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만(李輔晩, 1902~?) 李花天] ()
(上海청년동맹회 집행위원) 전북 금산 출신으로, 1922년 5월 북경(北京)으로 갔다가 1923년 상해로 가서 상해대학을 다녔다. 1924년 상해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전라도 대표의원이 되었다. ‘우리모듬’이라는 단체와 재상해한인유학생회 결성에 참여하고 잡지 『학군(學軍)』을 발간했다. ‘여운형 사건’이 있은 후 한인유학생회에서 탈퇴했다. 11월 상해청년동맹회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5년 4월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가 개최될 즈음 인쇄물을 서울로 들여보내 배포하게 했다. 같은 달 독립운동자대회를 열어 비밀결사인 독립정신사(獨立精神社)를 결성하고 잡지 『독립정신』을 발간했다. 1926년 5월 6 ․ 10만세운동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로 파견되었으나, 역에 내리자마자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10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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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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