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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성립과 발전 經濟學의 成立과 發展] ()

I. 개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물질을 획득하고 이용하는 행위를 경제행위라고 부르며 그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생활의 한 측면을 경제라고 한다. 그러므로 경제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생산력적 측면과 경제행위를 둘러싼 인간 상호간의 사회적 관계라는 두 측면이 있다. 경제학은 경제현상의 이 두 가지 측면에 대한 인식의 체계이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경제생활은 있었고 따라서 경제현상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일찍부터 있었다. 초기의 경제인식은 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경제의 사회관계적 측면에 대한 인식도 발전하였으나 그것이 하나의 사회과학적 체계로 성립한 것은 18세기 무렵이다. 고대나 중세 사회에서도 경제현상에 대한 학문적 탐구가 있었으나 그것은 주로 철학이나 윤리학의 일부로 다루어지거나 종교적 관념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경제현상의 법칙적 인식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였다.

. 중상주의.

경제현상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려는 최초의 시도는 중상주의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중상주의는 16세기부터 18세기 전반기에 걸쳐 서유럽 각국에서 발생한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탄생하였다. 중상주의는 일정한 체계를 갖춘 이론이라기보다는 실제적 문제들을 둘러싸고 제시되었던 사상가들이나 정치가들의 사상 또는 정책론을 가리킨다. 중상주의자들은 경제활동을 억압하여 오던 전통적 윤리관이나 종교 사상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의 욕구충족을 지지하고 화폐경제와 상공업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그런 논의과정에서 그들은 화폐, 물가, 무역 등과 관련된 경제현상에서 법칙성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론화하려고 시도하였다.

. 중농주의. 중농주의는 중상주의의 한 분파였던 프랑스의 콜베르주의Colbertisme에 대한 비판으로 제기된 사상 및 이론체계이다. 18세기 중엽에 케네Quesnay, F.를 중심으로 미라보, 메르시에 드 라 리비에르, 뒤퐁 드 느무르, 보도, 드 트론느 등에 의해 형성된 중농주의는 콜베르의 과도한 산업육성 정책이 빚어낸 농촌의 피폐를 배경으로 탄생한 것이며, 중상주의적 보호주의에 대한 자유주의 사상체계였다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 중농주의자들은 부의 유일한 원천을 농업에서 찾았고 농업을 봉건적·중상주의적 제약과 부담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실천적 과제로 삼았다. 그들은 농업만을 생산적으로 보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나 농업을 중심으로 국민경제 각 부문간의 의존관계를 체계적으로 파악하였다. 특히 국민경제의 구조와 순환을 하나의 표식으로 나타낸 케네의 경제표는 경제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 고전학파.

중상주의에 대한 비판이 영국에서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의 출현과 뒤이은 고전학파 경제학의 성립으로 귀결되었다. 1776년에 발간된 스미스의 <국부론>은 중상주의의 극복이라는 점에서 중농주의와 같지만 후자의 농업주의적 편견을 극복함으로써 근대 자본주의사회의 분석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국부론>은 경제학의 최초의 체계적 연구로서 경제학을 사회과학의 독립된 분야로 독립시키는 전환점을 마련하였으며 리카도, 맬서스, 존 스튜어트 밀에 이르는 후계자들을 통해서 고전학파를 형성하였다.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예정조화론을 믿었던 자유주의 사상가로서 중상주의적 보호정책을 비판하였으며 노동가치론에 의거, 노동생산력에 의한 가치형성을 출발점으로 하여 전체 경제의 구조와 운동을 해명함으로써 중상주의적 한계를 벗어났다. 노동가치론을 중심으로 하는 스미스의 경제학 체계는 19세기 초에 맬서스와 리카도에 의해 각기 다른 이론체계로 분화하였다. 이러한 분화는 산업혁명에 따른 분배문제의 중요성이 증대된 결과였다. 맬서스는 새로이 등장한 노동자의 빈곤을 인구법칙에 의해 그 필연성을 입증하려고 하였으며 농업보호를 위한 보호무역정책을 주장하였다. 한편 리카도는 노동가치론을 발전시킴으로써 자본주의사회의 계급간 특히 지주와 자본가 간의 이해대립을 이론적으로 해명하였으며, 자본주의 발전에 따르는 지대의 증가 또는 이윤의 하락경향을 막기 위해 식량수입을 자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투하노동가치론과 가치분해론에 입각하여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와 순환을 일관성 있게 해명한 리카도의 이론체계는 고전학파의 최고봉을 장식하였다. 그런데 1825년의 공황을 계기로 노동운동이 격화되면서 리카도의 이론체계는 한편으로는 리카도파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자본주의 비판으로 발전하면서 마르크스주의로의 길을 준비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론으로의 세속화의 길을 밟게 되었다. 1848년에 나온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원리>는 형식적으로는 고전학파의 이론을 집대성한 것이지만 그 절충적 성격 때문에 사회적 실효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 역사학파.

