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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발생과 그의 역사성] ()

엥겔스 : 이와 같이 우리는 영웅시대 그리스의 제도에서 낡은 씨족질서가 아직 활기찬 힘을 가지고 있던 것을 본다. 즉, 자식에의 재산상속을 수반하는 부권제, 이로 말미암아 가족 내에서 재산집적이 합리화 되어 가족이 씨족에게 대립하는 하나의 세력으로 되었다. 그것은 세습적 귀족과 왕제(王弟)로의 최초 출발점을 매개로 제도에 대한 부의 차이성의 반작용임을 보았다. 노예제, 그것은 처음에는 포로에게만 적용되었지만 자기의 부족원 또는 씨족원 조차 노예화할 가능성이 이미 열려지고 있었다. 종전의 부족과 부족간의 전쟁이 이미 가축•노예•재산을 획득하기 위한 육해에서의 조직적인 약탈행위, 즉 본격적인 수익자금으로 변질하고 있음을 보았다. 요컨대 부가 최고의 선으로 찬미 숭배되고, 고래의 씨족질서가 부의 폭력적 약탈을 정 당화하기 위하여 악용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바로 한 가지만은 결여되어 있었다. 즉, 개인간에 획득한 부를 씨족질서의 공산주의적 전통에 대해서 확보했을 뿐만 아 니라 또한 종전에는 경시해온 사유재산을 신성화하고 또 이 신성화를 전체 인간사회의 최고목적으로 선언하는 동시에 연속적으로 발전하는 재산획득의 새 형태, 따라서 언제나 가속도적으로 전진하는 부의 증가의 새로운 형태에 일반적•사회적인 승인의 각인을 준비한 하나의 제도가 결여되어 있었다. 이미 발생하고 있던 사회의 계급분열을 영구화 했을 뿐만 아니라 비소유계급에 대한 소유계급 의 착취권리, 전자에 대한 후자의 지배를 영구화한 하나의 제도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이 제도가 출현하였다. 즉, 국가가 탄생된 것이다. (가족•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 1891, M•E전집 제21권, PP. 109〜110).
이미 본바와 같이 국가의 본질적인 특징은 인민대중으로부터 차별된 공적 권력이다. 아테네는 당시 겨우 일단의 국민군과 직접 시민에 의해 설치된 함대를 가진데 불과하였다. 이것들이 외적을 방위했고, 또 당시 이미 인구에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노예를 통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시민에 대한 공적 권력으로서는 한동안 경찰만이 존재했다. 경찰은 국가의 발생과 동시에 탄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18세기의 소박한 프랑스인들은 이 그리스인들을 문명화한 국민이라고 하지 않고 경찰화한 국민(nations polices) 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아테네인은 그 국가 형성과 더불어 경찰도 창설한 것이다. 그것은 도보 및 기마 사수들로 편성된 참된 헌병대——남부독일 및 스위스에서 말하는 lamljager〔헌병 이라는 뜻〕——였다. 그러나 이 헌병대 성원은——노예였다. 이런 경찰근무는 자유로운 아테네인에게는 몹시 천한 것으로 생각되었으므로 이런 추악한 직업에 종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무장노예에 붙잡히는 것을 기뻐했을 정도였다. 그것은 아직 씨족기질이었다. 국가가 경찰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일천하여 전통이 없었고 도덕적 존경을 받지 못했으므로 낡은 씨족원들에게는 아무래도 불명예스러운 일로 생각된 이런 업무를 존경 받을 가치 있는 것으로서는 만들 수 없었다. 아테네인이 성립시킨 국가는 특히 국가형성 일반의 전형적인 모범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면에서는, 아주 순수하게, 외적 내지 내적 강력한 개입없이 이루어졌으며 一페이 시스트라토스(Peisistratos, BC 600C-527)의 찬탈은 그의 짧은 지배기간의 증적(証跡)을 전연 남기지 못했다 ——, 다른 면에서는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형태상 대단히 높은 수준으로 발달한 국가, 씨족사회에서 직접 출현 시켰고, 끝으로 그의 본질적 인 세목(細目)이 모두 우리들에게 충분히 알려졌기 때문이다. (동상, PP. 119 121).
씨족제도의 폐허위에 출현한 국가의 세가지의 주요형태를 우리는 이상에서 개별적으로 고찰하였다. 가장 순수한 고전적 형태를 표현한 것은 아테네다. 여기서 국가가 직접 발생하게된 주원인은 씨족사회 그 자체 내부에서 발달한 계급대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씨족사회에서는 그의 외부에 있는, 권리는 없지만 무수한 의무를 부과당한 평민들 속에서 하나의 폐쇄적인 귀족제도가 생겨났다. 평민의 승리는 낡은 혈족제도를 파괴하고 그 폐허 위에 국가를 수립케 했다. 그리고 씨족적인 귀족과 평민은 둘 다 그 속에 아주 용해되어 버렸다. 끝으로 로마제국의 정복자인 독일인들의 국가를 보면, 그것은 외국의 광대한 영토를 정복한데서 직접 발생한 것이었다. 외국영토를 지배하려는데 씨족제도가 아무런 수단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정복은 원주민과의 진지한 투쟁과, 그리고 보다 발달된 분업과도 결합되지 않았고, 또한 피정복자와 정복자와의 경제적 발전단계가 거의 같았고, 따라서 사회의 경제적 기초가 원래 그대로 였으므로 씨족제도는 수 세기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마르크 공동체로 변화한 국지적인 형태로 존속했고, 후세의 귀족적인 혈족 (Geschlecht) 및 파트리키 (Pat- Hcli) 혈족이 되어서도, 아니 디트마르센 지방에서 처럼 농민혈족이 돠어서 조차 약화된 형태에서 얼마동안은 젊음을 되찾았던 것이다. (동상, P. 168〜169).
