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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농동맹] (laborers and farmers alliance )

레닌 : 모든 부르주아 대혁명에서는 농민과 동맹한 프롤레타리아트(다소나마 발달한)만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는바, 러시아에서의 부르주아혁명의 승리조건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19051907년의 경험은 모든 사건의 하나하나의 대전환에 의하여 그 진리를 실제로 확증하였다. 실제에 있어 단호한 모든 진출전투행동도, 의회에서의 발언도——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공동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할이 부르조아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지도자의 역할이며, 혁명을 끝까지 수행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공동행동이 필요하고, 혁명적인 제계급이 정치권력을 획득함이 없이는 승리란 있을 수 없다는 견지에 확고히 서있다. 이런 진리를 거부할 때, 사회민주주의자는 불가피적으로 동요하고, ‘목표없는 운동으로, 그때그때의 무원칙한 협정에 설득당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혁명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목표, 1909, 레닌전집 제15, PP.365366)

나는 나의 요망 속에서 농민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태도문제를 분석하고자 시도하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이 2개 계급,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밖에 없는 국가가 존재한다. 이 후자는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그들은 물론 대단히 낙후되어 있다. 권력을 자기 손에 장악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농민에 대하여 취할 태도는 혁명발전 과정에서 실제로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첫째 형태는 동맹이다. 긴밀한 동맹이다. 이것은 매우 곤란한 임무지만, 어쨌든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실천적으로 다루었는가? 우리는 농민과 동맹을 맺었다. 우리는 이 동맹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의 착취로부터, 부르주아지의 지도와 영향으로부터 농민을 해방시키고, 협력하여 착취자를 타도하기 위해 농민을 우리 편에 끌어넣는 것이라고.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제3회대회, 1921, 레닌전집 제32, P.517)

 

스탈린 : 혁명이 지주와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빈농을 자기편에 끌어들인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입각하면 할수록, 이 혁명승리는 완전하게 될 것이라는 명제——이것이 우리의 모든 혁명경험에 의하여 확증되었다. (카프카즈로부터의 편지, 1910, 스탈린전집 제2, p.218)

노동계급과 농민간에 약간의 모순이 존재 한다는 것은 물론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모순의 현실성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농산물에 대한 가격정책, 제한가격, 공업제품가격 인하운동 등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었거나 또는 진행되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상기하면 충분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두개의 기본계급, , 노동계급과 사적소유자, 즉 농민계급이 있다. 이로부터 그들 간의 모순의 불가피성이 나온다. 문제는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노동계급과 농민 간에 존재하는 이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자신의 힘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는가 하고 말할 때, 그것은 곧 우리나라의 노동계급과 농민 간에 존재하는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가, 극복할 수 없는가 하고 말하는 것이나 같다. 레닌주의는 이 문제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즉 그렇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노동계급의 영도 하에 농민과 함께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이다.‘ 라고.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근거와 논거는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논거는 노동계급과 농민 간에 모순이 있는 동시에 또한 발전의 근본문제들에 있어서는 공통한 이해관계도 있는데, 이 공통한 이해관계는 이 모순들을 상쇄하고 있고 또 여하간 상쇄할 수 있으며, 그것은 또한 노농동맹의 토대로, 기초로 된다는 데 있다. 이러한 공통한 이해관계란 무엇인가? 그것은 농업 발전의 두 가지 길, 즉 자본주의적 길과 사회주의적 길이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길은 도시와 농촌 부르주아지의 상층부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서 대다수의 농민을 빈궁하게 하면서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 반대로 사회주의적 길은 대다수 농민의 복리를 부단히 증진시키면서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계급도 특히는 농민들도 두 번째 길, 즉 사회주의적 길을 따라 발전하는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길이 농민을 궁핍과 반기아적 생활로부터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경제의 명맥을 자기의 수중에 장악 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두 번째 길, 즉 사회주의적 길이 승리하도록 모든 대책을 취하리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다른 한편, 농민이 이 두 번째 길을 따라 발전하는 데 혈연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자명한 일이다. 이로부터 노동계급과 농민간의 모순을 상쇄하는 그들의 이해관계의 공통성이 나온다. (러시아 공산당볼세비키14차 대표자회의 사업결과에 대하여, 1925, 스탈린선집 제1, 학우서방, 동경, 1966, pp. 472473)