자유주의 고전학파에 대한 도전은 19세기 전반기에 후발 자본주의국가로 산업화의 길에 들어선 독일에서 역사학파에 의해 이루어졌다. 영국의 자유주의적 확장정책에 의해 국내공업 성장을 저해받고 있던 당시 독일에서는 보호무역 정책에 의해 국내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초미의 과제였다. 보호무역론자 F. 리스트의 영향하에 형성된 독일 역사학파는 고전학파의 연역적 이론의 보편성을 거부하고 법칙의 역사적 특수성 또는 구체성을 강조하며 그것을 귀납적으로 밝히는 데 특징이 있었다. 따라서 이 학파는 경제이론의 발전에는 별로 기여한 바 없으나 경제사의 연구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브렌타노, 좀바르트 등의 후기 역사학파 학자들과 그 영향하에서 성장한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 발전에 관한 연구는 주목할 만한 경제사의 성과로 남아 있다.

.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과학적 사회주의자인 칼 마르크스에 의해 19세기 중엽에 확립된 경제학 체계이다. 마르크스가 체계적으로 경제학 연구를 시작한 것은 1848년의 혁명이 실패하고 런던으로 망명한 이후이며 경제공황이 프롤레타리아혁명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한다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었다. <정치경제학비판요강>에 실린 그의 원고를 보면 그가 이미 1857~1858년에 경제학의 체계적 저술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구상의 일부가 1859년 봄에 <정치경제학비판Zur Kritik der Politischer Ökonomie>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의 서문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저술구상은 자본, 토지소유, 임금노동, 국가, 외국무역, 세계시장의 순서로 되어 있고, 그 중 자본항목을 상품 화폐 또는 단순유통 자본 일반으로 나누고 있다. 이 중 ① ② 항목이 <정치경제학비판>에 해당되고 나머지 자본 일반<자본론>으로 귀결된다. 자본 일반은 다시 자본의 생산과정, 자본의 유통과정, 양자의 통일이라는 세 부분으로 나뉘도록 되어 있었다. 이 구상에 따라 제1부로서 1867년에 출판된 것이 <자본론Das Kapital> 1부이다. 그런데 이 책을 출판할 때에 그는 위의 제3부 외에 학설사 부분을 제4부로 추가하도록 구상을 바꾸었다. <자본론> 1권 이후의 연구성과는 자신이 출판하지 못하고 원고 형태로 엥겔스에게 남겨졌는데 <자본론> 2부와 제3부가 그의 사망 후 엥겔스에 의해 1885년과 1894년에 각각 출판되었다. 그 제4부에 해당하는 학설사 부분은 1904~1910년 카우츠키에 의해 <잉여가치학설사Theorien über den Mehrwert>라는 표제로 출판되었다. <자본론>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가장 일반적이고 추상적 범주인 상품·화폐의 분석으로부터 출발하여 점차 구체적 범주를 다루어나가는 방식으로 고찰한다. 1부는 직접적 생산과정을 개별적 또는 재생산과정으로 다루고 잉여가치의 생산 및 자본의 생성과정을 밝히고 있다. 2부에서는 생산과정을 현실적으로 매개하는 자본의 유통과정이 그 형태변화와 함께 다루어지고 있다. 3부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자본운동의 구체적 형태인 이윤, 이자, 지대가 잉여가치의 현상형태임을 밝히고 있다. <자본론> 1부 제1편에서는 자본주의사회의 상품세계를 분석하면서 가치법칙을 그 기본법칙으로 확인하였으며, 1부 제2~2부 제3편에서는 가치 및 잉여가치의 법칙을 토대로 자본주의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자본-임금노동 관계의 본질을 밝혀내었다. 그리고 제3부에서는 다시 자본주의사회의 구체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자본의 운동과정, 즉 자본 상호간의 관계 및 자본과 토지소유의 관계를 자본주의적 경쟁의 결과로 형성되는 일반적 이윤율 및 생산가격의 법칙을 기초로 하여 밝히고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내적 관련과 그 경제적 운동법칙을 폭로한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사회의 발전법칙 속에서 그 해체의 필연성을 밝혀냄으로써 그것이 역사적·과도적 형태임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서유럽 산업자본주의 단계의 경험을 토대로 성립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독점단계로 이행함에 따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도 새로운 사회에 대응하여 변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의 교체기의 제국주의화의 경향에 따라 나타난 수정주의와 그것을 극복하려는 제국주의론의 형성이 그것이다. 자본주의 붕괴법칙을 부정하는 각종 수정주의론에 대한 비판은 로자 룩셈부르크, 힐퍼딩, 부하린, 레닌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제국주의 단 계의 특징인 세계시장의 완성이 자본주의의 붕괴과정을 촉진하는 것으로 파악하였으며, 힐퍼딩은 제국주의 단계의 특징을 독점과 금융자본의 집적과정에서 찾으면서 제국주의 단계의 지배적 자본형태인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제국주의 정책을 해명하였다. 한편 부하린은 힐퍼딩의 금유자본론의 성과를 받아들이면서도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라는 관점에서 개인기업의 집적주식회사독점트러스트금융자본국가자본주의의 트러스트라는 도식을 만들어냈다. 자본주의 발전단계를 파악하는 이 도식은 레닌의 제국주의=독점자본주의론의 전개를 가져오는 이론적 매개 고리로서 기여하였다.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특수한 발전단계로 파악하고 그 특징을 독점자본주의 기생적이고 썩어들어가고 있는 자본주의 사멸하고 있는 자본주의 등 세 가지로 요약하였다. 그는 힐퍼딩이나 부하린처럼 자본의 집적과 집중의 관점 또는 사회화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가 중시한 것은 집적·집중의 일반적 경향이 아니라 구체적 사실로서의 독점이었으며 또한 조직자본주의라고 하는 힐퍼딩이나 부하린이 빠졌던 결함을 벗어나고 있다. ‘제국주의=독점자본주의론1930년대의 세계 공황을 겪으면서 다시 국가독점자본주의론으로 확립되었다. 그것은 제 1차세계대전을 전후해서 조성된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의 산물이며 국가의 경제적 기능이 현저히 강화되고 그 성격이 변화한 데 따른 것 이다.