최고의 국가형태인 민주주의공화국은 우리의 근대사회관계 속에서 점점 더 피할 수 없는 필연지사로 되었고, 프롤레타리아트 및 부르주아지만의 최후결전에서 싸워 이긴 국가형태로 되는 것이다——이 민주주의 공화국은 공식적으로는 이미 재산상의 차별을 전혀 문제로 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부가 그의 권력을 간접적으로,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한층 더 확실하게 그것을 행사한다. 한편으로는 관리의 직접적인 매수형태로서이다. 이의 전형적인 본보기는 미국이다. 다른 한편 으로는 정부와 증권 거래소와의 동맹형태에 서이다. 이것은 국채발행액이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또 주식회사가 운수분야 뿐만 아니라 생산 그것까지도 자기수중에 집중시키면 시킬수록, 그리고 또 주식회사가 증권거래소에서 자기의 중심을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그만큼 쉽게 실현된다. 미국 이외에서는 최근의 프랑스 공화국이 이의 좋은 예이고 정직한 스위스도 이 분야에서는 그의 맡은바 임무를 수행하였다. ……요컨대 국가는 머나 먼 옛날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 없이도 되었으며, 국가와 국가권력에 관한 개념이 없었던 사회가 있었다. 계급으로의 사회적 분열과 필연적으로 연결된 경제적 발전의 일정한 단계에서 국가는 이 분열로 말미암아 필연적인 것으로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계급의 존재가 필연적이 아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산의 직접적인 장애물이 되는 그러한 생산발전 단계에 급속한 보조로 접근하고 있다. 계급의 소멸은 과거에 그 발생이 불가피하였던 것처럼 불가피하다. 계급의 소멸과 함께 국가도 불가피적으로 소멸할 것이다. 생산자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연합에 기초하여 생산을 새로이 조직하는 사회는 전체 국가기구를 그때에 그것이 응당 가있어야 할 곳으로 보낼 것이다. 즉, 물레 와 청동도끼와 함께 고대 박물관으로 (동상, PP. 168 169)

레닌 : 국가 —— 그것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기구이다. 사회에 계급이 없었을 때, 즉 커다란 평등이 유지된 노예시대 이전의 원시적인 조건 하에, 아직 극히 생산성이 낮았던 제 조건 하에서 사람들이 일했을 무렵에, 원시인들이 가장 메무수수한 원시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겨우 획득하던 무렵, 그 무렵에는 나머지 분야의 사회전체를 통치하고 지배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분리된 특수한 인간집단은 발생하지 않았고, 또 발생할 턱이 없었다. 제 계급에로의 사회분열의 최초 형태가 출현했을 때, 즉 노예제가 출현했을 때, 어떤 인간계급이 가장 난폭하고 유치한 형태의 농경노동에 주로 종사하면서 얼마간의 잉여생산물을 내게 되었을 때, 이 잉여물이 노예의 더 할 나위없이 비참한 생활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노예소유자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여기에 노예소유자라는 계급의 존재가 정착했을 때, 그때에야 비로소 이 계급의 존재를 굳히기 위해 국가의 출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국가가 출현 —— 노예소유주의 국가가—했는데 그것은 노예소유주의 손에 권력을 주어 모든 노예를 통치할 가능성을 부여한 기구로 되었다. 당시에는 사회도 국가도 오늘날보다는 작았고, 그가 자유로이 할 수 있는 교통기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빈약한 것이었다. —— 그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통신수단이 없었다. 산, 강, 바다는 오늘날에 비하여 믿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장해물로 되었고 국가의 형성은 훨씬 좁은 지리적 환경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졌다. 기술적으로 취약한 국가기구가 비교적 짧은 경계선과 좁은 활동범위를 가지고 국가에 봉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국가는 역시 노예를 강제하는 노예제도 하에 속박됐고, 사회의 일부분을 다른 부분의 강제와 억압하에 멈추어 두게 하는 기구였다. 사회의 대부분을 강제하여 다른 부분을 위해 계통적으로 노동케 한다는 것은 항재적인 강제기구 없이는 불가능하다. 계급이 없는 동안에는 이런 기구도 없었다. 계급이 출현 했을 때ᅵ, 언제 어디서나 이런 분열이 발전하고 강화됨에 따라 특수한 시설—— 국가가 출현한 것이다. 국가형태는 다종다양했다. 이미 노예제시대에도 그 당시로서는 가장 선진적•문화적•문명적이던 나라들, 예컨대 완전히 노예제도에 기초를 두었던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는 여러가지 형태의 국가들이 있었다. 그 당시에 이미 군주제와 공화제, 귀족제와 민주제의 차이가 생겼다. 즉, 한 사람의 손에 권력이 집중된 군주제, 선거에 의하지 않고는 권력이 전혀 존재할 수 없었던 공화제, 비교적 적은 소수자의 권력인 귀족제, 시민의 권력인 민주제(민주제란 그리스어를 직역하면 인민의 권력이라는 뜻 이다)가 그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차이는 노예제 시대에 생겼다. 이런 여러가지 차이가 있었지만 노예제시대의 국가는 어쨌든 노예소유자의 국가였다. 그것이 군주제였던가, 귀족인 공화제였던가, 아니면 민주적인 공화제였던가 하는 것은 여기서는 조금도 상관이 없다(국가에 대하여, 1919, 레닌전접 제29권, P.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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