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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멸] ()

마르크스 : 조세를 폐지한다는 것의 배후에는 국가를 폐지한다는 조치가 감추어져 있다. 공산주의자에게 있어 국가의 폐지는 단 한 가지 뜻, 즉 계급을 폐지하는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계급이 폐지되면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조직적 권력의 필요성도 스스로 없어지게 된다. 부르주아적 여러 나라에서 국가의 폐지란 국가권력을 북미합중국 수준으로까지 격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계급대립의 발달이 아직 불완전하다. 계급적 충돌은 언제든지 프롤레타리아적 과잉인구를 서부지역으로 이주시키는 수단으로 속여 왔다. 국가권력의 간섭은 동부지역에서는 최소한도로 제한되고, 서부지역에는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다. 봉건적인 여러 나라에서 국가의 폐지란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일반적인 부르주아국가를 건설함을 의미한다. 독일에서 국가의 폐지라는 배후에는 눈앞의 직접적인 투쟁으로부터 비겁하게도 도피하는 일이든가, 부르주아적인 자유를 과장하여 개개인의 절대적인 자주독립으로까지 육성한다는 일이든가, 아니면 또 부르주아 이익의 신장이 방해받지 않는 한 부르주아가 어떤 국가형태에 대해서도 무관심 하다는 것, 그중 어느 한 가지가 감추어져 있다. (서평 사회주의와 조세, 1850, M•E선집 제6권, p.32).

마르크스・엥겔스 : 발전이 거듭됨 따라서 계급적 차별이 소멸되고 모든 생산이 결합된 개인의 수중에 집중된다면 공적 권력은 정치적 성격을 상실한다. 원래의 의미에서의 정치권력은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특정 계급이 조직한 폭력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에 대한 투쟁에서 필연적으로 하나의 계급에 집결하여 혁명을 통하여 스스로 지배계급이 되며, 그리고 지배계급으로서 낡은 생산관계를 폭력적으로 폐지한다면, 이런 생산관계의 폐지와 더불어 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대립의 존립조건을, 계급 그 자체를, 이어서 또 계급으로서의 자기의 지배권까지도 폐지한다. 계급과 계급대립이 있던 낡은 부르주아 사회에 대체되어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조건이 되는 그런 공동사회가 출현한다. (공산당선언, 1848, M•E 선집 제2권, p.516).

엥겔스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대다수 인구를 점점 더 프롤레타리아로 전화시키는 동시에 자기가 파멸되지 않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간에 이 변혁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는 세력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사회화된 대규모적인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점점 더 추진케하는 동시에 이 변혁을 수행하는 길을 스스로 제시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그리고 우선 생산 수단을 국가소유로 전화시킨다. 그러나 이로써 프롤레타리아트는 프롤레타리아트로서의 자기자신을 지양하고, 이와 함께 일체의 계급차별과 계급대립을 지양하며, 또 이와 더불어 국가로서의 국가를 지양한다. 계급대립 속에서 꿈틀거리던 지금까지의 사회는 국가를 필요로 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때그때의 착취계급이 자기들의 외적인 생산 제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조직, 따라서 현존하는 생산양식에 의해 특히 주어진 억압조건 (노예제・농노제・임금노동제) 속에 피착취 계급을 억지로 압박하기 위한 조직을 필요로 하였다. 국가는 사회전체의 공적인 대표자이며, 눈에 보이는 하나의 단체가 사회전체를 총괄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이렇게 된 것은, 다만 그것이 각 시대에 스스로가 전 사회를 대표한 계급의 국가였던 그런 한계 내 에서만 그러했다. 즉, 고대에는 노예소유시민의, 중세에는 봉건귀족의 국가였고, 현대는 부르주아지의 국가이다. 그것은 결국 사실상 전사회의 대표자가 됨으로써 자기자신을 불요한 것으로 만든다. 억압하여야 할 사회계급이 아주 없었지자 마자 계급지배와 더불어 지금까지 생산의 무정부상태에 근거 하던 개인적 투쟁과 더불어, 이런데서 일어나는 충돌과 교란 또한 제거되자마자 특수한 억압기구인 국가권력을 가지고 억압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존재 하지 않게 된다. 국가가 실제로 전사회의 대표자로서 등장하는 최초의 행위——사회 이름으로 생산수단을 장악하는 것——그것은 동시에 국가가 국가로서 행사하는 자주적인 마지 막 행위이기도 하다. 사회적 제 관계에 대한 국가권력의 간섭은 일정한 영역마다에서 점차 불필요한 것이 되고 끝내는 저 혼자 잠들어 버린다. 사람들에 대한 통치에 대신하여 사물의 관리와 생산과정의 지도가 나타난다. 국가는 ‘폐지된다’가 아니다. 그것은 사멸되는 것이다. (반듀링론, M・E전집 제20권, 대월서점, 동경, 1976, PP. 289〜290).
