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근영(吳根榮, 1904~?) 吳英 吳根永] ()
(고려공청 회원)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1920년대 중반 서울파 공산주의그룹에 가담했다. 송정운수노동조합 이사장을 지냈으며, 서울의 전진회(前進會)에도 참여했다. 1926년 11월 서울신파의 일원으로서 「정우회선언(正友會宣言)」 을 지지했다. 신간회 송정지회와청년동맹 등에서 활동했다. 1927년 9월 조선노동총동맹중앙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1월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광주야체이까에 배속되었다. 12월 노총 제1차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중앙상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8년조선공산당 검거사건에 연루되어 광주경찰서에 검거되어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1932년 4월부터 1934년 4월까지 『동아일보』 송정리지국장을 역임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참석하여 중앙위원과 사무국 조사부장으로 선출되었다. 12월 남조선노동당 중앙감찰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48년 8월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제1 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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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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