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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준비위원회 建國準備委員會] ()

건국준비위원회(건준)는 제2차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조선총독부 엔도 정무총감이 여운형에게 정권을 이양함으로써 조직되었다. 여운형과의 교섭 이전에 송진우와의 접촉설이 있으나 송진우가 엔도의 제의를 거부했다고 한다. 일본측이 여운형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지식인 및 학생들에 인기가 있어 해방 이후 일본인의 신변위협을 보장해줄 수 있고, 소련군의 진주시 완충적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여운형은 총독부측과 만났을 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전조선의 정치범, 경제범을 즉시 석방할 것 3개월간의 식량을 보장할 것 자주적인 치안유지와 건국을 위한 정치운동에 대해 간섭하지 않을 것 학생과 청년을 훈련, 조직하는 데 간섭하지 않을 것 노동자, 농민을 건국사업에 동원하는 것에 간섭하지 않을 것. 이 요구들은 즉각 수락되었는데, 이 속에는 단순한 치안유지의 차원을 넘어서 과도적인 건국준비기구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조건으로 건준은 815일 결성되었고 여운형이 위원장, 안재홍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817일에는 제1차 부서결정을 완료하는 동시에 치안의 확보, 건국사업을 위한 민족 총역량의 일원화, 교통·통신·금융 및 식량대책의 강구등이 설립목적이라는 의미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이어 822일에는 중앙기구를 121국으로 개편하였고, 25일에는 선언과 강령을 발표하였다. 강령에서 건준은 완전한 독립국가의 수립을 위한 산파적 역할을 담당하는 과도적 조직체이며 과거 일제와 밀착되었던 반민족세력만을 제외한 각계각층의 정치적·사회적 지도자들을 모두 망라한 국내외 진보적 민주주의 세력의 통일전선임을 주장하였다. 92일에는 개편된 간부명단이 발표되었는데, 좌익 세력의 증대 현상이 드러났다. 비공산주의 계열은 일괄 해임되었으며, 안재홍은 이에 항의하여 부위원장직을 사임하였고 대신 신간회 시절 좌파 지도자였던 허헌이 취임했다. 이렇게 내부에서 좌·우 갈등을 겪던 건준은 96일 임박한 미군 진주에 대응하여 조선인민공화국으로 발전적으로 해소되었다. 해방후 새로운 국가의 건설이 요구되던 상황에서 건준은 민족구성원 전체의 요구에 부응한 조직체였으며, 항일투쟁기의 국내 저항세력의 집결체로서 완전 독립국가건설에 목표를 둔 정부수립 준비기관이었다. 건준은 그 조직과정과 활동내용, 중앙조직 구성원을 볼 때 항일 투쟁기부터 형성되어온 좌·우파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연합세력이었으며, 해체 이후에도 계속 통일전선을 주도한 세력이었다. 건준은 사실상 좌·우 간의 연합을 이루지 못하고 정권수립 과정에서 탈락되고 말았지만, 8.15 직후 반제·반봉건 과제의 실천이라는 해방후 민족운동의 발전방향에 기본적으로 일치하는 정치조직으로서, 한국인에 의한 사실상의 정부기능을 함으로써 서울과 지방의 치안유지에 공헌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은 지방에서의 건준 지부의 성립과 인민위원회로의 통합과정에서 실증되었다. 여운형, 인민위원회, 조선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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