국가는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국가가 없어도 잘 해나갔던 사회, 일 찌기 국가와 국가권력은 예상조차 못했던 사회가 존재했다. 사회의 계급분열과 필연적으로 결부된 경제발전의 일정한 단계에서 이 분열로 말미암아 국가는 하나의 필연지사(必然之事)로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빠른 보조로 이들 제 계급의 존재가 필연적이던 것을 그만둘 뿐 만 아니라 오히려 생산의 적극적인 장해요소로 되는 생산의 한 발전단계에 이르렀다. 계급의 발생이 불가피했던 것과 똑같이 그의 소멸도 불가피적일 것이다. 계급과 더불어 국가도 불가피적으로 소멸한다. 생산자의 자유평등한 결합을 기초로 생산을 새롭게 할 사회는 국가기구 전체를, 그것이 그때에 들어가야 할 제자리에 놓일 것이다. 즉, 물레나 청동도끼와 함께 박물관으로 (가족•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 1884, M・E선집 제13권, p. 478).

레닌 : 현대의 사회주의당들의 사회주의 사상은 사상적으로 비상하게 풍부한 이 엥겔스의 논의 중에서 오직, 무정부주의의 학설에 의하면, 국가는 ‘폐지’ 된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달리 마르크스에 의하면 국가는 ‘조락한다’는 그 점만을 실지 자기의 것으로 하였다는 것을 거침없이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를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잘라 놓는 것은, 그것을 기회추의로 끌고가는 것을 의미한다. 왜 그러냐하면 이러한 ‘해석’에서는 비약과 폭풍이 없는, 즉 혁명이 없는 오직 완만하고 평탄하고 점차적인 변화가 있을 뿐이라는 몽롱한 관념밖에 남지 않는 까닭이다. 세상 일반에 널리 유포된 형태로, 대중적으로一만일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一이해된 국가의 ‘조락은 의심할바 없이 혁명을 모호하게 만드는一거부한다고 까지는 말할 수 없다 하더라도一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해석’은 오직 부르주아지에게만 유리한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난폭한 왜곡으로서, 이 왜곡은 이론적으로는 우리가 그 전문을 인용한 엥겔스의 ‘총괄적’논의만 가지고서도 엿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정과 논거를 망각해 버렸다는 데 근거하고 있다……. 엥겔스는 이 논의의 서두에서, 국가권력을 장악하고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렇게 함으로써 국가로서의 국가를 청산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이 무엇을 말하는가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보통 이 말은 전혀 무시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마치 엥겔스의 그 어떤 ‘헤겔주의적 약점’ 비슷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이 말 속에는 프롤레타리아의 최대의 혁명중의 하나인 1871년의 파리 코뮨의 경험이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이 경험에 대해서는 해당한 장소에서 상세하게 언급하려 한다. 사실에 있어서 엥겔스가 여기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한 부르주아 국가의 ‘청산’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 조락이라는 말은 사회주의 혁명 이후의 프롤레타리아적 국가 조직의 잔재에 관련되는 것이다. 앵겔스에 의하면 부르주아 국가는 ‘조락’되는 것이 아니라 혁명 가운데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하여 ‘청산’된다. 이 혁명 후에 조락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국가 또는 반국가이다. (국가와 혁명, 1919, 혁명에 관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 및 전술에 대하여, 학우서방, 동경, 1966, PP. 123〜124).