요컨대 첫째로, 노동계급과 농민은 근본 문제에서 이해관계가 서로 일치하며, 인민 경제발전의 사회주의적 길이 승리하는데 대하여 다 같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노동계급과 농민은 동맹할 수 있다. 둘째로, 당면한 문제에서는 노동계급과 농민 간에 이해관계의 모순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동 맹내에서 투쟁이 일어나는 데, 이것은 그 비중으로 보아 이해관계의 공통성에 압도되며, 장차 노동자와 농민이 계급으로서의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고 무계급 사회의 근로자로 될 때에는 반드시 소멸되고 마는 그런 투쟁이다. 세째로, 노동자와 농민의 동맹을 유지하며 강화하는 범위내에서, 즉 두 동맹자 쌍방에 유리하게 노동계급과 농민간의 이 모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있다. 비단 우리는 이와 같은 방법과 수단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그것을 신경제정책과 자본주의의 일시적 안정의 복잡한 정세하에서도 성과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이로부터 우리가 이 전선에서 계급투쟁을 격화시켜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가? 아니다, 나오지 않는다. 그와 반대이다 ! 이로부터 나오는 결론은 이 전선에서는 투쟁을 극력 완화시켜 합의와 상호양보의 방법으로 투쟁을 조절해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그것이 격렬한 형태, 즉 충돌에까지 이르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또 사실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전선에서는 이해관계의 공통성이 이해관계의 모순보다 더 강력하며 더 심원하기 때문이다. (질문과 대답, 1925, 상게서, pp. 532533)

흔히 말하기를, 국제공산당 제2차 대회에서 농민문제에 관한 결의가 채택되었는데 여기에는 정권장악을 위한 투쟁시기에 노동계급의 동맹자로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빈농이며, 중농은 다만 중립시킬 수 있을 뿐 이라고 지적되어 있다고들 한다. 이것이 옳은 말인가? 옳은 말이다. 레닌은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당들을 염두에 두고 이 결의안을 썼다. 그러나 우리 당은 이미 정권을 장악한 당이다. 바로 여기에 차이가 있다. 농민문제에 관하여, 노농동맹 또는 노동자와 개별적 농민층과의 동맹문제에 관하여 레닌주의는 혁명의 세개의 시기에 상응하는 세 가지 기본구호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모두 첫째 구호에서 둘째 구호로, 둘째 구호에서 세째 구호로 넘어가는 것을 옳게 포착하는 데 있다. 이전에 우리가 부르주아 혁명을 수행하고 있을 때에, 우리 볼셰비키들이 처음으로 농민에 대한 자기의 전술을 작성할 때에 레닌이 말한 것은 입헌민주당적 부르주아지를 중립시키고, 황제와 지주들을 반대하는 농민 전체와의 동맹이었다. 당시 우리는 이 구호를 들고 부르주아 혁명을 수행하였고, 그리하여 우리는 승리하였다. 이것은 우리 혁명의 첫 단계였다. 그 후 우리가 둘째단계, 10월 혁명에로 접근하였을 때에 레닌은 새로운 정세에 상응하는 새로운 구호, 즉 중농을 중립시키고, 온갖 부르주아를 반대하는 노동계급과 빈농과의 동맹이라는 구호를 내놓았다. 이것은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공산당들에 있어 필수적인 구호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들이 정권을 쟁취하였다 하더라도 아직 정권을 공고화시키지 못하였을 때에는 중농과의 동맹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중농이란 형세를 살피는 인간이다. 중농은 누가 승리하겠는가를 엿보면서 기다리다가 우리가 지주와 부르주아를 몰아내 고 승리하는 때에야 비로소 우리와 동맹을 맺으려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중농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혁명의 둘째단계에 와서 우리는 벌써 노동자와 농민 전체와의 동맹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노동계급과 빈농과의 동맹이라는 구호를 들고 전진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하였는가? 그 후 우리가 제국주의자들의 공격을 물리치고 정권을 충분히 공고화 한 후, 웅대한 사회주의 건설시기에 들어섰을 때에 레닌은 세째 구호, 즉 노동계급과 빈농의 중농과의 공고한 동맹이라는 구호를 제기하였다. 이 구호는 우리 혁명의 새로운 시기, 즉 웅대한 건설시기에 상응하는 유일 하게 정당한 구호이다. 이 구호가 정당한 것은 지금 우리가 이러한 동맹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회주의를 건설함에 있어서 수백만이 아니라 수 천만 명의 농촌사람들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도 정당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회주의를 전설할 수 없다. 사회주의는 도시만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과 생산도구를 사회화 한데 기초하며 공업과 농업을 통일하는 경제조직이다. 이 두 경제부문이 통일되지 않고서는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 (소련공산당 볼세비키14차 대회에서의 중앙위원회 정치보고, 1925, 상게서, pp.625-627)

