 표면화한 반()바이틀링의 경향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런던에서는 바이틀링의 봉기주의가 아니라 노동자의 계몽을, 브뤼셀에서는 '철학적 공산주의'나 바이틀링적인 '수공업자 공산주의'의 극복을 지향했던 한에서 런던과 브뤼셀의 연대는 동상이몽이었다.

그러나 이 연대로부터 1847년 1월에는 맑스와 엥겔스는 의인동맹원이 되고, 같은 해 6월과 11-12월에 런던에서 열린 공산주의자동맹(의인동맹 런던 지부의 조직개편) 대회에 협력하게 된다.

-무라카미 슌스케()

[네이버 지식백과] 공산주의 통신위원회 [共産主義通信委員會, Das Kommunistische Korrespondenzkomitee] (맑스사전, 2011. 10. 28., 마토바 아키히로, 우치다 히로시, 이시즈카 마사히데, 시바타 다카유키, 오석철,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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