일반적인 국가론에서, 엥겔스가 여기서 경고하고 있던 과오,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의 설명에서 주의를 환기시켜 온 잘못이 끊임없이 범해지고 있다. 즉, 국가의 폐지는 동시에 또한 민주주의 폐지이며, 국가의 사멸은 민주주의의 사멸이라는 것이 언제나 잊혀지고 있다. 얼핏 보기에 이런 주장은 매우 교묘하여 불가해(不可解)의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어떤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괘념(掛念)조차 생길 것이다. 즉, 우리는 다수자에게 소수자가 복종한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그런 사회제도가 오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민주주의란 이 원칙의 승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민주주의는 다수자에 대한 소수자의 복종과 같은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자에 대한 소수자의 복종을 인정하는 국가, 즉 어떤 계급에 대해 국민의 일부가 다른 일부 주민에 대하여 계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조직이다. 우리는 국가의 폐지, 즉 조직된 계통적인 모든 폭력의 폐지, 일반적으로 인간에 대한 모든 폭력의 폐지를 종국적 목표로 한다. 우리는 다수자에게 소수자가 복종 한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그런 사회질서의 도래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사회주의가 공산주의에로 성장 전화하는 것, 또 이에 수반하여 인간에 대한 폭력 일반의, 어떤 인간의 다른 인간에 대한 복종의, 일부 주민의 다른 일부 주민에 대한 복종의 필요성이 모두 소멸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폭력없이, 복종함이 없이도 사회생활의 근본적인 제조건을 지키는데 습관화되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혁명 1919, 레닌전집 제25권, pp. 492〜493).
마르크스는 이렇게 계속하고 있다…… ‘공산주의 사회라는 높은 단계에서는 개인이 분업에 노예적으로 종속됨이 없어지며 그와 동시에 또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소멸된 후 노동이 생존하기 위한 수단일 뿐 만 아니라 노동자체가 첫째가는 생활욕구로 된 다음에, 개인의 전면적인 발전에 수반되어 생산력도 증대하고 모든 협동적부의 원천이 한층 더 풍부하게 용솟아 오르게 된다. 다음에------그때야 비로소 부르주아지 권리의 좁은 한계를 완전히 뛰어 넘을 수 있다. 사회는 그때에 그의 깃발에 이렇게 쓸 수가 있다 —— ‘각자는 그의 능력에 따라서, 각자에게는 그의 욕망에 따라서 ! ’
이제 비로소 우리는 ‘자유’라는 말과 ‘국가’라는 말을 서로 결합시키는 것이 우둔한 것임을 용서없이 비웃은 엥겔스의 비평이 전적으로 옳았음을 평가할 수 있다. 국가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자유란 없다. 자유가 있을 때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국가가 완전히 사멸하는 경제적 기초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없어지는 만큼, 따라서 현대의 사회적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원천의 하나로서, 더우기 생산수단을 공유재산으로 전환시키는 것만으로는, 자본가를 수탈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단번에 제거할 수 없는 원천이 없어지는 만큼 공산주의가 고도의 발전을 성취할 수 있다. 이 수탈은 생산력의 거대한 발전 가능성을 부여할 것 이다. 그리고 지금도 자본주의가 이런 발전을 믿지 않을 정도로 이미 저지시키고 있다는 것, 또 이미 달성된 현대기술을 기초로 하여 대폭적인 전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자본가의 수탈이 인류사회 생산력의 확신을 가지고 단언해도 좋다. 그러나 이런 발전이 어떻게 급속히 진척될 것인가, 이런 발전이 어떻게 급속히 분업과 손을 끊 고 정신노동과 육체노동과의 대립을 폐지시켜 노동을 ‘첫째가는 생활욕구’로 전환시키게 되는가를 우리는 알지 못하고, 또 알 수 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우리는 국가가 불가피적으로 사멸한다는 것으로 해두고 이 과정이 장기간에 걸친다는 것, 그것이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로의 발전속도에 걸려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국가의 사멸기일과 사멸하는 구체적인 형태에 관한 문제를 전연 미해결 그대로 남겨두어도 무방하다고 생각 한다. 왜냐하면 그런 문제를 해결할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각자는 그의 능력에 따라서, 각자에게는 그의 욕망에 따라서 !’ 라는 준칙을 실현했을 때, 즉 인간이 능력에 따라서 자발적으로 노동할수록 공동생활의 기본적인 규칙을 지키는 습관을 충분히 가지게 되고 그들의 노동이 그만큼 생산적인 것으로 될 때 국가는 완전히 사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반시간이라도 여분으로 일하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보다 적은 월급을 받지 않게끔 샤일록 (Shylock)식의 냉혹성으로 인간에게 주판알을 튕기게 하는 ‘부르조 아적 권리의 좁은 한계’——이 좁은 한계를 이때에는 초월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생산물을 분배함에 있어서도 각자가 받는 생산물의 양을 사회가 규제할 필요성이 없어지게 되고 ‘그의 욕망에 따라서’ 자유로이 취하게 될 것 이 다. (동상, pp. 506〜507).

