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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열광(趙烈光, 1913~?)] ()

(조선의용대 제2유격대장, 조선의용군 제5지대 참모장) 경기도 출신으로, 일본 히로시마 현(廣島縣)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1933년 9월 의열단(義烈團) 조선혁명간부학교에 입학하여 1934년 4월 제2기로 졸업했다. 9월 남경(南京) 중앙육군군관학교 예비반에 입학했으며 그후 정식으로제11기 포병과를 졸업했다. 조선민족혁명당 당원으로 활동했으며, 1937년 12월부터 1938년 5월까지 중앙육군군관학교 성자(星子) 강릉분교(江陵分校)에서 견습사관으로 복무했다. 그해 10월 조선의용대에 참여하고 제1구대 제2분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939년 봄 조선의용대 제2유격대장으로서 호남성(湖南省) 북부 막부산맥(幕阜山服) 일대에서 항일선전활동중 부상을 입은 중국인 중대장을 안전지대로 구출하여 중국군 제9전구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1941년 초 조선의용대 제3지대 대원으로 활동했다. 같은 해 여름 화북(華北) 팔로군(八路軍) 지역으로 들어가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제2대 제1분대장으로 10여 명의 분대원을 이끌고 태항군구 제1분구 찬황(贊皇) ․ 장대(莊代) ․ 임성(臨城) 일대에서 활동했다. 1941년 12월 하북성(河北省) 원씨현(原氏縣) 호가장(胡家莊)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부상을 입었다. 1942년 6월 무렵 연안(延安)으로 가서 활동했다. 1943년 8월 화북조선독립동맹 연안지부의 맹원으로 활동했다. 1945년 2월 조선혁명군정학교 교관 겸 제1구대 대장을 맡았다. 일제 패망 후 중국 연변(延邊)으로 진출하여 조선의용군 제5지대 참모장으로 의용군의 확군(擴軍)과 조선인 보호 활동을 전개했다. 1946년 상반기에 38선 이북으로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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