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책 처음으로 | 사전 | 자유게시판 | 회원자료 | 로그인

 
마르크스주의 | 인물 | 정치경제학 | 미학 | 철학 | 한국현대사회운동 | 한국사회주의운동가

       ■ 의견바로가기

[김구(金九, 1876~1949)] ()

. 백범(白凡) 김구는 황해도 해주에서 상민(常民)의 아들로 태어났다. 신라 경순왕의 33대손이었다고 하나, 당시 가계는 몰락하였으므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나 서당교육 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1893년 동학에 입교하여 접주(接主)가 되었으며 1894년에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나섰다. 1895년 일본군 중위 쓰지다(土田讓亮)를 민비의 살해범(미우라 고로)으로 오인하여 때려죽이고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감형, 1898년 탈옥하게 된다. 한때 마곡사 등에서 몸을 숨기고 몇 해를 전전하다가 황해도에서 문화계몽사업에 투신한다. 1910년 합방 전후에 신민회에 가담하였다가 체포되어 1914년에 출감한다. 그 후 농사를 짓다가 1919년 상해로 망명한다. 임시정부(임정) 설립 초기에 청사의 수위가 되겠다고 자청했다가 경무국장으로 임명된다. 그 후 노동국 총판을 역임하다가 1923년 내무총장, 1927년 국무령이 되었다. 1928년 이시영, 조소앙, 조완구와 더불어 <한국독립당>을 조직하였다. 이전의 대통령 중심제, 국무령 중심제에서 벗어나 1927년부터 1940년까지는 국무위원 10인의 집단통치 체제를 채택한 임정은 김구, 이동녕 등에 의하여 통치되었는데, 특히 김구는 산산조각 난 임정의 간판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분열의 와중에서도 1931년과 1932년에 각각 이봉창과 윤봉길의 작탄(炸彈)멸외운동이 김구의 주도로 진행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1940년 주석 중심제로 바뀌어 주석에 취임한 김구는 광복군을 조직하였으며 참전외교, 승인외교를 전개한다. 1944년 주·부석 연석책임 지도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김구는 중경에서 한정된 범위였지만 좌우합작적 진용을 갖춘다. 대일 선전포고와 국내 진공작전 계획 수립 등이 크게 성과를 못 거둔 상태에서 해방을 맞이한 김구는 임정의 주석으로서가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서 뒤늦게 19451123일에 환국한다. 그 후 반탁 운동을 2의 독립운동이라고 칭하면서까지 주도하였으며, 자기중심적인 임정 중심 통일론을 좌파에 제의하였다가 거절당하고 만다. 미군정과 좌파에게 몰린 김구는 결국 이승만과의 주도권 쟁탈에서도 밀리게 된다. 1947년 말 총선거의 유엔 이관에 찬성했던 김구는 1948년 그것이 남한만의 총선거안으로 현실화되자 조국의 영구분단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로 반대의견을 표명한다. 단독선거에 대항하는 이상적 대안을 가지고 김규식과 함께 38선을 넘어 남북협상에 임한 것은 19484월의 일이었다. ‘단독선거에 반대한다는 명분 외에 별 뚜렷한 성과 없이 돌아온 김구는 5.10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결국 김구 계열의 사람들은 남한 정권으로부터 배제당한다. 그의 정치적 영향력의 행사를 두려워하는 이승만 계열의 하수인으로 보이는 안두희에게 저격당한 것은 1949626, 정부수립 후 1년도 안 되는 시점이었다.

. 김구는 서민적이며 투사형의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민중이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나 비전은 없었던 것 같다. 항일운동의 과정에서도 뚜렷한 이념은 없었으며, 단지 보는 대로 죽이리라는 식의 감정적이며 배타적인 민족주의만 가졌을 뿐이었다. 해방 후에도 이러한 이념은 계속 이어져, 즉자적인 대중의 민족감정과는 곧잘 용합하였으나 이를 조직화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같은 우파의 지도자인 이승만과의 싸움에서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구 노선에 대한 논쟁은 그의 사상이 비현실적이며 이상적인 민족주의라는 주장과 반공주의적인 비타협 노선에 대한 평가 등 두 가지의 논점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이승만의 노선이 국제정세를 이용한 현실론인 데 비하여 김구의 노선은 국제정세를 무시하고 자주적인 원칙만을 강조한 이상론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반해 김구를 자기세력 확보에 능한 자기중심적 정치가로 보기도 한다. 또한 그의 반공주의적 세계관은 항일운동 시 그가 공산주의자들의 배타적 행위를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그렇지만 그는 해방 직후 같은 항일세력이었던 공산주의자들과 지나칠 정도로 거리감을 가지며, 민족반역자가 많은 수를 차지하는 우익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따라서 1948년 남북 협상에의 참여는 이전의 우익적 노선에서 볼 때 의외의 노선전환이었으며, 긍정적으로 평가해보면 통일에의 의지’(이상적 대안)로 볼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이미 군정에 의하여 배제된 상배에서 시도해본 정치적 결단(현실적 대안)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남북협상, 일제하 민족해방운동, 일제하 해외 민족해방운동

■ 인접어

구스타프 몽무소 (1883-1960)
귀스페 마치니 (1805-72)
그람시
그레고리 오르조니키제 (1886-1937)
그레이스 칼슨
김구(金九, 1876~1949)
김구(金九, 1876~1949)
김남주
김성동 (金聖東)
김일성(金日成, 1912~1994)
김지하

뒤로
■ 의견

 



HOME - 후원방법 안내 - CMS후원신청 - 취지문 - 사용 도움말 - 회원탈퇴하기

2002 노동자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 만들기 모임
120-702 서울시 중구 정동 22-2 경향신문 별관 202호 44
laborsbook@gmail.com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 www.laborsboo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