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수(李雲洙, 1899~1938) 李益 李一 李判水] ()
(고려공청 일본총국 회원, 『조선신문』 발행인) 함남 북청 출신으로, 중동학교를 졸업했다. 1925년 일본으로 가서 노동을 하면서 니혼대학(日本大學) 사회과에 입학했다. 1926년 토오꾜오(東京) 조선노동조합에 가입했다. 6월 토오꾜오에서 적위노동동맹 결성에 참여하고 선임위원 및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1928년 4월 토오꾜오 조선노조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6월 고려공산청년회 일본총국에 가입하여 혼죠(本所) 제2야체이까에 배속되었다. 8월 국치일 기념투쟁으로 회원 36명과 함께 검거되어 1931년 3월 토오꾜오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1935년 12월 토오꾜오에서 재일조선인의 계몽을 위해 조선신문사를 설립하고 『조선신문』을 발간했다. 1936년 7월 검거되어 1937년 7월 검찰에 기소되었다. 1938년 3월 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10월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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