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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수(金台洙, 1906~?) ] ()

(赤友同盟 책임비서, 민전 중앙위원) 충북 영동 출신으로, 영동보통학교 졸업 후 서울에서 보성고등보통학교에 다녔다. 이후 용화면(龍華面) 영신(永新)학술강습회를 운영하고, 영동면 계산학원 교사, 신문기자를 역임했다. 1926년 5월 영동지역 사상단체인 칠월회(七月會) 집행위원이 되었고, 같은 달 결성된 영동노동청년회에서 집행위원을 맡았다. 10월 영동청년연맹 결성에 참여했다. 1927년 8월 일본경찰에 검거되었으나 1928년 6월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1929년 2월 영동청년동맹 결성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4월 영동노동청년회를 영동농민조합으로 개조하는 데 참여했다. 1930년 1월 신간회 영동지회 설립촉성위원, 10월 영동소비조합 경리위원이 되었다. 11월에 열린 조선청년총동맹 전설대회(傳說大會)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1년 3월 적우동맹 결성에 참여하여 책임비서가 되었고 4월 영동농조 집행위원이 되었다. 6월 ‘조선의 혁명적 노동자 제군에게 격함’이란 격문을 농민조합원에게 배포했다. 1932년 2월 경찰에 검거되어 1934년 7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945년 11월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에 영동 대표로 참여했고 12월 전국농민조합총연맹 결성대회에 충북도연맹 대표로 참석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달 ‘조선공산당 중앙 및 지방동지 연석간담회’에 충북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다. 13인의 당원과 함께 ‘조공대회소집준비위원회 구성건의서’를 작성하여 당 중앙위원회에 제출했다. 3월 민전 충북지부 조직부장이되었다. 한국전쟁 때 영동군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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