. 한계혁명과 근대 경제학.

1870년대에 서유럽에서 한계효용을 기본 개념으로 하여 형성, 발전된 경제학의 학설들을 통틀어 근대 경제학이라고 한다. 근대 경제학은 1870년대 초에 영국의 제본스Jevons, 오스트리아의 칼 멩거Menger, K., 스위스에 정착한 프랑스인 왈라스Warlas 등이 거의 동시에 한계효용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새로운 경제이론 체계를 형성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교환경제 사회의 합리성의 기초를 개인의 주관적 평가에서 찾았고 경제분석의 초점을 소비 또는 수요에 두었다는 점에서 노동이나 생산비의 개념을 기초로 생산적 관점에서 경제를 분석하는 고전학파나 마르크스 학파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수요에 대한 분석이나 한계효용의 개념은 고전학파의 리카도, 매컬로크, 세이, 베일리Bailey, S., 시니어Senior, N. W. 등에서 이미 싹트고 있었으며 고센Gossen, H. H.은 한계이론의 두 지주인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한계효용 균등의 법칙을 거의 완벽한 형태로 제시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견해는 어디까지나 선구적 역할을 한 데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계효용 이론은 1870년대 초 위의 세 학자에 의해 학계에 널리 알려지고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대 경제학의 성립배경에 관해서는 다양한 설명들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신칸트학파의 철학이나 영국의 실증주의 또는 경험비판적인 철학이 경제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한편 산업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로의 이행에 따른 공황의 빈발이 수요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는 설명이 있는가 하면 노동운동의 격화에 따른 사회적, 실천적 문제에 대한 전면 대결을 회피하려는 태도에서 근대 경제학의 성립을 설명하기도 한다. 근대 경제학의 기초인 한계효용 이론은 모든 사회관계에서 고립된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인간의 경제적 행동을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한계효용 이론가들은 소비자가 일상적 소비재를 구입하는 것이나 생산자가 생산에 필요한 재료나 노동을 구입하는 것이나 똑같은 교환현상으로 파악하며 이때의 교환에서 성립하는 가격을 중심으로 경제를 분석한다. 가격분석에서도 공급보다는 수요의 측면을 보다 중요시하며 공급측면을 분석하는 경우에도 생산과정에 대한 사회구조적 분석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문제의 사회적, 정치적 측면이 사상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방법론상의 특징으로 말미암아 경제학은 특정 사회의 구조적 특징이나 역사적 규정성에 대한 관심을 배제함으로써 비역사적, 몰사회적 성격의 기능적 학문으로 전화하였다. 근대 경제학의 이러한 성격은 정치경제학의 전통을 이어온 고전학파나 마르크스학파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근대 경제학의 발전과 더불어 굳어진 이러한 경향은 경제학을 가능한 몇 개의 목적을 위하여 한정된 수단을 이용하려고 할 때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분석하는 과학”(Robbins, L. C., “An Essay on the Nature and Significance of Economic Science”, 1932)이라고 규정하도록 만들었다. 제본스, 왈라스, 칼 멩거에 의해 동시에 창시된 효용이론 체계는 각기 캠브리지 학파, 로잔느 학파, 오스트리아 학파로 발전하였으며 특히 캠브리지 학파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마샬Marshall, A.은 한계효용 이론을 발전시키고 고전학파 이론의 계승적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종합하고 체계화함으로써 근대 경제학의 튼튼한 기초를 다졌다. 자본주의 위기와 심화, 특히 1930년대 초의 세계공황은 근대 경제학의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생산력의 대규모의 붕괴와 방대한 실업 및 여러 가지 심각한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수반한 세계 공황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고, 경제의 기능적 분석과 균형이론에 안주(安住)하고 있던 근대 경제학에 대한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때의 근대 경제학에 대한 반성은 새로이 관심을 끌게 된 독점과 실업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1929년에 발표된 스라파Sraffa, P.의 논문 경쟁적 조건하의 수확의 법칙The Laws of Returns under Competitive Conditions은 근대 경제학에 독점 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그 문제는 1930년대에 들어와 챔벌린Chamberlain, E., 로빈슨Robinson, J.에 의해 독점적 경쟁monopolistic competition 또는 불완전경쟁impertect competition에 관한 이론으로 전개된다.

