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선(金洪善, ?~1933) 金弘善 金洪憲 潘慶由] ()
(조공 만주총국 선전부 책임, 중공 寧安縣委 서기) 함북 성진 출신으로, 김책(金策)의 맏형이다. 어려서 아버지와 함께 화룡현(和龍縣) 평강(平崗)으로 이주했다. 3 ․ 1운동에 참가한 뒤 사회주의사상을 수용했다. 1921년 4월 용정(龍井) 동흥중학(東興中學) 건립에 조력했고 1925년 동흥중학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에서 모금활동에 종사했다. 그해 만주공산당 조직에 참여했으며, 조선공산당 중앙의 승인을 얻기 위해 국내로 파견되었다. 1926년 동만(東滿)청년총연맹 집행위원이 되었다. 그해 간도 일대에서 계급의식 고취를 위한 순회강연단에 참여했다. 1927년 10월 ‘제1차 간도공산당 검거사건’ 이후 새로 재건된 조공 만주총국(화요파)의 선전부 책임자가 되었다. 1930년 초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북만특위(北滿特委)에서 활동했다. 10월 중공 영안현(寧安縣)위원회를 건립하고 서기가 되었으며, 1931년 12월 중공 영안중심현위 서기가 되었다. 1933년 7월 중공 만주성위 순시원이 되어 유격대 내 민생단 혐의자 숙청을 주도하다가 박두남(朴斗南)에게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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