스탈린 : 우리는 국가의 사멸을 주장한다. 더우기 우리는 그와 함께 오늘날 까지 존재해온 모든 국가권력 중에서도 가장 강력 한, 가장 강대 한 권력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강화를 주장한다. 국가권력 사멸을 위한 조건을 준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
는 국가권력의 가장 고도한 발전------이것이 마르크스주의적 정식이다. 이것은 ‘모순되는가’ 그렇다, ‘모순되어 있다’. 그러나 이 모순은 살아있는 모순이요, 마르크스의 변증법을 완전히 반영하는 모순이다. ( 소련공산 당〈볼셰비키〉제16회 대회에 대한 중앙위원회의 정치보고, 1930, 스탈린전집 제12권, p.391).
어떤 동지들은 계급의 폐절, 무계급 사회의 건설 및 국가조락에 대한 테제를 건달과 안일을 위한 변명 꺼리로, 계급투쟁이 소멸되며 국가 권력이 약화된다는 반혁명적 이론을 위한 변명꺼리로 이해하였다. 이와같은 사람들이 우리당과 아무러한 공통성도 없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변절자 이거나 혹은 당으로부터 쫓아내야 할 양면 주의자들이다. 계급의 폐절은 계급투쟁의 소멸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투쟁의 강화로써 달성되는 것이다. 국가의 조락은 국가권력을 약화시켜서가 아니라 사멸하여 가는 계급들의 잔재를 박멸하며, 아직 청산될 날이 멀었으며 또 속한 시일 내로는 청산되지 않을 자본주의적 포위를 반대하여 국방 을 조직하는데 필요한 국가권력을 최대한으로 강화함으로써 이루어 질 것이다. (제1차 5개년 계획의 총화, 1933, 스탈린선집 제3권, 학우서방, 동경, 1966, p.81).
때때로 다음과 같이 묻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착취 계급이 청산되었고 국내에 적대계급이 더는 없으며 진압해야 할 사람들이 없다. 따라서 국가가 더는 필요하지 않으며 그것은 없어져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우리의 사회주의 국가가 조락 되도록 힘쓰지 않는가, 어째서 우리는 그것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가, 국가제도의 이 폐물을 전부 집어던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혹은 이렇게도 묻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착취계급이 이미 청산되었고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건설되었으며 우리는 공산주의에로 나아가고 있다. 국가에 관한 마르크스주의 학설은 공산주의에 가서는 어떠한 국가도 없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우리의 사회주의 국가가 조락하도록 힘쓰지 않는가? 국가를 고대 박물관에 넘겨 줄 때가 오지 않았는가’ 이러한 질문은 그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국가에 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학설에 있는 일부 명제를 정직하게 암송하였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또한 이 동무들이 그 학설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 학설의 일부명제가 어떠한 역사적 조건에서 나왔는가를 연구하지 못하였으며, 그리고 특히 오늘의 국제적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자본주의가 포위하고 있고, 이로부터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위험이 생겨 나온다는 사실을 간과하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질문은 자본주의가 포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소평가 하고 있다는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이 질문은 또한 간첩•살인자•해독분자를 우리나라에 파견하며, 또 우리나라를 군사적으로 침공할 좋은 기회를 얻으려고 애쓰고 있는 부르주아 국가와 그 기관들의 역할과 의의를 과소평가하고, 외부의 침공으로부터 사회주의 나라를 수호하는데 필요한 우리 사회주의 국가와 그 군사기관, 징벌기관 및 정탐기관의 역할과 의의를 과소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과소평가한 죄는 위에서 질문한 동무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죄는 어느정도 우리 모두에게, 예외 없이 모든 볼셰비키들에게 다 있다. (제18차 당대회에서 한 전연맹공산당〈볼셰비키〉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 1939, 동상서,pp. 350~351).
