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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張埈, 1895~?)] ()

(조공 충남북도책)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기독교 구세군활동을 했다. 영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임시토지조사국 서기, 군청의 고용원으로 일했다. 1920년 9월 영동청년회에 가입하여 간부가 되었다. 1923년 2월 조선소작인상조회 영동지회 결성대회에 참가하여 친일파 송병준(宋秉畯)이 이끌던 조선소작인상조회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결의를 이끌어냈다. 7월 영동청년회를 탈퇴하고 사장단체 칠월회(七月會)를 조직했으며 8월 영동소작인상조회의 후신인 영동노농동맹의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4년 4월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집행위원이 되었고, 조선청년총동맹 창립대회에서 서기로 선임되었다가 경찰에 대항했다는 이유로 검거되었다. 1925년 3월 노농총 소작부 담당 상무집행위원이 되었고, 같은 해 영동청년회에 다시 가입했다. 1926년 4월 조선사회단체 중앙협의회 창립준비위원으로 선임되었고 10월 영동청년연맹 결성에 참가했다. 12월 조선공산당 제2차 대회에 충남북 대표로 출석했다. 1927년 3월 호서(湖西)사회운동자간친회 발기인, 5월 조공 충남북도책, 7월 신간회 영동지회 창립준비위원이 되었다. 8월 영동청년연맹 탄압 당시 경찰에 체포되었다. 투옥중이던 9월 노농총이 조선노동총동맹, 조선농민총동맹으로 분리되었을 때 서면투표에 의해 농총의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8년 6월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영동농조 집행위원장, 조공 충북도당 간부) 1930년 1월 신간회 영동지회를 다시 창립하기로 하고 창립준비위원이 되었다. 4월 영동농민조합 집행위원장 10월 영동소비조합 경리위원장이 되었다. 1932년 1월 구속자 후원사업에 종사했다. 2월 경찰에 검거되어 1934년 7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44년 건국동맹 충남북지부 책임자로 선정되었다. 1945년 11월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에 충북 대표로 참석해 확대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2월 전국농민조합총연맹 결성대회에 충북도연맹 대표로 참석해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충북 대표로 참석하여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시기 서울에서 ‘조공 중앙 및 지방동지 연석간담회’에 참석했고 ‘조공 대회소집준비위원회 구성건의서’를 당 중앙위원회에 13인의 연명으로 제출했다. 1948년 8월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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