우리 당내에는 근로농민대중을 혈연관계가 없는 남으로, 공업의 착취대상으로, 우리공업의 그 어떤 식민지 같은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동지들, 이런 사람들은 위험한 사람들이다. 농민은 노동계급을 위한 그 어떤 착취대상이나 식민지로는 될 수 없다. 공업이 농민경제를 위한 시장으로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농민경제 역시 공업을 위한 시장이다. 그러나 농민은 우리에게서 시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농민은 또한 노동계급의 동맹자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농민경제를 향상시키며, 농민을 대대적으로 협동조합에 망라하여 그들의 물질적 형편을 개선하는 것은 그것 없이는 우리공업의 다소간의 진정한 발전도 보장할 수 없는 그러한 전제조건으로 된다. 반대로 공업발전이나 농기계와 트랙터의 생산 및 농민에 대한 공업제품의 대량적 공급은 농업을 전진시키는 데서 없어서는 안 될 전제조건으로 된다. 여기에 노동계급과 농민이 동맹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기초의 하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금을 지나치게 증가시키며, 공업제품의 가격을 높이는 것 등등으로써 농민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것 을 계속 요구하고 있는 그런 동지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가 그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노동계급과 농민의 동맹을 파괴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노동계급과 농민의 동맹을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노동계급과 농민의 온갖 동맹을 다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노동계급이 지도적 역할을 하는 그런 동맹을 주장한다.왜 그런가? 그것은 노동자와 농민의 동맹체계 내에서 계급의 지도적 역할이 없이는 지주와 자본가에 대한 근로대중과 피착취 대중의 승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련의 경제형편과 당의 정책에 관하여, 1926, 스탈린선집 제2, 학우서방, 동경, 1966, pp. 109~110)

여기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조건하에서의 노농동맹을 단순한 동맹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동맹은 노동계급과 근로농민 대중과의 계급적 동맹의 특수한 형태로서 다음과 같은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노동계급의 진지를 강화하며, 이 동맹 내에서의 노동계급의 영도적 역할을 보장하며, 계급과 계급사회를 폐절하는 것이다. 노농동맹에 대한 다른 모든 견해는 기회주의, 멘셰비키주의, 사회혁명당의 사상이다. 그 밖에 아무렇게 불러도 좋으나 단 마르크스주의만은 아니며, 레닌주의만은 아니다. (알곡전선에서, 1928, 상게서, p.476)

레닌주의는 농민의 기본대중과의 튼튼한 동맹, 중농과의 동맹은 절대로 찬성하나 그러나 온갖 동맹에 다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지도적 역할을 보장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하며 계급들을 페절하는 사업을 용이하게 하는 그러한 중농과의 동맹에 찬성하는 것이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노동계급과 농민간의 협조라는 말은 어떠한 의미로든지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견지에서 볼 때, 협조는 이것이 노동계급의 독재에 대한 지지로 되며, 계급폐절의 목적을 가진 대책의 하나로 되는 때에라야 허용될 수 있으며, 정당하며, 원칙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된다는 것을 도외시한다면 그 때에는 노동계급의 농민과의 협조라는 정식은 물론 소비에트 정권의 모든 적들과 독재의 모든 적들까지도 제멋대로 채용하는 그런 정식으로 남아 있게 된다.’ (전게서, 26, P.387)

그리고 또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지도하고 있다. 그들은 농민을 지도하고 있다. 농민을 지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첫째로, 소생산자들을 위한 노선이 아니라 계급들의 폐절을 위한 노선을 실시함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이 근본적이며 기본적인 노선으로부터 이탈한다면 그때에는 우리는 사회주의자로서의 존재를 끝마칠 것이며, 지금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흉악한 적으로 되어있는 그 소부르주아들의 진영으로,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들의 진영으로 전락할 것이다. (같은 책, pp. 399~400)

이것이 기본 농민 대중과의 동맹, 중농과의 동맹 문제에 관한 레닌의 견해이다. (소련공산당볼세비키내의 우경에 대하여, 1929, 같은 책, P.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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