이로부터 사회주의 국가 일반의 운명에 대한 엥겔스의 일반적 정의를 사회주의가 개별적인 한 나라에서 승리한 특수하고도 구체적인 경우에 확장시켜서는 안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나라는 그 주위를 자본주의가 포위하고 있어 외부로부터 군사적 침공을 당할 위험이 있으므로 이 나라는 국제적 환경과 분리될 수 없으며, 이 나라는 외부의 침공으로부터 사회주의의 전취물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잘 훈련된 군대와 잘 조직된 징벌기관과 강력한 정탐 기관을 자기 관할 하에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며 아주 강력한 자기의 국가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동상,pp. 364〜365).
공산주의 시대에 가서도 역시 우리에게 국가가 보존되겠는가? 그렇다, 만일 자본주의가 계속 포위하고 있으며, 외부로부터의 군사적 침공의 위험이 계속 존재한다면 물론 국가는 보존될 것이다. 그런데 국내외 정세가 변화함에 따라 우리 국가의 형태도 다시 변화하리라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만약 자본주의적 포위가 없어지고 사회주의가 포위하게 되면 물론 국가는 보존되지 않고 조락 될 것이다. (동상, pp. 368〜369).
엥겔스는 자기의 반듀링론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한 후 국가는 사멸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에 기초하여 우리 당내의 염불장이들과 독경주의자들은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한 이후 당이 우리 국가의 조숙한 사멸과 국가기관의 해체 및 상비군의 폐기에 대한 대책을 취하도록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소련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현재의 세계정세를 연구한데 기초하여 사회주의 혁명이 오직 한 나라에서만 승리하고 다른-모든 나라들에서는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그러한 자본주의적 포위 하에서, 혁명에서 승리한 나라가 자본주의적 포위에 의하여 괴멸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자기의 국가, 국가기관, 정보기관, 군대를 약화시킬 것이 아니라 백방으로 강화하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엥겔스의 정의가 모든 나라 또는 대다수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 승리를 염두에 둔 것이므로 사회주의가 개별적인 한 나라에서 승리하고 다른 모든 나라들에 서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그러한 경우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아 홀로포프 동지에게, 1950, 동상서, p. 443).

흐르시초프 :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공산주의 하에서 국가가 사멸하고 사회관리기능이 그의 정치적 성격을 잃음으로써 사회 행정업무는 직접적인 인민관리로 바뀐다고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나 국가기관의 사멸과정을 가을철에 나뭇잎이 떨어지고 그 뒤에 벌거벗은 가지만이 남는 식의 그런 과정을 밟는 것처럼 간단하계 생각해서는 안된다. 국가의 사멸문제를 변증법적으로 이해하면, 그것은 사회주의 국가가 공산주의적인 사회적 자치제로 발전해가는 문제이다. 공산주의 하에서도 오늘날의 국가기능과 유사한 몇 가지의 사회적 기능이 계속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능의 성격과 실현방법은 현재 발전단계에 있는 그것과는 다른 것이 될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발전의 주된 방향은 민주주의를 전국적으로 전개하여 나라의 모든 행정관리에 가장 광범한 주민층을 끌어들이고, 경제건설과 문화건설지도에 모든 시민을 참가시키는 것이다. 국가기관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기능이 점차 사회단체의 관할로 이관되어야한다는 것은 오늘날 이미 명백해졌다……국가기관의 몇 가지 기능을 사회단체에 이관한다는 일은 서둘지 말고 실행함이 필요하다. 어떤 조건 하에서는 결정적으로 이관시켜야 하며, 다른 조건 하에서는 사람들 자신에게 질서를 감시하는 습관을 붙이게 하기 위하여 초기에는 다만 최초의 시험적인 조치를 취하는데서 멈추어야 한다.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개개기능을 국가기관에서 사회단체로 이관한다는 것은 공산주의 건설에서의 사회주의 국가의 역할을 결코 악화시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재 국가가 수행하고 있는 일련의 기능을 사회단체가 수행한다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의 정치적 기초를 확대•강화하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가일층의 발전을 보장할 것이다.