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두(金炯斗, 생몰년 미상)] ()
(조선 모쁠 책임자) 경남 마산 출신으로,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1923년 7월 마산무산소년단 고문이 되었다. 8월 마산노농동우회의 집행위원으로서 북성회(北星會) 순회강연단의 활동을 후원했고, 사상단체 혜성사(彗星社) 결성에 참여했다. 9월 국제청년데이를 기념해 ‘무산자의 사명’이란 제목으로 강연했다. 그해 말 모스끄바에 갔다가 1926년 9월 귀국한 후 조선 혁명자구원회(모쁠) 책임자가 되었다. 1927년 1월 마산사회단체연합 신년간담회에 참가하여 「정우회선언(正友會宣言)」을 실천에 옮길 실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7월 신간회 마산지회 간사가 되었다. 1928년 2월 일본경찰의 검거를 피해 국외로 피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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