. 케인즈 혁명.

1930년대의 공황이 근대 경제학에 미친 보다 중요한 영향은 케인즈 혁명으로 나타났다. 케인즈는 캠브리지 학파의 전통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1930년대의 공황을 경험함으로써 자본주의사회에서의 가격기구에 의한 자동조절 작용에 대한 결정적 회의를 갖고 그 대안으로서 유효수요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의 유효수요 이론은 1936년에 출판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에서 체계화되었다. 그는 유효수요의 부족에 의한 불황과 실업, 즉 불완전고용이 자본주의사회의 일반적 현상이며 완전고용은 특수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세이의 법칙Say’s law’을 신봉하고 일반적 과잉생산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고전학파에 대한 비판으로 제시된 케인즈의 이러한 견해는 가격기구의 자동조절 작용에 대한 불신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소득순환에 착안함으로써 유효수요의 부족에 의한 불황의 가능성을 입증하고, 자본주의사회의 유지를 위해서는 국가의 정책적 개입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가격이론에서 소득이론으로의 전환을 가져온 유효수요 이론과 자유방임 정책을 비판하고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한 수정자본주의 이념은 획기적인 것이며 따라서 그것을 케인즈 혁명이라고 부르고 그의 이론의 등장을 근대 경제학에서 현대 경제학으로의 분수령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현대 경제학.

2차세계대전 종결 이후 오늘날까지 서구의 경제학은 케인즈 이론을 캠브리지 학파의 본래의 신고전파 이론에 결합시킨 이른바 주류경제학에 의해 주도되어왔다. 그것은 정책적으로는 국가에 의한 총량적 수요조절 정책과 자유방임주의 원리에 의거한 시장기능의 활성화를 적절히 배합한 것이다. 또한 보수주의 내부에서는 시카고대학의 프리드만을 중심으로 화폐주의자들monetarists이라고 불리는 그룹에 의해 보다 자유주의적 경향이 분화되어 나옴으로써 대립적 양상을 띠고 발전해오고 있다. 사뮤엘슨 중심의 신고전파와 프리드만 중심의 화폐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어온 현대 경제학은 1960년대 말부터 서구 자본주의국가들에 내습한 인플레이션과 불황 및 소득불평등의 심화, 공해 등 외부 불경제의 누적, 독과점의 강화 등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들이 격화됨으로써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였다. 주류 경제학 쪽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도전에 대처해나가면서도 기존의 이론적 틀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시도해왔다. 이에 반하여 존 로빈슨, 뮈르달, 갈브레이스, 볼딩 등은 시장기구의 기능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경제 성장에 대한 편향을 비판함으로써 주류 경제학에 반기를 들었고, 새로운 이론을 모색해왔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들의 비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계급투쟁이나 사회주의까지도 도입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져왔는데 그것을 흔히 급진파경제학radical economics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 도입된 주류 경제학과 그 실천적 응용인 경제개발 이론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중남미의 종속이론dependency theory이며 한국에서 형성된 민족경제론도 그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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