……소비에트 국가는 장차 우리 제도의 물질적 기초를 이루는 경제발전에 좀 더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평화옹호분야; 제국주의 열강의 군사적 공격위협에 대한 방위분야에서의 사회주의 국가의 임무는 특히 중요하고 또 명확하다.……국가의 사멸은 공산주의가 완전히 승리한 다음에 이루어 ‘진다고 레닌주의는 가르치고 있다. 현재의 여러가지 조건 하에서 사회주의 국가를 약화시킨다는 것은 적을 돕는 일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제국주의자들이 이제 우리를 분쇄할 수 없다면, 수정주의자들은 우리가 스스로 무장해제하여 조국방위를 보장하는 제국가기관을 폐지하고, 이리하여 우리의 적에게 항복하라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본질은 바로 이렇다. 지금 국가에 의하여 수행되고 있는 사회주의 조국방위기능은, 우리 조국과 우리의 동맹국에 대한 제국주의자의 공격위험이 완전히 없어졌을 때 비로소 사멸할 수 있게 된다.(1959~65년 소련 인민경제발전 목표숫자에 대하여,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전교육부 편, 소련 공산당 제21회 대회 제1분책, P.142).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 동맹 강령 : 사회주의 국가는 특수형의 국가, 사멸하고 있는 국가이며, 또 그러해야만 한다. 국가의 이런 사회적 역할과 조직은 그러한 역할을 담당 하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의지로부터 가능한한 독립적으로, 사회주의의 경제 강화와 더불어, 또 사회주의 관계의 수립에 수반하여, 이 과정이 전개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사회주의 발전의 이러한 모순은 점진적인 진화방법에 의하여 育和시킬 수 있고,또 유화 시켜야만 하는데,그런 것들이 유화(宥和)되는 유기적 형태는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민주주의와 사회적 자치제를 발전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 ……국가가 사멸하는 과정은 지도적인 사회주의 세력의 주관적인 의지만에 걸쳐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주의적 관계가 발생•발전•성숙한 것, 그리고 일 적으로 사회주의의 사회경제세력이 성장한 것의 유기적인 결과로서, 과도기의 허다한 곤란이 사회주의적으로 해결된 것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다.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 1958, P. 109〜101).

철학사전(북한) : 레닌은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에 가서 국가의 조락과정이 점차적으로 진행된다고 하면서 부르주아 국가는 파괴 분쇄되는 반면에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는 조락된다고 말하였다. 레닌에 의하면 국가가 조락하게 되기 위해서는 ‘계급들이 이미 없고 따라서 억압할 어떠한 계급도’ 없어져야 할뿐만 아니라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해야 하며 사람들이 공동생활의 준칙을 자각적으로 지키는 데 습관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조건들이 이루어지기 전에 미리부터 국가의 조락을 선포하는 것은 역사적 발전법칙에 대한 위반으로 되며 결국 혁명에 대한 배신행위로 된다. 레닌은 여가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조락조건을 주로 한 나라 내부의 범위에 국한시켜 보았다. 레닌의 저서 국가와 혁명은 자본주의가 상승기에 있던 구라파의 역사적 조건에서 국가 이론을 전개한 마르크스와는 달리 자본주의 최고단계인 제국주의 시기에 덜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인 러시아 혁명의 역사적 경험에 토대하여 마르크스주의 국가이론을 옹호하고 발전시킨 노작이다. 따라서 레닌의 이 노작은 자본주의 나라에서 부르주아지를 때려부시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세우기 위한 노동계급의 혁명투쟁에서 강유력한 이론 실천적 무기로 되었다. (북한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편, 철학사전, 〈국가와 혁명〉항, 사회과학출판사, 평양, 1970, p.44) (북한은 소위 국가의 사멸에 관한 이론을 터부시하여 자기들의 백과사전을 비롯하여 어떠한 사전류에도 이것을 취급하지 않고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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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노동자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 만들기 모임
120-702 서울시 중구 정동 22-2 경향신문 별관 202호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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